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 억울한 사형도 모자라 집까지 가압류 당해”

뉴스1 제공 2021.06.1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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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산내사건 유족회장, 靑 국민청원 통해 호소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사건 유족회장이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 ©뉴스1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사건 유족회장이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 ©뉴스1


(대전=뉴스1) 최일 기자 = 한국전쟁 발발 71주년이 다가오는 가운데, 전쟁의 비극인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사건의 유족회장이 자신의 가정사와 관련된 기구한 사연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려 국가가 자행한 폭력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산내사건 유족회장인 전 모(74) 씨는 최근 ‘아버지가 억울한 사형을 당한 것도 모자라 집까지 가압류 당했습니다’라는 청원을 통해 “국가로부터 당한 억울함이 사무쳐 이를 풀고자 청원을 드린다”며 “제 소원은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사건에 연루된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 해원(解寃)하고, 태산 같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1948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전 씨는 “1950년 아버지께서 만 25세 되던 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육군 중앙고등군법회의를 거쳐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살해당하셨다. 어머니는 제가 5살 되던 때 할아버지께서 강제로 재혼을 시켜 저는 부모님의 얼굴도 모른 채 살았다”고 말했다.

전 씨에 따르면 11살 되던 1959년 그의 할아버지는 두 아들을 한국전쟁에서 빼앗긴 충격과 연좌제에 시달리다가 끝내 정신줄을 놓았다. 할머니는 전 씨의 아버지가 붙잡혀갈 때 경찰과 실랑이를 하다 소총 개머리판에 얻어맞아 오른쪽 어깨뼈가 부러져 팔을 못 쓰고, 양쪽 귀를 얻어맞아 청력을 잃어 귀머거리가 됐다.



전 씨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밖에 다니지 못한 채 조부모 병간호와 생계를 위해 식모살이, 농사일, 미용일 등을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누에고치를 실로 만드는 잠업공장에 들어가려 해도 아버지가 좌익사범이라는 이유로 취업도 제대로 못 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아버지에 관한 진상 규명을 신청, 국가배상금으로 희생자 본인 몫인 8000만 원, 배우자 몫인 4000만 원을 받았다. 또 미처 규명하지 못한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2011년 재심을 청구, 2013년 국가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아버지는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사형당했다는 법원 결정문을 받은 것.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관련 사진자료. (KBS 대전방송총국 제공) ©뉴스1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관련 사진자료. (KBS 대전방송총국 제공) ©뉴스1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관련 사진자료. (KBS 대전방송총국 제공) ©뉴스1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관련 사진자료. (KBS 대전방송총국 제공) ©뉴스1
그렇게 무죄 판결을 받고 난 후 국가가 부당한 사형에 따른 형사보상금 3000만 원, 한 달여 구금기간의 불법 구금액 737만 원을 지급하라는 법원 결정을 받고 모든 문제가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전 씨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16년 육군본부와 대전고검이 아버지의 무죄 판결에 따른 형사보상금이 ‘부당이득’이라며 전 씨에게 반환소송을 제기한 것.

1심 재판에서 법원은 육군과 검찰의 손을 일부 들어주며 보상금의 절반을 국가로 회수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항소심 재판부는 2017년 육군과 검찰의 주장을 기각시켰다. 결국 육군과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법리 검토 중이란 답변만 거듭되고 있다.

전 씨는 “저는 본의 아니게 천애고아(天涯孤兒)로 세상을 살며 혼자 몸으로 3남매를 길렀고, 30년 동안 미용일을 하며 돈을 모아 집 한 채를 마련해 살고 있다. 그런데 육군과 검찰이 부당이득 환수소송을 제기하면서 집을 가압류했다. 5년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며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유족들 중 민사보상과 형사보상을 모두 받은 유족이 저 말고도 꽤 많은 줄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제가 육군과 검찰의 표적이 됐는지 모르겠다. 이런 기막힌 일을 당한 것도 모자라 죽기 전까지 국가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끝까지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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