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이준석 바람'에 대하여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대표 2021.06.07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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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석학'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우리의 감정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직관이나 영감, 자유가 아니라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누군가를 사랑하고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조차 우리 몸속의 생화학적 알고리즘이 상대방과 짝짓기 가능성이나 다른 원하는 목적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고 계산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랑의 감정조차도 사실은 계산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까요. 이유는 생화학적 알고리즘에 기초한 계산의 과정이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곳에서 아주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원초적이고 순수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조차 직장을 선택하거나 비즈니스를 하는 것처럼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이라면 선거와 같은 정치적 행위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이준석, 나경원, 주호영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는 즉흥적 호불호의 감정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보수진영과 야권에서 불고 있는 '이준석 바람' 또는 '이준석 현상'에 대한 해석의 단초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변이 없는 한 오는 11일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이례적으로 하버드대학 출신의 금수저이자 선거에서 한 번도 이긴 경험이 없는 36살의 젊은 이준석이 제1야당 대표로 당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보수진영과 국민의힘 당원들의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결과입니다. 국민의힘이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려면 당을 바꿔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중도와 젊은 층을 잡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강경·보수 이미지의 올드한 나경원·주호영보다는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중도적인 젊은 이준석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대선 승리가 절실한 보수세력이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이준석에 대한 선택은 나경원 대신 온건·중도의 오세훈을 후보로 내세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것과 같은 연장선입니다. 보수진영은 자존심까지 버리고 심지어 보수의 전직 대통령들을 감옥에 보냈던 윤석열조차 내년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면 적극 지지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는 게 작금의 현실입니다.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이 민주당의 이재명과 1~2위를 다투는 것은 그가 더 공정하거나 대통령감이어서가 아니라 이런 계산된 결과일 뿐입니다.

내년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하는 상황에서는 진중권이 "반페미니즘과 공정을 가장한 능력주의만 있을 뿐 콘텐츠가 없다"고 이준석을 아무리 비판해도 먹혀들 리 없습니다. 나경원이 "끊임없이 여성과 남성을 가르고 세대를 가르는 등 트럼프처럼 분열의 리더십을 보인다"고 욕해도 이준석에 대한 지지율은 더 오를 뿐입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때를 만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반대로 '정치검사'라도 윤석열처럼 때를 만나면 일약 대선후보로 떠오릅니다. 이준석도 때를 만났습니다. 게다가 코로나19(COVID-19) 사태와 ICT(정보통신기술) 혁명의 가속화는 부의 양극화를 촉진하며, '자유'보다는 '빵'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듭니다. 이 역시 이준석과 보수진영에는 유리합니다. 내년 대선 판세가 조금씩 오른쪽으로 기우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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