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최초 '여성 이사회 의장'…효성, 가장 높은 유리천장 깼다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김성은 기자 2021.06.09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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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준 효성 회장/사진제공=효성조현준 효성 회장/사진제공=효성


효성그룹이 가장 높은 유리천장을 깼다. 재계 최초로 여성 이사회 의장을 배출했다. 조현준 회장이 내려놓은 이사회 의장직에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을 선임했다. 여성 환경전문가를 그룹 의사결정단계 가장 높은 곳에 배치한 것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트렌드가 재계 분위기를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효성은 김 전 장관이 그룹 지주사 (주)효성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됐다고 8일 밝혔다. 효성은 김 의장이 지난 2019년 3월 사외이사로 이사회에 합류했고, 올 3월 이사회를 통해 선임돼 의장으로 활동을 개시했다고 덧붙였다.

재계에서 지주사는 물론 계열사에 여성 이사회 의장이 선임된건 이번이 처음이다. KT가 지난 2006년 여성인 윤정로 의장(카이스트 교수)을 선임한 적 있지만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KT의 지배구조를 감안할 때 민간기업인 효성의 결단과는 성격이 다르다.



의사결정 최고단에 우먼파워, 효성의 도전
김명자 (주)효성 이사회 의장김명자 (주)효성 이사회 의장
국내 기업 이사회에 여성 비율이 낮다는 것은 성별 다양성 확보의 차원에서 늘 숙제로 지적돼왔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국내 100대 기업 전체 사외이사(440명) 중 여성 비율은 13.4%로 지난해 7.9%에 비해 소폭 높아졌다. 여전히 20%에 못미친다.

ESG경영 트렌드와 제도가 모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개정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2022년 8월부터 국내 자산 2조원 이상 상장 대기업은 여성 사외이사를 1명 이상 둬야 한다. 효성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민간기업으로 자발적으로 여성 이사회 의장을 둔 것이다.

효성은 조현준 회장의 지시로 올 초 ESG경영위원회를 설치하고 그룹 전반에 ESG 기반 혁신 시동을 건 상태다. ESG위원회는 김 의장을 비롯한 4명의 (주)효성 사외이사와 김규영 대표로 구성됐다. ESG위원장 역시 사외이사인 정상명 이사(전 검찰총장)에게 맡겼다.


김 의장 발탁으로 효성은 그룹 의사결정 최정점엔 여성 환경전문가를, ESG 경영의 최일선엔 법조인 출신 외부인사를 각각 두게 됐다. 경영에 전문성을 더하고 투명경영 감시도 강화할 수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ESG경영의 핵심 요소를 충족하는 조치다.

특히 우리 재계 특성 상 가장 혁신이 어려운 G(거버넌스·지배구조) 영역에서 먼저 변화를 불러온 셈이어서 의미가 크다. 조 회장은 이미 지난 2018년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던 관행을 깨고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났고, 이후 효성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가 맡아 왔다.

재계 최초로 여성 의장을 선임하면서 효성은 ESG 영역에서 독보적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ESG경영은 효성이 글로벌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아이덴티티"라고 한 조 회장의 발언이 현실화 될 수 있는 포석을 놓은 셈이다.

환경전문가 전면배치, ESG 새바람 일으킨다

 국회수소경제포럼 주최, 머니투데이·국가기술표준원·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공동 주관 '2019 대한민국 수소엑스포' 첫 날인 19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알림관에서 관람객들이 효성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국회수소경제포럼 주최, 머니투데이·국가기술표준원·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공동 주관 '2019 대한민국 수소엑스포' 첫 날인 19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알림관에서 관람객들이 효성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김 의장이 환경전문가라는 점은 더 의미심장하다. 김 의장 선임으로 효성은 ESG경영의 가장 큰 축인 환경 영역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 G와 E(환경)의 영역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는 의미다.

효성그룹은 섬유 사업을 토대로 산업자재, 화학, 중공업, 건설, 금융 등 사업 다각화로 몸집을 키워냈다. 시대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대전환도 시작했다. 탈탄소에 본격 나선 것이다. 여기에 김 의장 선임으로 사업 상 친환경성을 더하고 환경 리스크에도 먼저 대응할 수 있게 됐다.

효성중공업의 변신이 대표적이다. 변압기 등 전력 기기를 생산하는 효성중공업은 울산 용연부지에 세계 최대 연 1만3000톤 액화수소 플랜트를 올해 착공, 2023년부터 가동한다. 내년까지 전국에 120여 개 수소충전소를 설치한다.

효성티앤씨는 폐페트병에서 뽑아낸 섬유 브랜드 '리젠'을 론칭한 후 여러 지방자치단체 및 기업들과 손을 잡고 '새활용 문화'를 확산 중이다. 효성첨단소재는 수소차에 들어가는 연료탱크에 쓰이는 탄소섬유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모두 혁신적 친환경 비즈니스다.

김진성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책임연구원은 "각 기업이 ESG 경영을 형식적으로 주창하는 것이 아닌, 정말 의사결정 기구 안으로 들여와서 내·외부적으로 활발히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ESG 경영 성과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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