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한테 타투 시술받는 사람 있나요?"

머니투데이 류원혜 기자 2021.06.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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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사진=이미지투데이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사진=이미지투데이


#대학생 최모씨(23)는 몇 년째 고민하던 타투 시술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후회할 수도 있단 생각에 망설였지만, 좋아하는 연예인이 온몸에 알록달록 타투한 것을 보고 결심했다. 그는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후기가 좋은 타투이스트를 찾는 게 1순위였다"며 "의료인이 시술하는 곳이 거의 없어서인지 다들 불법 시술소에 가더라"고 말했다.



타투(문신) 시장 규모가 거대해지고 있다. 2018년 문신염료 제조사 '더스탠다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약 1300만명)이 눈썹, 입술 등 반영구 화장 또는 타투 시술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타투협회는 매년 시술받는 사람이 100만명씩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법은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법상 의사 면허 없이 타투를 시술하는 것은 '불법' 행위지만 대부분 시술은 음지에서 이뤄진다. 실제 시술하는 의료인이 손에 꼽기 때문이다. 이에 관련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후회할걸?"→"잘 어울린다, 타투 어디서 했어?" 달라진 인식
타투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사회적 인식도 개선됐다.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18년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9%가 '타투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많이 관대해졌다'고 답했다. '타투는 자신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다'라는 응답도 52.9%에 달했다.

인천에 사는 직장인 김모씨(29)는 타투를 보는 시선이 바뀐 것을 체감하고 있다. 김씨는 "대학생 때 종아리 옆쪽에 타투를 했는데, 주변에서 '나중에 후회할 짓을 왜 하냐'고 말렸다"며 "안 좋은 선입견이 있었다. 길에서 '저 사람 문신 봐', 무서워'하는 소리도 들은 적 있다"고 당시 반응을 떠올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달라졌다고 한다. 김씨는 "동료가 본인도 타투하고 싶다고 어디서 시술받았는지 묻더라"며 "지금은 다들 예쁘다고, 잘 어울린다고 한다. 몇 년 새 인식이 많이 변했다"고 설명했다.


대학생 최모씨(23)는 서울 한 타투샵에 시술을 예약해둔 상태다. 그는 "요즘엔 조폭들이 하는 문신보다 작고 귀여운 그림이나 레터링 타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각자 취향에 따라 개성을 드러낼 수 있어서 좋다"며 "시계 외에는 액세서리를 하지 않아 여름에 옷 입을 땐 뭔가 허전했는데, 팔뚝에 타투를 하면 좀 채워지지 않을까 싶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문신 있어도 현역 입대, 경찰공무원 가능…기준 완화 추세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타투도안'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물들./사진=인스타그램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타투도안'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물들./사진=인스타그램
타투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면서 국방부와 경찰도 관련 기준을 완화했다. 국방부는 병역판정검사에서 온몸에 타투가 있는 경우를 4급으로 판단해 사회복무요원 등 보충역으로 복무하게 하는 규정을 올해부터 전면 폐지했다.

앞으로는 온몸에 타투가 있어도 현역(1∼3급) 판정을 받는다. 국방부는 "사회적으로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감소했고, 정상적인 군 복무도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찰공무원 신규채용 시 기존의 '문신 금지' 기준도 완화됐다. 지금까진 타투 시술 동기, 의미, 크기를 기준으로 적절성을 판단했지만 올해부터는 내용과 노출 여부만 따진다. 다만 공포감과 혐오감을 주지 않는 수준이어야 한다. 차별적 내용이 담기거나 제복 밖으로 노출되는 경우에는 불합격 대상이다.

타투 대중화에도 법은 30년째 제자리…'의료인만' 시술 가능
타투 시술이 대중화되고 있음에도 관련 법은 여전히 그대로다. 1992년 대법원은 타투 시술을 의료행위로 판단해 비(非)의료인의 시술을 사실상 불법화했다.

국내 유명 타투이스트 김도윤(41) 타투유니온 지회장도 2019년 12월 한 연예인에게 타투 기계로 시술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됐고, 지난 2월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정식재판을 신청한 그는 지난달 28일 1심 재판에서 "문신을 새기는 행위에 질병, 상해 등을 치료하는 의료적 목적이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왼쪽 세번째)이 지난달 28일 서울북부지법에서 문신시술로 인한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 1심 재판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김도윤 타투유니온 지회장(왼쪽 세번째)이 지난달 28일 서울북부지법에서 문신시술로 인한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 1심 재판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 발간한 '문신 시술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표본인구 1000명 중 153명이 타투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병·의원에서 시술받았다'고 답한 비율은 2.7%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일반 시술소나 미용시설에서 시술받은 셈이다.

직장인 김씨도 '병·의원에서 시술받았냐'는 질문에 "홍대 쪽에 있는 타투샵에서 받았다"며 "불법이라는 생각도 못했다. 타투한 친구들 중 의사한테 시술받은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고 답했다.

국회서도 합법화 움직임…의료계는 여전히 '반대'
이에 법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며 문신사를 직업으로 인정하고 양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조사에서 타투이스트 178명 중 98.9%는 '정부의 관리·감독하에 비의료인의 시술 행위를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경기도 한 미술대학을 졸업한 6년차 타투이스트 이모씨(30대)도 "손님들의 나이대나 직업, 도안까지 다양해지고 있다"며 "예술 감각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의료행위로만 보긴 힘들 것 같다. 합법화해서 부작용에 대한 부분도 관리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도 합법화 추진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료면허 없이도 타투 시술을 할 수 있게 하는 '타투·문신 합법화 법안'(문신사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문신사법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법안에 따르면 전문대졸 이상 학력자가 보건복지부에서 관할하는 국가자격증 시험을 통과해 문신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타투이스트로 영업할 수 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합법화에 대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협은 지난해 12월 성명에서 "문신은 피부의 표지와 진피에 색소를 넣는 침습적 의료행위"라며 "의료법상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의 문신 시술은 명백한 불법임에도 최근 더욱 성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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