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후발 농협은행, 역전은 지금부터...비결은 '농업', 무기는 '협동조합'

머니투데이 양성희 기자 2021.06.2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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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금융강국 코리아-NH농협은행①]중국 베이징 등 6개 진출 프로젝트 추진 중

편집자주 한국 금융의 해외영토확장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문을 걸어 잠근 시기에도 지속됐다. 인수합병(M&A)과 제휴를 멈추지 않았고 점포도 늘렸다. 신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일시적으로 이익이 줄었지만 경기가 회복되면 그 동안 씨를 뿌렸던 만큼 수확을 거두게 될 것이다. '퀀텀점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농협은행 해외점포 신규설립 프로젝트 현황/그래픽=최헌정 디자인 기자농협은행 해외점포 신규설립 프로젝트 현황/그래픽=최헌정 디자인 기자


NH농협은행은 시중은행 중 글로벌 진출이 가장 늦었다. 그렇지만 코로나19(COVID-19) 시대 '역전 드라마'를 써 가고 있다. 다른 은행과 비교해서 후발주자지만 농업에 특화한 농협은행만의 색깔로 승부를 보려 한다. 범농협 시너지를 살려 현지 협동조합과 손잡을 수 있는 것도 농협은행만의 무기다.

지난해 글로벌 사업이 농협은행의 순익에서 차지한 비중은 0.1%에 불과하다. 사업 초기단계여서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글로벌 사업 영업이익은 19억6000만원이었다. 하지만 올해와 내년 공격적인 확장을 예고한 만큼 10년 뒤인 2030년 순익 비중은 5%, 영업이익은 1000억원으로 훌쩍 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괄목할 만한 성장을 자신하는 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6개 프로젝트의 성과 덕분이다. 중국 베이징, 인도 노이다, 베트남 호치민, 홍콩, 호주 시드니, 영국 런던이 타깃이다. 농협은행은 현재 미국 뉴욕과 베트남 하노이 등 해외 6개국에 지점 2개, 현지법인 2개, 사무소 4개 등 모두 8개 점포를 보유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2025년까지 12개국 14개 점포로 늘린다.

NH농협금융그룹의 전략도 은행과 맞물려 돌아간다. 농협금융은 2025년까지 13개국에 28개 네트워크를 갖추려 한다. 코로나19 시대 다른 은행의 글로벌 확장세가 주춤한 사이 농협은행과 그룹의 움직임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물론 갑자기 이뤄진 일은 아니다. 그동안 씨앗을 뿌렸고 이제 수확의 계절이 다가왔다는 게 농협은행의 설명이다.



글로벌 늦어진 '약점'? 이제는 오히려 '강점'
농협은행의 글로벌 진출이 늦어진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명칭에서 비롯된 오해가 조그만 걸림돌이 됐다. 즉 2012년 농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 전 농협중앙회 명칭으로 있던 터라 현지 감독당국이 번번이 은행의 정체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사업구조 개편 후 농협은행이 '은행 '이름을 달고 정식으로 출범하자 비로소 길이 열렸다. 출범 이듬해 곧바로 미국 뉴욕에 지점을 내면서 글로벌 여정을 시작했다. 2017년 글로벌사업부를 별도 부서로 설립하면서 글로벌 사업은 탄력을 받았다.

특정한 약점이 아닌 농협중앙회 명칭 때문이기에 농협은행 글로벌 사업은 늦었지만 희망적이다. 금융과 비금융이 경계 없이 융합하는 시대 농협중앙회 안에서 '금융-농업', '금융-유통' 등 시너지를 낼 수 있어서다. 농협중앙회 시절 해외사무소를 운영해 온 노하우, NH농협무역·농협사료·농우바이오 등 농협중앙회 계열사가 보유한 해외 네트워크 등은 농협은행만의 자산이다. 현지에서 자리 잡은 타행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다른 은행에 없는 농업의 전문성을 내세울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농협은행 글로벌 중장기 수익 목표/그래픽=최헌정 디자인 기자농협은행 글로벌 중장기 수익 목표/그래픽=최헌정 디자인 기자
농협은행만의 '한 수'는 농업금융…농업인 대출 승부수
농협은행만의 '한 수'는 농업금융에 있다. 농업은 있어도 농업금융은 없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충분한 어필 요소다. 지난해 미얀마에 법인을 세울 당시 현지 정부가 농업금융 전문성과 노하우를 높게 평가해 한국계 금융기관 중 최단기간에 사업 인가 승인을 내줬다. 지난 4월 중국 베이징 지점 설립을 위한 예비인가를 획득할 당시에도 현지 당국이 농업분야의 강점을 인정했다.


농협은행이 진출한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서는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지만 농업금융은 없어 농기계, 농자재를 새로 들일 때 어려움이 따른다. 자원이 풍부하지만 자산이 없는 애로점도 있다. 캄보디아는 삼모작이 가능한 나라지만 저장 시스템, 도정 시설 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거꾸로 생각하면 농협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만큼 많은 셈이다.

농협은행은 현지 사정에 딱 맞는 농업금융 상품으로 시장을 개척 중이다. 미얀마에서는 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애그리 론'(Agri Loan)을 출시해 충성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미얀마법인은 에야와디, 사가잉, 마궤주 등 농민이 많은 지역에 지점을 뒀다. 일반 대출은 규모가 최대 50만짜트(한화 약 40만원)인데 애그리론은 100만짜트(한화 약 80만원)로 2배 정도 넉넉하다. 금리는 약 24%로 일반대출(약 28%)보다 낮다.

캄보디아에서는 농산물 수확주기를 반영한 '시즈널 론'(Seasonal Loan) 출시를 검토 중이다. 농민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낮추기 위해 기획한 상품이다. 이자만 내다가 농산물 수확 주기에 맞춰 원금을 일시상환하는 구조다. 대출 규모는 3000달러~1만달러(한화 약 338만~1128만원), 만기는 수확 주기에 따라 6~12개월로 안을 짜놨다. 우대금리 적용 등도 고려한다. 앞으로 농기계 대출 등으로 농업금융의 사업 기반을 넓혀갈 방침이다.

농협은행은 농업금융의 강점을 살려 현지 협동조합 기구와의 협업으로 신사업 기회도 모색한다. 그룹 차원에서 끈끈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중국의 공소그룹과는 합작법인을 운영하기로 했다. 손해보험·증권사 합작 사업도 논의 중이다. 인도에서는 인도비료협동조합(IFFCO)과 합작법인을 만들었는데 협력을 더 확대할 방침이다. 베트남에서는 베트남협동조합연맹(VCA)과 함께 사업 기반을 다지고 있다.

김형신 농협은행 글로벌사업부문장(부행장) 겸 농협금융지주 사업전략부문장(부사장)은 "우리나라의 농협 같은 농업 관련 기구가 있지만 농업금융을 다루지는 않아 농협은행에 기회가 많다"며 "해당 나라의 협동조합과 협력해서 농민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농업 분야를 선진화하는 것이 농협은행만의 특별한 글로벌 전략"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축은 선진금융, 기업금융…"결국은 글로벌+디지털이 답"
첫 글로벌 진출 지역을 미국 뉴욕으로 삼았던 농협은행은 선진금융, 기업금융 시장도 노린다. 미얀마, 캄보디아가 소매금융의 거점이라면 미국과 홍콩, 호주, 영국은 선진금융의 허브로 삼을 계획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향후 싱가포르 등 신규 시장 진입도 큰 그림 속에 있다. 선진금융 시장에서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에 힘쓴다. 둘 이상의 은행이 공동으로 대출을 내주는 '신디케이티드론'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베트남과 중국, 인도는 기업금융에 특화한 지역으로 키우려 한다.

농협은행은 무엇보다 글로벌 주요 거점에 깃발을 꽂고 토양을 가꿔 가려 한다. 세계 금융 허브에 지점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고 봐서다. 홍콩에서는 내년 1월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게 목표다. 호주 시드니의 경우 연말에 인가를 획득해 영업 개시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영국 런던 사무소는 하반기에 세울 예정이다. 본점 글로벌사업부에서는 연일 화상회의로 현지 당국과 의견을 조율하거나 현지 인력 채용을 진행하느라 분주하다.

향후 글로벌과 디지털 전략을 융합시키는 것도 농협은행의 핵심 과제다. 농협은행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한국계 은행 처음으로 재택근무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디지털 경쟁력을 테스트했다. 캄보디아 전자지급결제사 '윙' 등 현지 핀테크 업체와 협업 영역을 늘려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사무실에 지구본을 2개 놔두고 글로벌 전략을 고심 중인 김용기 농협은행 글로벌사업부 부장은 "농협은행은 후발주자지만 네트워크가 갖춰지면 차별화한 사업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며 "국내 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영역은 결국 글로벌과 디지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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