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진, 매일 기적을 쓰고 있는 남자

머니투데이 권구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6.1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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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개봉 영화 '발신제한'서 첫 원톱주연

사진제공=CJ ENM사진제공=CJ ENM



"거창하지만 지금 개봉 레이스를 하고 있습니다. 1999년 20만 원 들고 상경했던 저로서는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기적입니다.”

조우진이 지난 13일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얼굴을 비췄다. 영화 ‘발신제한’(감독 김창주, 제작 TPSCOMPANY)의 홍보 프로모션의 일환이었을 터, 사실 열일의 아이콘으로 많은 작품을 소화하는 배우이건만 상대적으로 예능 출연은 한 손에 꼽힐 정도로 귀한 나들이었다. 지난 2017년 MBC ‘라디오스타’를 통해 전국을 초토화시켰던 트와이스의 TT 커버 댄스를 떠올린다면 그의 예능적 재능이 낭비되고 있음이 아쉬울 따름.

이날 방송에서 조우진은 자신의 무명 시절로 시곗바늘을 되감았다. 영화 ‘내부자들’의 조실장으로 대중들에게 이름 석 자와 눈도장을 찍기까지 무려 16년. 그 긴 시간 속에 수많은 설움을 담아왔겠지만, 그중 하나로 드라마 단역에 출연키로 했다가 언질도 없이 다른 배우로 캐스팅이 대체됐던, 집에 와서 소주 두 병 들이켰던 서른 살 즈음의 쓰디쓴 기억을 “그때 세상이 다 어두워졌다”는 말로 다시 곱씹었다.

하여 그가 자신의 첫 주연작에 대한 소감으로 꺼내든 ‘기적’이라는 단어는 진심이다. 무명의 터널을 지나는데 1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내부자들’ 이후 3년 만에 제40회 청룡영화상의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조우진은 영화 ‘발신제한’을 통해 주연 배우 맨 앞에 이름을 올렸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니 자신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나 싶다”며, “눈 감았다 뜨고 나니 지금 이 순간에 왔다”고 데뷔 후 22년이라는 긴 세월을 찰나로 승화시켰다.

사진제공=CJ ENM사진제공=CJ ENM

영화 ‘발신제한’은 은행센터장 성규(조우진)가 아이들을 등교시키던 출근길 아침, ‘차에서 내리는 순간 폭탄이 터진다’는 의문의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를 받으면서 한순간 도심 테러 용의자로 지목되고 위기에 빠지게 되는 도심 추격 스릴러. 폭탄이 설치된 버스를 내몰았던 키아누 리브스의 ‘스피드’와 전화 목소리를 통해 펼쳐지는 폭탄 테러를 그린 ‘더 테러 라이브’의 매력을 하나로 뭉친 듯한 매력으로 러닝타임 내내 가슴을 졸여오는 긴장을 선사한다.

‘발신제한’은 조우진이 열고 조우진이 닫는 원톱 영화다. 러닝 타임 내내 그가 등장하지 않는 신을 찾기가 힘들 정도. 영화 전체를 자신의 힘으로 끌고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미 탄탄한 내공을 검증받은 배우인 만큼 연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어진 과제를 훌륭하게 풀어냈다. 덕분에 그를 좋아하는 관객에게 ‘발신제한’은 94분이라는 시간 동안 조우진이라는 배우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선물이 됐다.

무엇보다 조우진이 대단한 건 ‘발신제한’의 성규는 연기력을 뽐내기엔 상당한 제약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성규는 극 중 대부분을 ‘차 안’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존재한다. 심지어 카 시트 밑에 폭탄이 있다는 설정 탓에 그 좁은 공간 안에서의 움직임마저 꽁꽁 묶였다. 뒷좌석에 타고 있는 아들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는데도 어찌 손 쓸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조우진이 차 밖에서 연기하는 모습은 극 초반 차에 탑승하기 전 잠깐과 과거를 회상하는 신 정도. 러닝타임으로 따져봐야 5분 남짓의 미비한 시간이다.

계속 앉아 있어야 하니 신체적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며 없던 폐소공포증도 생길 노릇이었다. 육체와 정신의 애로사항 속에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더불어 몸을 쓰는 것이 제한이 됐으니 목소리와 표정으로만 열정과 냉정 사이를 오가는 성규의 희로애락을 표현해야 했다. 심지어 대사의 절반 이상을 휴대전화 속 상대와 소화했다. 주고받는 리액션을 통해 감정을 이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연기 과정임을 감안한다면, ‘발신제한’의 조우진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펼친 셈이다.

사진제공=CJ ENM사진제공=CJ ENM

허나 이 어려운 숙제를 능히 풀어내는 조우진을 즐기는 것이 ‘발신제한’이 품고 있는 가장 큰 재미다. 그 백미가 차량 안에서 범인의 무리한 금전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VVIP 고객에게 투자 유치를 권유하는 신이다. 전방을 주시하지만 몹시 흔들리는 눈동자, 바쁘게 핸들을 움직이는 손, 갑작스레 들이닥친 위기 상황에 피가 마르는 표정의 얼굴이지만 목소리와 억양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상냥한 영업 사원으로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표현한다. 그런 아빠의 모습에 아연질색하는 딸 혜인(이재인)의 표정이 조우진의 연기에 놀란 관객의 마음과 닮아 있어 또 다른 재미를 안긴다.

조우진의 기적은 이제야 겨우 시작됐다. 인터뷰는 물론 자신의 팬클럽에 남기는 글까지, 그는 언제나 초심을 강조한다. 무명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자신의 연기 신경 하나하나에 그때의 감정이 스며들어 있음이 자명할 터, 하여 앞으로 보여줘야 할 연기가 아직도 너무나도 많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스타가 되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던 배우가 아니란다. 그저 연기라는 업을 통해 먹고살자고 생각했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성장을 했는지, 생각할 시간도 없었고 자격도 없다고 말한다. 그저 이 악물고 버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소회하는 조우진이다. 자신은 이 영화로 주연배우가 된 것이 아니라고, 그저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어쩌면 너무나도 거창한 바람. 조우진이 초심을 오롯하게 간직하는 한 그가 펼쳐내는 기적은 계속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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