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부진 부추기는 KBS ‘박물관 예능’

머니투데이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6.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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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1박 2일' 시즌4 방송 캡처사진출처='1박 2일' 시즌4 방송 캡처


TV에서 어느새 지상파라 불리는 채널들의 영향이 축소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대박 시청률’의 척도였던 30%를 돌파당한 것은 옛날의 이야기고 요즘은 두 자리가 나오면 성공적이라고 한다. 요즘 시청률 표를 보면 드라마, 교양, 예능을 포함한 전체 지상파 시청률에서 한 자릿수 시청률이 10위 안에 드는 모습도 찾을 수 있다.

이는 모두 다 알다시피 플랫폼의 변화에 기인한 면이 크다. 젊은 층이 TV 앞을 차고 앉아 ‘본방사수’를 하던 시절은 지났다. 이들은 눈은 간편하게는 ‘틱톡’ 등의 SNS로, 조금 스토리를 보려면 ‘유튜브’로, 완성도를 따지려면 OTT '넷플릭스’나 ‘왓챠’로 이미 옮겨갔다. 그 사이 지상파는 사람들이 떠나버린 구도심의 번화가 상점들처럼 쇠락한 모습으로 커다란 간판만을 남겼다. 당연히 지상파의 위기를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분위기가 거론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상점을 채운 상품들의 가치는 과연 제대로 평가되고 있을까. KBS 예능의 예를 들어보고 싶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의 집계로 보면 6월 셋째 주에 해당하는 14일부터 21일까지 순위에서 KBS의 프로그램들은 20위 안에 12개의 프로그램을 넣어놓고 있다. 이중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교양예능을 편성하는 KBS1 채널의 프로그램을 제해놓고 나면 순수 예능을 추구한다는 KBS2의 프로그램은 5개가 남는다.

그 면면을 보면 감탄보다는 일종의 허탈감이 나온다. 1위는 일요일에 방송하는 ‘1박2일 시즌4’다. 그리고 뒤를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시즌3’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잇고 있다.

사진출처='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송 캡처 사진출처='슈퍼맨이 돌아왔다' 방송 캡처

‘1박2일’ 시리즈는 2007년 방송을 시작했던 KBS의 역대 대표예능 중 하나였다. 초창기 개국공신이었던 이명한, 나영석 두 PD가 모두 KBS를 떠난 지금도 멤버를 계속 바꿔가며 진행되고 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이제 제작진이나 출연진이 밟은 땅은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는 별로 남지 않았다. 결국 여행지보다는 여행의 컨셉트, 게임의 컨셉트가 프로그램의 주가 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역시 2013년 방송을 시작한 대표적인 장수 예능이다. ‘관찰예능’의 하위장르로서 ‘육아예능’의 전성기를 열었다.

하지만 ‘1박2일’로 대표되는 버라이어티와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대표되는 육아예능은 이미 지금의 예능계에서는 효력이 다한 아이템이다. 이미 비슷한 형식이었던 MBC ‘무한도전’은 애저녁에 문을 닫았고, 우후죽순처럼 나오던 육아예능은 요리예능, 장사예능을 넘어 지금은 ‘1인가구 예능’ 등 작법이 바뀌어있다. 이 두 프로그램을 TV에서 만나다보면 마치 박물관에 있는 유물을 집안에서 보는 생경함을 느끼게 된다.

나머지 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관찰예능의 형식을 표방한 프로그램이다. 이미 관찰예능 역시 케이블채널에서는 그 시효가 다 됐다. 더 이상 시청자는 출연자의 일상에 카메라를 거치해놓고 여러 명이 앉아 이를 논하는 프로그램에 반응하지 않는다. 퀴즈쇼도 유행하고 집안정리, 탈출, 진실감별, 각종 부캐릭터 예능들이 창궐하고 있다. 하지만 KBS의 박물관 안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엿보이지 않는다.

KBS 예능의 이러한 유산들도 사실 따지고 보면 원조라고 보기 어렵다. ‘1박2일’의 멤버 캐릭터도,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아이들 모습도, ‘살림하는 남자들’의 출연자들의 모습 역시 모두 어떤 프로그램에서 비롯됐다고 봐도 된다. KBS는 최근에는 트로트가 인기를 끌자 ‘트롯 전국체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고 실제 입상자들을 전속으로 묶어 매니지먼트업도 겸하고 있다.

사진출처='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방송캡처 사진출처='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방송캡처

언제부터 이렇게 KBS 예능에서 도전정신과 혁신을 찾아보기 힘들게 된 걸까. 이는 이미 이를 알아채고 2010년대 중반 KBS를 빠져나간 수많은 스타PD의 행렬이 답을 말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5000명에 가까운 조직원들이 묶여있으면서 보신과 안정이 주가 된 조직문화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나아지지 않는 제작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공영방송’이라는 무형의 가치에 모두가 상상력을 제약받고 있는 환경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게다가 최근 지상파의 운영 어려움으로 KBS는 지난 3년 동안 신입공채를 하지 못했다. 계속된 인력의 유출로 PD 조직의 허리연차가 빠져나갔고 이는 기존의 아이템을 사수해 안정적으로 시청률을 만드는 일만이 최고의 가치가 되게 만든다. 이러한 방식은 당장의 성과는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나 갈수록 시청자에게 KBS2 채널이 박물관 같다고 느끼는 느낌을 더하게 할 뿐이다.

최근 KBS는 농촌과 라이브커머스를 합친 ‘랜선장터’ 등의 프로그램을 론칭하기 시작했다. 늦게나마 의미있는 행보라 본다. 하지만 대중의 취향과 기호는 시시각각 변한다.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다가는 이 취향을 맞출 수 없다. 지상파의 위기는 불가항력으로 찾아온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자초한 것인가. 우연히 찾아본 TV 시청률표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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