[단독]연일 집값 거품 경고하더니…최악 6% 하락 예상한 한은

머니투데이 권화순 기자, 이소은 기자, 김민우 기자 2021.07.0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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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잡지못한 집값, 저금리는 죄 없나①

편집자주 집값 잡기에 실패한 정부가 유동성을 언급하면 '남탓한다'고 욕먹기 십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동성 풀기는 전세계적 현상이었고 그 조건에서도 집값을 안정시켰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수요억제로 일관한 정부는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공급확대로 돌아섰다. 하지만 유동성 관리를 책임진 한국은행은 최선을 다했을까. 한은은 하반기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금리인상을 앞두고 묻는다. 유동성은 집값에 무죄인가.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2021.06.23. dadazon@newsis.com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2021.06.23. [email protected]


연일 집값 거품을 경고하고 있는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이 은행 스트레스테스트에선 향후 2년간 최악의 상황에도 집값이 6% 넘게 하락하지 않는다고 가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스트레스테스트는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에서 금융회사의 자본여력이 충분한지 알아보는 테스트다. 최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상업용 부동산 40% 급락'을 가정하고 테스트를 실시했다. 최근 '집값의 대규모 조정'을 경고한 한은과 금융당국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을 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집값 급등이 전국민의 일상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한은이 기준금리를 결정할때 참고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는 집값이 아예 빠져있어 통화정책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美 연준, 상업용 부동산 40% 급락 시나리오, 한은은 고작 6% 하락 가정...집값 문제에 뒷짐진 한은
[단독]연일 집값 거품 경고하더니…최악 6% 하락 예상한 한은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은 최근 향후 2년간 경제성장률 -3.6%, 주택 매매가격 6% 하락을 가정하고 자본여력이 충분한지 알아보는 스트레스테스트를 자체적으로 실시했다. 한은이 금융감독원과 협의해 만든 시나리오 가운데 2022년 2분기 가장 안 좋은 시나리오를 근거로 자본이 충분한지 살펴본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달 25일 "은행 자산건전성이 양호하다"며 배당제한을 풀었다.

비슷한 시기, 미 연준도 은행 배당제한을 풀기 전에 스트레스테스트를 실시했다. 연준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 -5.5%를 가정했으며 2023년 1분기 상업용 부동산 가격지수 40% 급락(297→178)을 반영했다. 일반주택이냐 상업용 부동산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같은 시기에 한은이 6% 하락을 가정할 때 미 연준은 40% 급락을 반영한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전세계 주요국 중 집값 상승률 최상위 국가인데도 한은의 시각이 더 낙관적이었던 셈이다.

한은은 지난달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주택가격이 고평가 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향후 유동성 감소, 자본유출 등 대내외 충격이 발생할 경우 대규모 가격조정이 나타날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위원회는 2일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에서 "부동산시장에 검은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며 10년 전 하우스푸어, 깡통전세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규모 가격조정'이 최악의 상황에도 6% 하락으로 봤다는 뜻이 된다.


한은은 스트레스테스트 시나리오를 짤 때 미국과 달리 부동산을 별도의 독립적인 요소로 보지 않고 금융불균형지수 변동에 따른 종속 변수로 변동률을 가정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스트레스테스트는 기본적으로 성장률 하락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집값을 독립변수로 보지 않았다"이라며 "IMF 경제위기 때도 집값이 평균 8%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이번 가정이 결코 낮은 수준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집값이 전세가격 밑까지 떨어지는 '깡통전세'를 경고하면서 '6% 하락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정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단독]연일 집값 거품 경고하더니…최악 6% 하락 예상한 한은
소비자물자지수에 집값이 없다...한은 금리 정책에 '집값'이 홀대받는 이유
한은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핵심 지표로 활용하고 있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집값 통계는 아예 빠져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체 460가구 품목으로 구성되는데 세입자가 부담해야 하는 월세 등 집세만 들어가 있다. 이 마저도 가중치 비중이 9.3%에 불과하다.

미국, 캐나다, 일본 등은 '자가주거비용' 항목을 소비자물가지수에 넣어 집값 변동을 간접적으로 물가에 반영한다. 자가주거비용은 집주인이 '주택을 빌려줬을 때 받을 수 있는 임대료'를 뜻하는데 통상 집값이 오르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요구하는 임대료도 올라간다. 여기에 집값 급등으로 집을 사지 못하고 임대를 택하는 사람들의 임대료도 함께 올라간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가운데 임대료 비중은 33%로 단일항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호주, 뉴질랜드는 아예 주택취득가격을 소비자물가지수에 넣기도 한다.

반면 우리는 "자가주거비를 소비자물가지수에 넣으면 통계왜곡이 될 수 있다"며 보조지표(24% 비중)로만 활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집값 변동이 물가에 적정하게 반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도 집값은 중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코로나19 사태에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 온 한은이 집값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원인 중 하나로도 지적된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집값 상승에 대한 법적인 책임은 엄밀하게는 물가안정 책임이 있는 한은에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정작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참고하는 소비자물가지수에 집값 통계가 빠진 것은 현시점에서 개선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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