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수도" 이건희 회장의 경고…'기술의 삼성'이 흔들린다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오문영 기자 2021.06.1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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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기로에 선 삼성 반도체(上)

편집자주 세계 1위 삼성 반도체가 기로에 섰다. 메모리 분야의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파운드리 부문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 세계 파운드리 1위 TSMC는 삼성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고 중국에 맞선 미국의 반도체 굴기로 지정학적인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 총수 부재까지. '엎친 데 덮친' 삼성의 고민을 짚어본다.

바이든 '땡큐'의 이면…"잘못하면 日처럼" 경고등 켜진 삼성
30년 가까이 한국 경제의 기둥 역할을 해온 삼성전자의 반도체 경쟁력에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삼성 특유의 초격차를 독려하기 위해 내부에서 먼저 위기론을 꺼내들었던 과거 몇몇 사례와는 상황이 다르다. 사이렌이 외부에서 울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경쟁사에 역전을 허용한 영업이익률, 메모리 후발업체의 기술 추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선두업체와의 격차 확대 등 '기술의 삼성'을 흔드는 균열 조짐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일본 반도체의 몰락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목격한 국내 반도체 전문가들 사이에서 "'29년 연속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D램 슈퍼호황' 같은 수사에 취할 때가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무너지는 메모리 초격차



"사라질 수도" 이건희 회장의 경고…'기술의 삼성'이 흔들린다


올 1분기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의 영업이익률은 17.7%로 미국 인텔(18.8%)은 물론, 메모리반도체업계 3위의 마이크론(20%)에도 뒤졌다. 전문가들은 수익성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을 경쟁력 저하에서 찾는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기술·시장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시장 우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마이크론의 14㎚(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 D램, 176단 낸드플래시 세계 최초 양산이다.

삼성전자가 '마이크론 사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동안 업계 1위 기술력이 실적을 떠받치는 강력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초격차 기술력이 D램 40%대, 낸드플래시 30%대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로 이어졌고 삼성전자는 이런 점유율을 바탕으로 수급 균형을 유지하면서 수익성을 챙겼다.


실제로 기술 격차가 줄면서 삼성전자의 D램 점유율(옴디아 집계)은 2016년 46.6%에서 지난해 41.7%로, 낸드플래시 점유율은 36.1%에서 33.9%로 하락했다. 이 기간 마이크론의 D램 점유율은 20.4%에서 23.5%로 3%포인트, 낸드는 1%포인트 올랐다.

지난 4월 삼성전자의 실적 콘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D램 시장에서 15㎚ 제품 비중은 우리가 업계 최고 수준"(이상 한진만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이라는 이례적인 언급이 나온 것을 업계에서는 이런 배경에서 이해한다. 삼성전자가 예전 같으면 영업비밀 차원에서 언급하지 않았을 말로 기술력을 과시한 게 초조함을 드러낸 것이라는 얘기다.

◆투자·기술·장비 파운드리 삼중고

"사라질 수도" 이건희 회장의 경고…'기술의 삼성'이 흔들린다
메모리 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업계 1위 TSMC를 2030년까지 따라잡겠다고 선언한 파운드리 분야는 더 답답한 상황이 됐다. 지난해 점유율은 TSMC가 54%, 삼성전자가 17%로 1년 전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TSMC의 시장점유율이 2년 전 48%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장세가 가파르다.

초미세 공정에선 5㎚까지 엇비슷하게 달리고 있지만 반도체 디자인·후공정 업체 등과 연계해 제공하는 '종합서비스' 경쟁력은 삼성전자가 확연하게 뒤처진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TSMC가 최근 일본 내 연구개발시설과 생산라인을 잇따라 검토하고 현지 장비·후공정 업계와의 밀착을 꾀하면서 따라잡기가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집중력 분산의 문제도 제기한다. TSMC는 올 초 280억달러(약 31조4500억원) 투자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지난 4월에는 앞으로 3년 동안 1000억달러(약 112조4000억원)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포함해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2030년까지 투자하겠다고 밝힌 133조원을 불과 3년만에 쏟아붓겠다는 계획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삼성전자가 올해 40조원 이상의 반도체 시설투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메모리반도체 투자를 제외하고 파운드리 분야만 비교하면 TSMC와 격차가 크다"고 지적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팹리스(반도체 설계)까지 전선이 넓은 삼성전자의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미중 사이 갈림길…"10년 뒤에도 감사인사 받을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1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반도체 공급망 확충을 논의하는 화상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이날 화상회의에 참석했다. /로이터=뉴스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12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반도체 공급망 확충을 논의하는 화상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이날 화상회의에 참석했다. /로이터=뉴스1
시야를 사업 외적인 부분으로 확장하면 국제정치 역학구도에서 갈수록 거세지는 미국의 압박도 삼성전자를 옥죄는 불안 요소로 꼽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선언하면서 TSMC가 일본, 미국과 함께 반중(反中) 연합을 주도하는 데 반해 삼성전자는 위태로운 양다리 외교를 이어가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에 '땡큐'라고 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이재용 부회장은 가슴이 덜컥했을 것"이라며 "이건희 회장이 생전 '10년 뒤엔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이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5년 뒤, 10년 뒤에도 미국 대통령에게 '땡큐'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정부 지원이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중국 SMIC의 경우 2014~2018년 기준으로 매출 대비 정부 지원금 비중이 6.6%, 마이크론은 3.3%에 달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0.8%에 그쳤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잘못하면 텃밭인 메모리반도체를 뺏기고 시스템반도체에서도 성과를 못 내는 진퇴양난에 처할 수 있다"며 "TSMC를 추월할 것인지 메모리와 균형을 맞추며 따라가는 수준에 만족할 것인지 확실한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국가대항전 된 반도체…"中 굴기 걱정하던 때가 나았다"

"사라질 수도" 이건희 회장의 경고…'기술의 삼성'이 흔들린다
중국이 던진 반도체 굴기(일어섬) 부메랑이 미국의 굴기가 돼 돌아왔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긴장 수위는 어느 때보다도 높다. 중국의 도전을 걱정할 때가 차라리 나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막대한 자본으로 추격을 시도했던 중국과 다르게, 미국은 이미 반도체 산업 종주국으로서 막대한 핵심원천기술을 보유한 나라기 때문이다.

국가대항전으로 흐르는 산업 지형, 유리한 위치 점한 TSMC

미국의 반도체 패권 장악 시도로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시장의 국가대항전 성격이 짙어진다는 점이다. 내셔널리즘 속에서 반도체는 곧 국력이 되고, 여기서 그간 쌓아온 기업 간의 신뢰의 중요성은 떨어지게 된다. 지형은 이미 미중 역학관계를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 4월 반도체 긴급 대책 회의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동맹'을 못박았다. 회의에 참석했던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잇따라 화답했다. 인텔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재진출을 선언했고, TSMC는 당초 120억달러(약 13조4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것을 포함해 추가로 최대 5개의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가 간의 관계가 주 역할을 하게 될 신(新)시장에서 삼성의 파운드리 경쟁자인 TSMC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중국의 인도·태평양 진출을 저지할 수 있는 최전방에 위치한 대만은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과 떼놓고 볼 수 없는 나라다. 미국은 최근 대만과의 경제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모양새다. 오바마 정부 이후 5년간 중단됐던 무역·투자회담 재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지원 등에 업은 인텔과 마이크론의 약진도 삼성에게는 부담이다. 파운드리 시장이 TSMC와 삼성전자, 인텔의 3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미세공정 기술에서 3나노 경쟁을 벌이는 삼성과 TSMC에 비해 인텔은 7나노 생산에도 애를 먹고 있지만 대규모 자본력과 정부의 파격 지원을 겸한 인텔이 조만간 격차를 좁힐 것이라는 관측이다.

반도체 질서 흔들 힘 있는 미국, 불안요소 여전한 삼성

국내 반도체 업계의 불안감은 무엇보다도 미국이 반도체 시장 질서를 흔들만한 힘을 갖췄다는 데서 비롯된다. 업계에서 특히 우려하는 부문은 반도체 투자에서 70~80% 비중을 차지하는 장비 분야에서 미국이 갖고 있는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이다.

"사라질 수도" 이건희 회장의 경고…'기술의 삼성'이 흔들린다
반도체 장비 기업이라고 하면 보통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공을 들였던 네덜란드의 ASML이 떠오르지만, 이는 반도체 공정 중 하나인 '노광'에 국한된 얘기다. 범위를 반도체 전공정으로 넓히면 미국의 존재감은 커진다. 특히 반도체 원판 위를 정밀하게 깎아내 회로를 만드는 식각 공정 관련 장비 시장에서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램리서치는 넘사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장비 시장 지배력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로는 일본이 거론되지만, 미국은 일본과 반도체 동맹을 맺으며 장비 시장 독점 구조를 만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지난 4월 백악관에서 가진 첫 정상회담에서 중국 견제에 힘을 합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반도체 공급망 공동 투자를 약속했다.

반도체장비의 국산화율이 20%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같은 변화는 국내 기업에 불안요소일 수밖에 없다. 2019년 7월 일본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는 화학 분야의 기초 역량을 기반으로 단기간에 어느정도 극복이 가능했으나,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는 장비 분야의 독립은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업계에서 나온다.

이광만 제주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미국이 당장에 반도체 장비를 무기로 내세워 삼성을 견제할 가능성은 적어보인다"면서도 "작은 공급망 문제일지라도 적잖은 손실이 야기될 수 있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자립화는 이뤄내야 할 과제"라 밝혔다.

오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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