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초격차에 삼성이 당하다"…'美日 밀월' TSMC의 역습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1.06.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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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초격차에 삼성이 당하다"…'美日 밀월' TSMC의 역습


"삼성을 메모리반도체 1위 업체로 만든 핵심 전략(초격차)을 TSMC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삼성의 추격을 뿌리치는 데 활용하고 있다."

12일 전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가 미국에 이어 일본에도 생산라인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를 접한 반도체업계 한 인사의 촌평이다. 초격차 전략은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후발업체가 넘볼 수 없을 정도의 투자를 통해 기술력과 점유율 격차를 벌려 독보적인 1위를 유지해온 전략이다. TSMC의 최근 행보가 삼성전자의 이런 초격차 전략을 빼닮았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초격차 전략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삼성으로선 더 답답하고 힘든 국면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대신 미일…초격차 다중포석
대만 TSMC 본사. /머니투데이DB대만 TSMC 본사. /머니투데이DB


TSMC의 초격차 전략은 최근 잇단 투자에서 드러난다. 올 들어 TSMC가 발표했거나 업계에 전해진 생산라인 건설 계획이 8건에 달한다. 모두 조단위 규모의 투자다. 120억달러(약 13조4000억원)를 투입하는 미국 애리조나 파운드리 라인은 이미 지난달 착공했다. TSMC는 5㎚(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 생산라인을 포함해 애리조나에만 최대 6개의 라인을 건설할 계획이다.

올해 안에 대만에 2㎚ 시범 생산라인도 구축하기로 했다. 당초 예상보다 3~4개월 빨라진 움직임이다. 시범 생산라인은 본격적인 양산 직전에 안정적인 제품 수율(전체 생산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을 확보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다. 시범 라인에서 높은 수율이 나오면 곧바로 양산으로 이어진다.

삼성전자는 현재 5㎚ 공정 양산에 이어 3㎚ 공정을 개발 중이다. 최첨단 공정인 3㎚를 넘어 차세대 기술로 불리는 2㎚ 공정에서 TSMC가 삼성전자보다 한발 앞서 내딛는 셈이다.


기술 협력 노림수…미일과 삼각동맹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도쿄 총리관저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AFP=뉴스1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 23일(현지시간) 도쿄 총리관저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AFP=뉴스1
TSMC가 업계를 또 한번 놀래킨 대목은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전한 일본 현지 생산라인 건설 계획이다. 이 신문은 TSMC가 일본 정부와 구마모토현에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건설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TSMC가 지난 2월 일본 이바라키현 츠쿠바시에 R&D(연구개발) 거점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생산라인까지 세울 경우 그렇지 않아도 공고한 일본 시장 장악력이 이대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생산라인 검토 부지로 보도된 구마모토현에는 TSMC의 주요 고객사인 소니의 주력 공장이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 등에 쓰이는 이미지센서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인 소니는 그동안 상당 규모의 반도체 생산을 TSMC에 맡겨왔다.

여기에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일본 소재·부품·장비업체와 협업 강화가 시장에 미칠 영향도 상당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반도체를 전자기기에 탑재할 수 있는 상태로 가공하는 작업) 분야에서 양측의 시너지에 주목한다.

반도체 미세공정(회로를 더 작고 집약하는 기술)이 나노미터 단위의 한계치에 가까워지면서 최근 업계에서는 후공정 기술이 '미운 오리 새끼'로 거듭났다. 반도칩 자체를 더 작게 만드는 기술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칩을 포함한 모듈을 압축적으로 포장하는 기술이 미세공정 못지 않은 기술력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패키징 전문업체 이비덴, 소재업체 아사히카세이, 장비 제조업체 시바우라메카트로닉스 등이 TSMC의 또다른 노림수라는 분석이다.

점유율만큼 전략도 격차…삼성 해법 모색 답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10월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왼쪽부터 ASML 관계자 2명,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최고기술책임자). /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10월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왼쪽부터 ASML 관계자 2명,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최고기술책임자). /사진제공=삼성전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삼성전자다. TSMC가 공격적인 투자와 미일과의 관계 강화로 시장 장악력을 키우는 동안 삼성전자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20조원 규모의 미국 내 파운드리 생산라인 투자를 공식화했지만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쓸지는 여전히 함구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TSMC와 삼성전자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삼성전자의 투자규모는 TSMC와 비교해 낮은 수준"이라며 "삼성전자와 TSMC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은 TSMC가 54%, 삼성전자가 17%로 전년보다 격차가 확대됐다.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중국 제제에 나서면서 미국과 일본, 대만이 밀착하는 신(新) 반도체 동맹에서 어정쩡한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업계 한 인사는 "중국과의 정치적 역사적 맥락에서 TSMC는 중국시장을 버릴 수 있지만 삼성전자는 그렇지 않다"며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공격적인 투자를 가로막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에서도 이런 분석을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답답한 상황이라는 하소연이 흘러나온다.

업계 또 다른 인사는 "현실적으로 시장 점유율이 2배 이상 차이나는 TSMC와 삼성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에도 그만큼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파운드리에만 집중해 초격차 전략에 나선 TSMC와 달리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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