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을 덫에 빠트린 오보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06.1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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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이재용, 물산합병 7대 쟁점 ](6)'국민연금 도둑'으로 몬 5900억 평가손실의 진실

2016년 11월 20일 재벌닷컴을 인용한 한 언론사의 통계 오류로 인한 잘못된 보도 이후 국민연금 5900억원 평가손실설은 빠르게 확산돼 이 부회장에 대한 여론악화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사진제공=네이버 뉴스 캡처2016년 11월 20일 재벌닷컴을 인용한 한 언론사의 통계 오류로 인한 잘못된 보도 이후 국민연금 5900억원 평가손실설은 빠르게 확산돼 이 부회장에 대한 여론악화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사진제공=네이버 뉴스 캡처


국정농단 사건 과정에서 전국민의 공분을 산 뉴스 중 최고는 국민연금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면서 '국민의 노후자금인 연금에 5900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었다.

이 보도로 이 부회장은 국민의 노후 자금에 손댄 '나쁜 사람'으로 각인됐고, 그 어떤 항변도 통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은 그로 인해 국정농단 사건의 종범이 돼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 중이며, 이제는 지난달부터 시작된 삼성물산 합병 재판으로 또 수년간 법정 다툼을 벌여야 할 처지다.

그런데 이 '국민연금 5900억원 평가손실'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면?



머니투데이는 2016년 11월 20일 통계를 잘못 적용한 보도가 나온 직후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뉴스&팩트'라는 코너를 통해 보도했지만, 당시의 거센 여론의 파도에 묻혔고, 아직도 그 흔적은 그대로 남아 이 부회장에게 족쇄가 되고 있다.

비교시점 당시 이 부회장이 국민연금보다 손실액이 두배 이상 많았지만, 합병재판이 시작된 이 시점에도 국민들의 뇌리 속에는 여전히 '국민연금 5900억 손실'이라는 오보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섯번째 쟁점인 '국민연금 5900억 평가손실'의 실체를 다시 한번 파헤쳐봤다.

2016년 11월 20일 재벌닷컴을 인용한 한 언론사의 통계 오류로 인한 잘못된 보도 이후 국민연금 5900억원 평가손실설은 빠르게 확산돼 이 부회장에 대한 여론악화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사진제공=다음 뉴스 캡처2016년 11월 20일 재벌닷컴을 인용한 한 언론사의 통계 오류로 인한 잘못된 보도 이후 국민연금 5900억원 평가손실설은 빠르게 확산돼 이 부회장에 대한 여론악화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사진제공=다음 뉴스 캡처
'재벌닷컴'의 잘못된 통계가 낳은 오보
이 부회장이 국민의 노후자금에 손실을 입혔다는 주장은 2016년 11월 20일 재벌닷컴(대기업 통계 분석 업체)의 잘못 추출한 데이터를 인용해 '국민연금이 삼성그룹 합병을 밀어주고 5900억원의 평가손실을 입었다'는 한 언론의 보도로 확산됐다.


당시 재벌닷컴의 자료를 인용한 언론사는 합병 전과 후의 자산평가손익을 계산하면서 국민연금은 보유 주식을 판 이후 남은 주식가치(매도 금액은 제외)로, 이 부회장은 보유주식에 합병 후 추가로 매입해 늘어난 가치(매입 금액은 포함)로 수익률을 비교했다.

예를 들면 국민연금이 특정시점에 A사 주식 2주(1주당 100원, 총 200원)를 갖고 있다가 주가가 10% 내려 1주(주당 가격 90원)를 팔아 현금화하고, 현재 1주(90원)가 가지고 있을 때 총 평가손실액을 20원(-10%)이 아닌 매도액 90원까지 포함한 110원(55%)으로 계산했다는 얘기다. 기준을 동일하게 해야 하는 통계의 기본을 무시한 계산법이다.

반대로 이 부회장은 특정시점에 A사 주식을 5주(1주당 100원, 총 500원)를 갖고 있다가 주가가 10%(주당 90원) 내려서 현금으로 1주(90원)를 더 사서 6주(총 540원)가 됐을 때, 손익률을 5주가 10% 하락한 50원을 평가손실로 잡지 않고, 여기에 추가로 1주 매입한 90원을 합쳐 평가이익이 40원(수익률 8%)이 난 것으로 오산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낳았다.

이재용을 덫에 빠트린 오보
이런 오산의 결과로 국민연금은 합병직전 제일모직 1조 638억원(679만 7871주: 2015년 6월 5일 기준)과 삼성물산 1조 412억원(1867만 1098주, 2015년 6월 30일) 등 총 2조 1050억원의 주식을 보유했던 것이 2016년 11월 17일 종가 기준(보도와 달리 실제는 11월 18일 종가 13만 8500원 기준임)으로는 통합 삼성물산 1조 5186억원(1096만 4453주)어치를 보유해 27.86%(-5865억원) 하락한 것으로 보도됐다. 합병 전후 보유자산만 단순 비교해 '국민연금 평가손실 5900억원'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부회장의 지분가치는 합병 전(제일모직 보유분, 3136만9500주) 4조 9091억원에서 합병 후 2016년 11월 17일 종가기준(실제는 11월 18일 종가 기준)으로 4조 5254억원(통합 삼성물산 3267만 4500주)으로 국민연금보다 훨씬 적은 7.82% 줄어드는 데 그쳤다고 주장했다.

의도했든 아니든 같은 기간 이 부회장의 손실은 더 줄이고, 국민연금의 손실은 부풀려 마치 합병 찬성으로 국민연금이 큰 손실를 본 것처럼 이 부회장을 '국민연금 도둑 프레임'에 가뒀다. 이런 '연금도둑 프레임'이 씌워진 이후에는 그 어떤 이 부회장의 논리도 국민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렸다고 인식한 분노의 높이가 판단의 눈을 가렸다.

이 부회장은 2017년 8월 7일 열린 국정농단 결심공판에서 "제가 아무리 부족하고 못난 놈이라도 국민들의, 서민들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고 제가 그걸 욕심을 내겠습니까. 너무나 심한 오해로, 정말 억울합니다"라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오보의 덫에 빠져 이미 돌아선 민심을 되돌릴 수 없었다.

합병 후 1년여 평가손실액...실제로는 이 부회장이 2.6배 많아
이 통계의 오류를 바로 잡는 것은 간단하다. 당시 보도에 언급된 시점에 국민연금과 이 부회장이 보유한 주식수와 평가액을 기초로 삼아 합병 이후 1년여가 지난 2016년 11월 18일까지의 그 주식의 가치 변화를 보면 된다.

여기서 합병 전 기준시점부터 평가시점까지의 중간에 새로 매입하거나 매도한 주식은 제외해야 합병 이전 지분가치가 합병의 영향 등으로 그 후 평가시점(2016년 11월 18일)까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다.

이 부회장은 합병전 제일모직 4조 9091억원(3136만9500주)어치를 보유했고, 합병으로 인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2016년 2월 29일 삼성SDI가 보유하고 있던 통합 삼성물산 주식 약 1997억원(130만 5000주)를 매입했다.

이재용을 덫에 빠트린 오보
매입 후 손익률 보도 시점인 2016년 11월 20일 현재 이 부회장의 보유지분(3267만 4500주)의 가치는 4조 5254억원(주당 13만 8500원)이지만, 합병전과 비교하기 위해선 추가 매입한 130만 5000주(1997억원)를 뺀 3136만여주(4조 3447억원)의 가치 변화를 봐야 한다. 이를 비교하면 합병전 이 부회장의 보유가치에 비해 평가시점의 평가손실은 5644억원(손실률 -11.5%)이다.

이는 이 부회장과 같은 형태로 제일모직 지분만 갖고 있고, 삼성물산은 전혀 없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삼성전기와 같은 하락률이다.

잘못된 통계를 기초로 한 보유자산 증감률. 이재용 부회장과 같은 형태로 주식을 보유한 이부진, 이서현 사장과 이 부회장의 하락률이 다르게 나온다. 이 부회장이 합병 후 추가로 주식을 샀기 때문인데, 통계에서는 이를 감안하지 않고 비교해 오해를 불렀다. 국민연금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보유자산 비율이 비슷한데, 다른 주주들에 비해 하락률이 지나치게 높게 나온다. 중간에 매도한 금액을 손실액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잘못된 통계를 기초로 한 보유자산 증감률. 이재용 부회장과 같은 형태로 주식을 보유한 이부진, 이서현 사장과 이 부회장의 하락률이 다르게 나온다. 이 부회장이 합병 후 추가로 주식을 샀기 때문인데, 통계에서는 이를 감안하지 않고 비교해 오해를 불렀다. 국민연금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보유자산 비율이 비슷한데, 다른 주주들에 비해 하락률이 지나치게 높게 나온다. 중간에 매도한 금액을 손실액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합병전 2015년 6월 30일 기준으로 삼성물산 1조 412억원, 제일모직 1조 638억원 등 총 2조 1050억원 어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국민연금은 평가손익 보도가 나온 시점인 2016년 11월 20일 이전에 총 3712억원 어치(총 357만여주)의 삼성물산(185만 311주), 제일모직(137만2868주), 통합 삼성물산(34만9314주) 주식을 팔았다.

따라서 합병 전 2조 1050억원어치 주식이 합병 후 1년여가 지나서 얼마로 떨어졌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평가시점(2016년 11월 18일)의 가치(1조 5186억원, 1096만 4453주)에 평가 기간 중간에 매도한 주식의 가치를 더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경우 매도한 규모가 3712억원이므로 이를 합하면 평가시점의 가치는 약 1조 8897억원이 된다. 평가시점 손실액은 2153억원(-10.2%)이다.

이와 비교해 제일모직 지분은 전혀 없고, 삼성물산 지분만을 보유했던 삼성화재, 삼성복지재단, 삼성생명은 각각 13.05% 하락했다.

이를 볼 때 이 부회장이 5644억원(-11.5%)의 평가손실을 기록해 국민연금의 2154억원(-10.2%)보다 2.6배 이상의 손실을 봤고, 손실률도 이 부회장이 높았다.

업종지수 평균 하락률보다 나아
이재용을 덫에 빠트린 오보
통합삼성물산 주가가 하락하는 기간 종합주가지수는 4.8%,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관련이 높은 건설업종지수는 22.39%, 삼성물산 서비스 부문과 관련이 깊은 서비스업종 지수는 14.69% 각각 하락했다. 당시 국민연금이 보유한 통합 삼성물산의 주가하락분은 업종 평균 하락률보다 덜했던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시 건설 경기 등에 대한 우려로 건설업종의 지수 하락률이 컸었다"며 "국민연금의 통합삼성물산의 수익률 하락은 업계 전반적인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당시 재벌닷컴 대표는 이같은 통계 오류에 대해 인정했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수정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아 여전히 잘못된 통계 내용이 인용되고 있다.

더하기와 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통계의 오류로 전국민이 공분했고, 이 뉴스를 믿은 전국민을 사실상 바보로 만들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을 몰아주고 5900억원의 평가손실을 입었다는 마타도어(Matador)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잘못된 통계로 인한 피해는 국민들 뇌리에 잘못 각인된 이후에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양산하다"며 "기업들에게는 두고 두고 어려움을 주는 만큼 이를 바로 잡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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