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 방치했다간…블랙록·뱅가드가 "이사회 교체"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2021.06.22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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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으로 가는 길](하)-⑥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탄소중립'의 긴 항해를 시작했다. 기존의 화석 연료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강자인 대한민국에 탄소중립은 생존의 필수요건이자 새로운 기회의 장이다. 2050년 탄소 발생 '넷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준비 상황, 풀어야할 과제 등을 점검한다.

탄소 배출 방치했다간…블랙록·뱅가드가 "이사회 교체"


# "지분 0.02%로 이사 3명을 교체했다"

올해 미국 주주총회의 최대 화두는 엑손모빌의 이사 교체다. 행동주의 펀드 '엔진넘버원(Engine No. 1)'이 추천한 인사가 엑손모빌 이사회 12석 중 3석을 차지한 것이다. 엔진넘버원은 기후변화에 대한 엑손모빌의 경영전략이 미흡하다며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이사진 선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엔진넘버원이 지분 0.02%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손을 들어준 덕분이다. 엑손모빌의 18%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뱅가드(7.8%), 블랙록(4.8%), SSGA(5.8%) 등이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이들은 모두 '탄소중립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Net Zero Asset Manager Initiative)에 참여하고 있다.

투자의 조건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꼽는 글로벌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후 변화가 실제 경제·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글로벌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2050년까지 투자한 모든 자산군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탄소중립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가 자산운용의 새로운 규범이 되고 있다. 이 이니셔티브에 참여한 기관투자자는 모두 87곳, 운용자산은 37조달러다. 전세계 운용사들의 자산의 약 40%에 달하는 금액이다. 세계 1~6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뱅가드, UBS, 피델리티, SSGA, 알리안츠 외에도 아비바, 라자드, 맥쿼리 등이 참여하고 있다.

탄소중립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는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섭씨 1.5도로 제한하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글로벌 자산운용사의 모임이다. 자산운용사들은 2030년까지 탄소 중립을 위한 중간 자산 배분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이니셔티브는 투자자산에서 실제적인 탄소배출 감소를 우선 목표로 하고 탄소 상쇄의 경우 장기적인 탄소 제거 방법에 투자할 것을 권하고 있다.

팀 버클리 뱅가드 회장은 가입 성명서에서 "기후 변화는 투자의 장기적이고 중대한 위험"이라며 "자산 관리인으로써 기후 위험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러스 타라포레발라 SSGA 대표이사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로써 기후 변화와 관련된 전체적인 위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이해관계자들이 (친환경으로의) 전환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적었다.

이들은 주주총회, 주주서한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인게이지먼트(기관투자가의 적극적 대화와 관여)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최대 ETF(상장지수펀드) 운용사인 블랙록은 올해 발간한 스튜어드십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탄소집약적인 기업 440곳 중 이사직 관련 64명과 69곳의 기업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블랙록은 또 191개 기업을 관찰대상으로 지정하고 이들 기업이 기후 변화 관련 위험 관리와 보고에 충분한 진전이 없을 경우 올해 이사직 안건에서 반대표를 행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직접적인 대화 상대다.

블랙록은 지난해 화석연료 관련 매출이 전체 매출의 25%를 넘는 기업들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한 뒤 액티브 펀드에서 관련 종목들을 모두 편출시켰다. 지수를 추종해야 하는 패시브 펀드에서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포스코, 한국전력 등을 담고 있지만 인게이지먼트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블랙록의 한국기업 주주제안 표결 참여도는 2019년 12개사에서 지난해 27개사로 2.3배 늘었다. 뱅가드는 1건에서 4건으로 증가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경제 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기업의 지속 성장 가능 여부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며 "탄소배출과 관련한 글로벌 규제가 계속 제정되고 있어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는 자산투자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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