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자 우대, 명문대 선호 차별일까

머니투데이 최민지 기자, 한민선 기자 2021.06.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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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논의 '차별금지법'서 학력은 제외하자 목소리 높아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국회가 논의 중인 일명 '차별금지법' 논의에서 학력은 제외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학생들은 "졸업장도 노력의 결과"라며 학력으로 차등을 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까지 채용 과정의 혼선에 따른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학력은 성이나 장애 등 선천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점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가 논란이 커지자 재검토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제동 걸린 차별금지법… "학력은 노력의 결과물"
대졸자 우대, 명문대 선호 차별일까
28일 교육부에 따르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 대해 교육부는 최근 '신중검토' 의견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했다.



차별금지법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언어, 혼인여부, 성적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 승진, 임금 책정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법률이다. 이 때 학력은 고졸·대졸 등 교육과정 이수를 비롯해 출신 학교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금지대상 차별의 범위에 학력이 포함된다면 '대졸 공개채용'도 불법이 될 소지가 있다. 채용 과정에서 출신학교를 명시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교육부는 "학력은 성, 연령, 국적, 장애 등과 같이 통상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합리적 차별 요소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교육부는 검토 결과문을 통해 "학력을 대신해 개인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화된 지표의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력에 의한 차별을 법률로 규제할 경우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졸자 우대, 명문대 선호 차별일까
법안을 발의한 정의당 측은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와 상반된다며 반박했다. 정의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국정과제에 따라 노동부와 교육부는 각각 블라인드 채용과 입시를 확대 중인데 이번 교육부의 검토 의견은 정부 스스로의 의견과 배치된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이번 교육부의 결정이 국민의 뜻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육개발원 2018년 교육여론조사에 따르면 학력차별을 법으로 금지시키는 방안에 대해 전체 국민의 절반 가량이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력과 학벌에는 부모찬스 등 가정의 경제, 사회, 문화 자본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입시나 채용이 공정하지 않다는 시각으로 풀이된다.

대학생 "학벌도 실력", 인사담당자 "규제 과도·채용 혼선"
하지만 실제 대학생들은 "학력에 따른 차등을 없애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이 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학력은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데, 섣불리 학력을 평가하지 않을 경우 채용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재학생인 김모씨(21)는 "학력을 차별 사유로 해당시켜 규제 범위에 포함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학력의 경우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선택적인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다른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학력은 그나마 개인의 인생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지표"라고 덧붙였다.

한양대 재학생 최모씨(25)은 "채용 과정에서 학력을 보는 것은 학력에 따라 차별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회사에 맞는 사람을 뽑겠다는 의미인데, 무조건 나쁘게 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더라도 반드시 집안환경의 영향을 완전히 걷어낼 순 없다"며 "예를 들어 해외 경험 등 좋은 가정환경으로 얻은 스펙이 학력보다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의 인사담당자들도 채용 과정의 혼선, 업무 효율성 하락, 추가 교육비용 발생 등을 우려했다.

전체 임직원의 90% 이상이 대졸자인 A 기업의 인사담당자 김모씨는 "만약 고졸·대졸 사원이 같은 업무를 수행한다면, 기획·분석·마케팅 등 전문성과 경험이 필요한 업무의 경우 고졸자가 수행하기에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사 채용 담당자 입장에서 업무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허수의 고졸 지원자들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며 "기존 대졸 사원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B사의 인사담당자인 박모씨도 "이미 다수의 기업들은 '블라인드 채용'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며 "학력에 따른 차별을 법률로 규제할 경우 또다른 규제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각 직군에 맞는 지원자들의 실무 관련 경험이나 스펙 등도 채용 과정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데 학력에 대한 차별을 법률을 규제한다면 기준이 애매해지면서 채용 과정에 혼선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부 "학력 삭제는 오해, 재검토 할 것"
한편 교육부는 이번 논란이 언론에 알려진 후 국정과제와 배치된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법안에 대해 재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해당 법안에서 학력 부분을 삭제하자는 것은 오해"라며 "이번에 제출한 신중 검토 의견 역시 과거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대 국회 때 제출했을 때 국회 전문위원 측에서 제시한 의견과 거의 똑같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학력·학벌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법안을 제정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졌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사교육대책TF를 대표해 '학력·출신학교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학력·학벌 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지난 16일에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학력 차별 금지'를 명시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장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국민동의청원이 지난 14일 10만명을 넘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 회부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비슷한 내용을 이상민 의원의 제출안에 대해서도 검토 의견을 낼 예정"이라면서 "장혜영 의원이 제출한 법안에 대해서도 재검토 방법 등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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