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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미친X여도 좋은 '보통 남자' 판타지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1.06.1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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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사진제공=카카오TV정우, 사진제공=카카오TV




이런 이웃은 많다.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동네를 배회하고, 가끔 마주쳐도 고개만 까닥하는 수준으로 짧은 인사를 나누는 이웃. 예전과 달리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고, 그러다보니 종종 오해가 생겨 서로의 존재가 불편해지는 경우도 있다. 층간소음 하나로도 칼부림나는 세상인 만큼 "오다가다 부딪히지 않게 서로 조심하자"며 까칠하게 구는 이웃은 생각보다 흔하게 있다.

이런 이웃은 없다. 변태를 만나 비명을 지르는 사람 앞에 한달음에 달려와 멋있게 주먹을 날려주고, 다신 위험한 일을 당하지 말라며 호신용 호루라기를 선물하는 이웃. 불안장애를 가져다 준 과거의 사건이 동네에 소문나자 또 다시 이웃이 상처입을까 "너를 믿는다"며 손까지 잡아주는 이웃. 또 엘리베이터 안에서 헬멧을 쓴 낯선 이를 보고 공포에 떨자 애인인 척 연기해주는 이런 세심한 이웃은 마치 유니콘처럼 아무도 본 적 없는 존재다.

카카오TV '이 구역의 미친X'의 노휘오(정우)는 이렇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옆집남자다. 분노조절장애를 앓는 탓에 미친X처럼 여기저기서 언성을 높이며 이웃 민경(오연서)과도 곧잘 다투지만, 실은 '개새'(개처럼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짭새)라 불리는 열정의 형사. 일상과 환상 사이에서 튀어나온 이 남자 휘오는 '이 구역의 미친X'의 러브라인에 독특한 판타지적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말투는 거칠지만 속은 다정하고, 여장을 즐기는 남자 이웃과도 잘 지내는 편견없는 시선의 소유자. 이런 캐릭터가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흔히 떠올릴 만한 정석적인 꽃미남이 아닌, 인생의 곡절을 꽤 겪어봤을 법한 인상의 배우 정우에 의해 완성됐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응답하다 1994'에서도 겪었듯 정우는 현실과 비현실의 존재를 잘 버무리며 곧잘 '잘생김'을 연기했던 배우다. 휘오 역시 쓰레기처럼 시청자들에게 연애하고 싶은 선망의 캐릭터로 스며들고 있다.




정우, 사진제공=카카오TV정우, 사진제공=카카오TV
2001년 단역으로 데뷔해 오랜 세월 건들대는 캐릭터들만 연기하면서도 '아는 사람은 아는' 연기파 배우였던 그가 하루아침에 '로맨스 대상'으로 떠오른 건 '응답하라 1994' 쓰레기를 만나면서다. '짝패'에서 패싸움에 진 뒤 땅에 파묻혀도 끝까지 자존심을 챙기던 왕재(안길강)의 아역, 겁이 많으면서도 폼나는 학창시절을 보내려 '가오'를 잡던 '바람'의 짱구를 연기했던 그가 무심한 성격조차 매력으로 보이게 하는 로맨스물의 치트키가 될 줄이야. 그것도 쓰레기라는 캐릭터 단 하나로 말이다. 그러나 정우는 쓰레기 이후 오랜 기간 이러한 로맨스물에서 종적을 감춰왔다. 대신 사람 좋은 얼굴로 히말라야를 등반하고, 정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법정 앞에 서고, 찢어지게 가난해도 제비 다리를 고쳐주는 성격 좋은 흥부를 연기하며 얼굴을 달리해왔다.
'이 구역의 미친X'는 '응답하라 1994' 이후 정우의 첫 드라마이자, 20년 연기 인생의 세 번째 멜로물이다. 정우에게 쓰레기는 인생 캐릭터임과 동시에 넘어야 할 숙제였다. 자신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연기가 어떤 것인지 실감한 정우는,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휘오라는 또 다른 캐릭터로 과거의 판타지를 재현했다. 기시감보단 반가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그런 오랜 시간을 보낸 뒤에야 말이다. 휘오에게서 쓰레기의 모습이 겹쳐지는 건, 정우만이 지닌 '보통 남자' 판타지 때문이다. 어디에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아무 데도 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같이 싸워달라"는 민경의 말에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네"라며 무심하게 악수를 청하는 정우의 모습에 자연스레 손을 뻗었다면 당신은 이미 갇혔다. 정우의 로맨스 판타지의 세계에.


한수진 기자 han199131@iz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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