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대 패스, 물건 들고 나가는 손님들…"결제는 자동으로"

머니투데이 오문영 기자, 김은령 기자, 박가영 기자 2021.07.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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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무인매장이 온다(下)

편집자주 무인매장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일상화, MZ 세대 등장, 인건비 상승 등이 무인 시대를 이끄는 동력이다. 가전, 자동차, 통신업계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무인 시대의 현주소와 명암을 짚어본다.

음료는? 소스는?…키오스크 앞 노인들, 햄버거 하나 먹기 힘들다
서울 시내의 한 커피전문점에 설치된 키오스크에서 시민들이 음료를 주문하고 있다./사진=뉴스1서울 시내의 한 커피전문점에 설치된 키오스크에서 시민들이 음료를 주문하고 있다./사진=뉴스1


"왜 뜨거운 걸 주는겨?" 지난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직원이 아메리카노를 건네자 한 할아버지가 "차가운 걸로 시켰다"고 따져 물었다. 높았던 언성에 비해 사건은 쉽게 일단락됐다. 직원이 영수증에 적혀있는 'HOT'(뜨거운)를 가리키면서다. 평소 같으면 평행선을 달렸을 법한 논쟁이지만, 할아버지는 말 없이 밖을 나섰다. 키오스크(무인단말기)로 주문해 증거가 명백히 남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억울해보였던 할아버지의 표정을 뒤로 하고 키오스크로 가봤다. 아메리카노 그림을 누르자 나온 화면에는 'HOT'이 자동으로 우선 선택돼 있었다. 주의하지 않으면 지나쳐버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키오스크가 익숙치 않은 할아버지는 같은 화면에 띄워진 사이즈 선택을 비롯해 유료옵션과 무료옵션 등 신경써야할 것이 많았으리라.

코로나19(COVID-19)로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무인시스템을 도입하는 점포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을 비롯해 세탁소와 백화점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일부 편의점, 아이스크림 가게 등 무인점포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년층은 달갑지만은 않다. 서울 관악구에서 4년째 개인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이주희씨(43)는 손님이 많은 시간대에 혼자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기가 여의치 않아 키오스크를 들였다. 이씨는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키오스크) 사용을 불편해하신다"며 "그런 경우에는 대면으로 결제를 해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카페는 나았다. 다음날인 29일 서울 중구의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점을 찾았다. 키오스크로 OO세트 주문을 시도해봤다. 다행히도 추천 메뉴라 첫 화면에서 고를 수 있었지만, 이어 음료와 소스, 감자튀김 등 부가메뉴의 종류와 크기를 차례로 선택해야 했다. 끝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새로 나오는 화면에 순간순간 멈칫했다.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한 시간 동안 직원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6명이었다. 대부분이 어르신들이었다. 오전 타임에 일하는 직원 황모씨(27)는 "키오스크 사용을 어려워하시는 경우 손이 비는 사람이 대면 결제를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황씨는 그가 캐셔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편임에도 하루에 10명 이상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곧장 직원에게 다가가 주문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정순 할머니(72)는 "예전에 한 번 해보려 했었는데 도통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더라"면서 "이후로는 기계(키오스크)가 있는 식당에 가면 직원에게 결제해줄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인화로 소외되는 이들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말한다. 어느 한 매장이나 기업이 주도하는 것이 아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시대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최근 각 지자체가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를 막기 위해 자체 교육 위주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현장에서의 배려'가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인화 흐름은 불가피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민간 기업의 기술 개발과 디지털화를 저해하거나 늦출 수도 없다고 본다"면서 "고령층이나 전자기기를 쉽게 다룰 수 없는 장애를 가진 분들을 위한 보완책, 민간 기업에 대한 권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비대면 시대이기 때문에 단체교육이 어려운 상황이다. 대안으로 나오는 것이 온라인 교육이지만 어르신들은 온라인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전제가 잘못된 것"이라며 "정부에서 기업이나 매장에 (대면결제를 하는) 직원들을 최소한 한 명 정도 유지시키며 모든 것들이 디지털화되지 못하게끔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일자리 감소도 무인 매장화의 숙제로 거론된다. 현상은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숙박·음식업 종사자는 16만6000명 감소했다. 코로나19 충격과 더불어 서비스 영역에서의 무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영향으로 분석된다.

당장 주변의 식당만 둘러봐도 빈 카운터와 그 옆을 차지하고 있는 키오스크를 쉽게 볼 수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8년째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52)는 최근 키오스크를 들였다. 김씨는 "이전에는 한 명이 서빙, 다른 한 명이 손님 맞이와 계산을 주로 담당하는 식으로 홀에서 2명이 일했다"면서 "키오스크를 사용하면서 두 사람이 하루 단위로 번갈아가면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굴인증 출입·정맥 인증 결제' 무인 편의점, 어디까지 왔나
계산대 패스, 물건 들고 나가는 손님들…"결제는 자동으로"
#인천 송도에 위치한 CU삼성바이오에피스점. 편의점 입구 기기에 얼굴을 보이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제품을 골라 들고 나오면 자동으로 무게를 측정하고 매장에 설치된 30여대의 AI(인공지능)카메라와 정보를 연동해 결제가 된다. 휴대폰이나 신용카드 등을 전혀 꺼내지 않고도 물건을 살 수 있는 미래형 편의점이다.

◇편의점 3사, 무인 매장 600여개…페이스인증·정맥 결제·AI로봇까지 '첨단 유통기술 집약'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무인매장이 확대되고 있다. GS25, CU, 세븐일레븐 등 국내 주요 편의점 3사의 무인 운영 점포는 약 620여개다. 주로 주간에는 점원이 상주하고 야간에는 무인으로 운영되는 하이브리드 형태의 매장이다. GS25는 지난 2018년 9월 첫 무인 매장을 오픈한 이후 현재 330여개를 운영 중이고 CU는 270여개, 세븐일레븐은 120여개의 시그니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휴대폰 인증이나 페이스 인증 등으로 출입 인증을 거친 후 셀프 계산대에서 직접 계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미래형 편의점' '스마트 매장' 등의 별칭만큼 최첨단 유통 기술이 집약돼 있다.

예를 들어 CU의 완전 무인점포인 '테크 프렌들리' 매장은 'No counter, No wait, Just shopping' 슬로건에 맞춰 점포 입장부터 결제까지 전 과정이 논스톱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구현했다. CU 하이브리드 매장 출입 인증, 결제 전용 애플리케이션인 'CU바이셀프' 앱을 통해 페이스 인증으로 매장 출입이 가능하고 자동 결제까지 가능하다.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매장은 정맥인증으로 결제가 가능한 '바이오페이'가 특징이다. 아울러 AI 결제 로봇도 활용한다.

계산대 패스, 물건 들고 나가는 손님들…"결제는 자동으로"
◇편의점, 무인 매장 도입 활발한 이유

대부분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 특성상 다른 유통채널에 비해 무인 매장 도입이 활발한 편이다. 특히 고객 방문이 많지 않은 야간 시간에 인력 운영을 최소화해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현재 운영되는 대부분의 스마트매장도 낮 시간에는 직원이 상주하고 야간에 완전 무인으로 운영되는 하이브리드 형태다.

IT(정보통신) 기술에 익숙한 젊은 소비자들이 주 이용층이라는 점도 편의점이 무인 매장 도입에 앞장 설 수 있는 이유다. 체험을 중시하는 젊은 소비자들은 일부러 무인 매장을 찾는 등 소비자들에게 쇼핑의 재미를 줄 수 있는 마케팅 일환으로도 훌륭하게 역할하고 있다.

이에 따라 편의점 무인 매장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매장이나 골프장, 호텔 등 다중 이용시설이나 회사, 학교 등에 입점해 있는 특수 입지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GS25의 경우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 내에 있는 GS25강서LG사이언스점이 첫 하이브리드 매장이며, 세븐일레븐은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1호 시그니처 매장을 열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언택트 소비 문화가 늘어남에 따라 무인매장 뿐 아니라 일반 매장의 셀프 계산 매대, 로봇 배송까지 기술 도입이 활발해 지고 있다"며 "인건 비용 부담이 큰 업태 성격 상 이같은 스마트 기술 적용은 직원들의 단순 노동을 줄이고 인력 효율화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물건 그냥 들고 나가면 돼…美·中의 '무인 매장' 보니
미국 시애틀의 아마존 고 그로서리 매장을 이용 중인 고객들 /사진=AFP미국 시애틀의 아마존 고 그로서리 매장을 이용 중인 고객들 /사진=AFP
세계 곳곳에서 무인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특히 유통업계는 무인화 흐름이 빠르게 진행되는 업종 중 하나다. 세계적인 대형 유통기업들이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서비스를 도입하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코로나19(COVID-19)는 비대면 소비 트렌드에 속도를 붙였다.

29일 미국 경제 전문매체 마켓워치는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켓 보고서를 인용해 글로벌 무인 편의점 시장이 연평균 성장률(CAGR)이 51.9%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리서치앤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6748만달러(약 763억원)였던 글로벌 무인 편의점 시장 규모는 2027년에는 16억4032만달러(약 1조8544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무인화 바람 불러일으킨 유통 공룡 아마존

아마존 고 매장 천장에 달린 카메라와 센서. 매장 곳곳에 설치돼 있으며 고객이 골라 담는 상품을 실시간으로 포착한다./사진=AFP아마존 고 매장 천장에 달린 카메라와 센서. 매장 곳곳에 설치돼 있으며 고객이 골라 담는 상품을 실시간으로 포착한다./사진=AFP
유통업계의 무인화 흐름은 '유통 공룡' 아마존이 '아마존 고'라는 무인 매장을 선보이면서 본격화됐다. 아마존은 2016년 미국 시애틀 본사에 아마존 고 1호점을 마련했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험운영을 진행한 뒤 2018년 1월 일반 소비자에게 개방했다. 이후 1년간 미국 내 아마존 고 매장은 9개로 늘었는데, RBC캐피털마켓 분석에 따르면 당시 아마존 고 매장의 연평균 매출액은 150만달러(약 17억원) 수준이었다.

아마존 고가 첫 점포를 연 지 3년이 지난 지금 아마존은 미국 전역에 30개 이상의 무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편의점인 아마존 고로 시작해 식료품점 매장인 '아마존 고 그로서리', '아마존 프레시'도 선보였다. 아마존 프레시는 아마존 고 그로서리를 리브랜딩한 것인데, 최근 영국에도 첫 매장을 오픈했다.

아마존표 무인 매장 시스템의 핵심은 컴퓨터 비전 및 딥러닝에 기반한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 기술이다. 말 그대로 계산대를 거칠 필요 없이 그냥 걸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다. 아마존 회원 가입을 한 고객들은 QR코드를 스캔하면 매장에 들어갈 수 있다. 구매를 원하는 상품을 집어 들면 천장에 달린 수많은 카메라와 센서가 이를 감지하고, 점포를 나서면 애플리케이션에 등록된 신용카드로 자동 결제된다. 물건을 사고 싶지 않을 경우 그냥 내려놓기만 하면 계산에서 제외된다.

아마존 고 고객들은 이에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 여론조사 업체 피플세이가 올해 초 3만명 이상의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아마존 고를 이용한 소비자의 89%가 이 경험이 '훌륭하다' 혹은 '좋았다'고 평가했다. 또 응답자의 60%가 자신의 동네에 아마존 고 매장이 들어오길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편결제 강국' 중국, 무인화 시스템 속속 도입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허마셴셩에서 고객들이 스마트폰으로 상품 진열대 곳곳에 붙어있는 QR코드를 찍어 장을 보고 있다./사진=뉴시스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허마셴셩에서 고객들이 스마트폰으로 상품 진열대 곳곳에 붙어있는 QR코드를 찍어 장을 보고 있다./사진=뉴시스
중국은 무인 매장이 가장 활발하게 도입되는 나라로 꼽힌다. 기업들은 이윤을 높이기 위해 무인 매장을 열고 있다. 이들 기업은 이미 사용이 활성화된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간편 결제시스템을 이용해 무인화에 박차를 가한다.

현지 무인 매장 운영은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앞선다. 알리바바는 무인 편의점 '타오카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타오카페는 아마존 고의 '저스트 워크 아웃' 기술과 유사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QR코드를 통해 입장한 뒤 고객이 물건을 들고 매장을 나서면 알리페이를 통해 자동으로 결제된다.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수산물, 채소 등 신선식품 무인 매장 '허마센셩'은 중국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고객이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 상품을 직접 확인하고 고른 뒤 무인 계산대에서 알리페이로 결제하면 30분 내에 집으로 배송된다. 현재 중국 전역에서 200개 이상의 매장이 있다.

허마센셩의 높은 인기에 '허취팡'(盒區房)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배송 서비스가 가능한 허마센셩 매장 반경 3km 이내의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허세권'인 셈이다. 허마센셩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비대면 소비 증가하면서 지난해 매출이 2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무인 매장 시장 규모는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는 '언택트 문화 확산과 리테일 산업 무인화 동향' 보고서를 통해 "대다수 중국인들이 QR코드 등을 이용한 무인 결제방식에 익숙하고 발전된 모바일 결제스시템을 보유하고 있어 관련 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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