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키워두면 속수무책 빼앗기는 해외브랜드...막을 '법'이 없다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세종=최우영 기자 2021.06.16 04:00
글자크기

[보호받지 못하는 '브랜드 권리금' ②]

바버 홈페이지 캡쳐/사진=바버 홈페이지바버 홈페이지 캡쳐/사진=바버 홈페이지


중소기업이 무명의 해외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와 키운 끝에 인기를 얻으면 대기업이 판권을 가로채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런 경우 대기업들은 보통 중소기업과 해외브랜드 간 계약이 끝나는 시점을 노리기 때문에 공정거래법 등 현행 법률로는 사실상 규제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이 국내 시장을 개척하며 브랜드를 성장시킨 노력이 인정받도록 '브랜드 권리금'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영국 패션 브랜드 '바버'의 국내 독점 수입·판매업체였던 엔에이치인터내셔날이 LF(옛 LG패션)를 상대로 신청한 판매금지 가처분 사건에 대한 심문기일을 오는 21일로 잡았다. 법원은 이날 심문 결과를 토대로 가처분 신청의 인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엔에이치는 2011년 당시 한국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바버를 처음으로 국내에 들여온 업체다. 엔에이치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한 마케팅·투자로 바버를 국내에서 유명 브랜드로 키웠는데, 지난 5월 LF가 판권을 가져가면서 하루아침에 사업 기반을 잃었다고 토로한다.

공정거래위원회/사진=유선일 기자공정거래위원회/사진=유선일 기자
비단 엔에이치 뿐이 아니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소송 비용조차 감당 못할 대부분의 영세 사업자들은 대부분 법정으로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 상황이다.



이런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로는 대개 공정거래법이 꼽힌다. 그러나 외형상 기존 계약(중소기업-해외브랜드 간)이 종료된 후 새로운 계약(대기업-해외브랜드 간)이 성립되는 형태인 만큼 공정거래법 적용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부 전문가는 공정거래법상 금지된 '거래상지위 남용'이나 '경쟁사업자의 부당한 고객유인' 혐의를 적용할 여지가 있다고 분석하지만, 실제 제재로 이어지려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한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거래상지위 남용'은 기업이 특정 자산을 투자했는데 본전도 뽑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거래가 중단된 경우에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데, 해외브랜드 총판 계약 사례의 경우 이런 요건을 충족하기가 어려워 보인다"며 "'부당한 고객유인'을 적용하려면 대기업이 판권을 갖고 가기 위해 부당하게 해외브랜드를 유인·강제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우 중소기업이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상가 권리금도 과거에는 법적인 보호 대상이 아니었지만 2015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제도권에 편입됐듯 '브랜드 권리금'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제도적 기반이 갖춰지기 전이라도 정부가 모니터링·분쟁조정 등으로 당장 중소기업이 입는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상생협력연구실장인 남윤형 수석연구위원은 "대기업도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상도덕상의 문제로만 이 같은 행위를 막을 수는 없고 결국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이 만들어지기 전이라도 공정위나 대중소기업협력재단 등에 이런 불공정행위를 신고하고, 조정신청을 할 수 있는 상설 모니터링 기구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며 "법제화 이전에 중소기업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