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LG가…상상 못한 혁신" 구광모의 3년 성과들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오문영 기자 2021.06.24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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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구광모 3년, 성장의 원년(상)

편집자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9일 취임 3년을 맞는다. 구 회장 취임 이후 3년 동안 LG그룹은 변화와 도전의 시간을 거쳤다. 경제계에서는 올해가 구 회장의 뚝심이 빛을 발하는 원년의 해가 될 것이라 평가한다. 과거와 다른 새로운 혁신을 이어온 LG의 과거와 앞으로의 전략을 짚어본다.

비움과 몰입의 미학, 구광모 3년 결단이 키운 LG 시총 65조
"보수적인 LG가…상상 못한 혁신" 구광모의 3년 성과들


선택과 집중. 최근 3년 동안의 LG그룹을 설명할 때 이보다 더 명확한 말이 있을까. 혹자는 지난 3년을 두고 어쩌면 LG그룹에서 부족했던 마지막 퍼즐 한조각이 채워진 시간이라고 말한다. 오는 29일 취임 3년을 맞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1등 LG론'이 만들어낸 변화다.



재계에서는 올해가 '구광모호(號)'의 전환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3년 동안 닦아온 새로운 경영체제와 LX그룹의 계열분리로 온전한 구광모 체제가 가동되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장자승계를 비롯해 유교문화가 짙은 가풍을 고려하면 선친인 고(故) 구본무 회장이 영면한 지 3년이 지나면서 구광모 회장의 대내외 경영행보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관측도 고개를 든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해 2월17일 서울 서초구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를 방문해 미래형 커넥티드카 내부에 설치된 의류관리기의 고객편의성 디자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LG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지난해 2월17일 서울 서초구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를 방문해 미래형 커넥티드카 내부에 설치된 의류관리기의 고객편의성 디자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LG
◇수주 잔고 220조…기대감 드러낸 시장= 취임 이후 성과는 이미 적잖다. LG그룹을 떠받치는 전자·화학·통신의 삼각축에서 성장세가 뚜렷하다. LG전자 매출은 취임 직전 해인 2017년 61조3963억원에서 지난해 63조2620억원으로 뛰었다. 이 기간 LG화학 매출은 5조원 가까이 늘면서 지난해 처음으로 30조원 고지를 밟았다.



LG유플러스 매출도 12조원대에서 13조원대로 올라섰다. 그룹 내 또다른 주력 전자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는 적자 실적을 털어내고 올해 사상 첫 매출 30조원 돌파를 겨냥한다. 주력 사업의 매출이 3년새 10조원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다.

구 회장이 드라이브를 건 자동차 전장(전자장비)과 배터리 사업의 수주 잔고가 220조원에 달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성과는 더 커질 전망이다. 시장에서도 이런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LG그룹 상장 계열사의 시가총액은 지난 3년 동안 70% 가까이 늘었다. 액수로 65조원이다. 구 회장이 취임한 2018년 6월29일 93조6000억원에서 2019년 4월9일 100조3000억원을 거쳐 올해 6월18일 158조1000억원을 찍었다.

지난 4월5일 서울시내 한 전자제품 매장에 LG 휴대폰이 진열돼 있다. LG전자는 이날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고 오는 7월31일부로 MC사업부문(휴대폰 사업) 생산 및 판매를 종료하는 내용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뉴스1             지난 4월5일 서울시내 한 전자제품 매장에 LG 휴대폰이 진열돼 있다. LG전자는 이날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고 오는 7월31일부로 MC사업부문(휴대폰 사업) 생산 및 판매를 종료하는 내용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뉴스1
◇비워야 채운다…독해진 LG= 변화의 시작은 '비움의 미학'에서 싹텄다. 구 회장 취임 직후부터 만성 부실 사업을 도려내는 작업이 시작됐다. LG디스플레이의 조명용 OLED(2019년 4월), LG유플러스 전자결제(2019년 12월), LG화학 편광판(2020년 6월) 사업 등이 정리 또는 매각됐다. 23분기 연속 적자에도 끌고 왔던 휴대폰 사업에서 철수를 결정한 올 초 발표는 그룹 내부에서도 구 회장의 단호함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 장면으로 꼽는다. 3년새 정리한 사업이 크게 잡아 9개다.


재계에서 더 주목하는 지점은 과감한 과거 청산을 공격적인 미래 투자로 이어가는 대목이다. M&A(인수·합병)와 합작법인 출범 등을 통해 9개 사업에 새로 진출했거나 속도를 내고 있다. 사업 청산까지 감안하면 대략 1~2개월마다 한번꼴로 주요 사업에 메스를 댄 셈이다. 재계에선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매각과 인수의 균형을 맞추면서 사업구조를 바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될 만한 사업에 여는 지갑의 규모도 이전과 비할 바 없이 커졌다. 2018년부터 LG 계열사가 단행한 전략 투자 규모는 굵직한 것만 합쳐도 3조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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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넘은 속도·규모…"오너십 혁신"= 구 회장이 선택한 미래 동력은 전장과 인공지능(AI)이다. LG전자의 산업용 로봇기업 로보스타 지분 33.4% 투자, LG전자와 ㈜LG의 오스트리아 자동차 조명기업 ZKW 인수(1조4400억원), LG유플러스의 CJ헬로비전 인수(2019년 8000억원), 마그나인터내셔널과 합작한 LG마그나이파워트레인(2020년 총 1조원 중 LG전자가 51% 차지) 설립이 모두 지난 3년새 이뤄졌다.

특히 로봇 시장은 센서·자율주행·사물인터넷(IoT)·AI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 모두 적용되는 격전지로 꼽힌다. 관련 산업과 기술에서 파생되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몸을 싣겠다는 노림수다. 전장 산업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LG는 이미 '전기차 없는 전기차 그룹'으로 불린다.

시장에서는 LG그룹이 10조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무기로 AI·로보틱스·전장 부문에서 대규모 M&A 시도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진다. 재계 한 인사는 "4대 그룹 중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던 LG가 지난 3년 동안 보여준 변화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이라며 "오너십이 이끌어낸 가장 효율적인 혁신의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고 말했다.

"휴대폰마저 버렸다"…10여개 사업 버린 구광모의 LG 3년

"보수적인 LG가…상상 못한 혁신" 구광모의 3년 성과들
"지금의 LG는 3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모습을 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이 취임 이후 LG그룹이 겪어온 변화를 지켜본 한 재계 인사는 이같이 말했다. 구 회장의 실용주의는 미래 준비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성장이 멈춘 사업은 미련없이 정리했고 남은 여력은 미래 먹거리에 집중했다. 과감한 선택으로 신성장 사업을 선점, 시장 지배력을 빠르게 키워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휴대폰 사업마저 들어낸 뚝심…누구보다 빨랐던 '변신'=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 기회와 위협 요인을 내다보고 선제적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 및 인재 확보에 보다 많은 역량을 집중하겠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가진 사장단 협의회에서 밝힌 지향점이다. 이후 LG는 그의 말대로 누구보다 빠르게 변신했다.

구 회장의 미래 전략은 성장이 멈춘 분야를 청산하는 데서 시작됐다.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비핵심·부진 사업 10여개를 과감히 정리했다. LG전자는 2019년 2월 연료전지 사업을 접었고, 같은해 9월에는 수처리 사업을 매각했다. LG디스플레이의 조명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LG유플러스의 전자결제 사업, LG화학의 편광판 사업도 잇따라 정리되거나 매각됐다.

지난 4월 이뤄진 휴대폰 사업 철수 결정에서 구 회장의 미래 사업 육성 의지가 확연하게 나타났다. 휴대폰 사업은 2015년 2분기부터 적자를 이어왔지만 LG전자는 이 사업에 대해 뚜렷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26년간 선대 회장들이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온 사업인만큼 재정비를 통한 기회를 모색해 왔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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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재정비로 생겨난 여력은 미래 먹거리에 집중했다. 키워야 할 사업이라 판단되면 과감히 지갑을 열었다. 특히 OLED, 배터리, 전장 등 3개 사업 중심으로 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를 이어왔다. 지난 3년간 LG그룹이 인수합병(M&A)와 합작법인 설립에 들인 돈은 4조원에 달한다.

효과는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프리미엄 TV 시장에서의 OLED 대세화를 진전시키고 있다. 중국 광저우 공장과 파주 공장 투트랙 생산체제를 가동해 지난해 450만대 수준이었던 TV용 OLED 패널 생산량을 올해 800만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연내에 TV용 OLED 사업에서 손익분기점을 달성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LG화학에서 분사한 배터리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의 수주잔고는 지난해 말 기준 150조원에 달한다. 연간 배터리 생산 가능 규모는 120GWh(전기차 약 160만대) 수준으로 이미 세계 최대다. 2023년까지 생산능력을 2배 이상 확대해 경쟁사와의 격차를 더욱 벌려 나간다는 방침이다.

또 다른 성장 사업은 자동차 전장 부품이다. 내달 글로벌 3위 자동차 부품 업체인 캐나다 마그나 인터내셔널과의 전기차 파워트레인 합작법인 설립을 앞두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스위스 소프트웨어 업체 룩소프트와 손잡고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합작사 '알루토'도 출범했고, 2018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차량용 조명기업 ZKW를 인수했다. 올해 하반기 흑자전환이 예상되며, 현재 수주 잔액은 7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앞줄 왼쪽 세번째)이 2019년 2월13일 서울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 테크 컨퍼런스'에서 이공계 인재들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LG구광모 LG그룹 회장(앞줄 왼쪽 세번째)이 2019년 2월13일 서울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LG 테크 컨퍼런스'에서 이공계 인재들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LG
◇인사에서도 파격적 행보…젊은 인재 육성·외부영업 통해 '신(新)바람'= 인재 육성은 그룹의 미래 성장을 위해 구 회장이 공을 들인 분야 중 하나다. LG는 젊은 사업가들을 체계적으로 집중 육성하는 한편, 매해 인사를 통해 젊은 인재들을 전면에 배치해 변화를 독려하고 있다.

구 회장의 인재 경영 기조는 정기 인사만 보더라도 명확히 드러난다. LG는 최근 3년 간의 인사에서 CEO(최고경영자) 및 사업본부장급 최고경영진 21명을 새로 선임했다. 구 회장 취임 첫 해인 2018년에는 134명의 역대 최대 규모의 신규 임원이 선임됐다.

젊은 인재에 대한 구 회장의 관심은 남다르다. 2019년에는 젊은 인재를 발굴해 육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충분한 기회를 부여해 기존 관성을 깨고 혁신을 거듭하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구 회장는 신임 경영자들과 개별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으로 최고경영진 후보진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 육성뿐 아니라 외부 영업을 통해서도 빠르게 인재를 확보하고 있다. 취임 후 첫 경영진 인사에서 LG화학이 1947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CEO로 외부인사인 신학철 3M 부회장을 선임한 것을 시작으로 3년간 총 50여명의 임원급 외부 인재를 영입했다.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조직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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