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목(同想異目)] 대통령·총수 회동 '이벤트' 함수

머니투데이 이진우 더벨 편집국장 2021.06.04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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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국장이진우 국장


역대 대통령은 재임기간에 예외없이 대기업 총수들을 여러 차례 청와대나 제3의 장소로 불러 회동을 했다. 재계는 이때마다 정권의 분위기를 살피며 누가 초청 대상이고 어떤 주문이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심지어 누가 대통령과 가까운 자리에 앉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대통령과의 거리를 '권력과의 거리'로 인식할 정도였으니 행여 초청 대상에서 빠지면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군사정권 시절엔 청와대 회동에 지각하는 바람에 대통령의 미움을 산 한 굴지의 그룹이 해체되는 비운을 겪었다는 '웃픈'(웃기면서 슬픈) 스토리도 있다.

투자와 고용, 상생, 수출 등 거창한 화두를 앞세우고 기업들은 족집게 과외를 통해 맞춤형 '숙제'를 풀기 바빴지만 실질적으론 '권력의 심기를 살피는(엿보는) 기회'의 의미가 컸다는 얘기다. 5년에 한 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의 정책에 맞는 예상문제와 답안지를 들고 가서 '어색한' 문답을 주고받는 회동장면이 이젠 별로 낯설지 않다. 투자하라면 투자를 늘리는 대책을 내놓고 고용을 주문하면 갑자기 채용인원을 늘리는 식의 '이벤트'였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묘한 발언 때문에 정유사들이 줄줄이 기름값을 내려야 했던 주인공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기업 회장들과 여러 번 오찬 간담회를 열었다. CEO(최고경영자) 출신 대통령에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란 말로 회장들을 긴장시킨 탓인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어도 재계 입장에선 뭔가 찜찜한 구석이 엿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여러 차례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창조경영' 설파에 나섰다. 그런데 집단회동이 끝난 뒤 몇몇 대기업 회장과 쪽지메모를 주고받는 '밀실회동'을 따로 가진 것이 '최순실 게이트'로 밝혀져 곤욕을 치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17년 7월 청와대로 기업인들을 불러 호프미팅을 했다. 당시 "기업이 잘돼야 나라경제가 잘된다"며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위하여"를 건배사로 외쳤지만 임기 내내 '반기업정서'를 둘러싼 긴장관계가 이어졌다. 앞에선 규제완화 분위기로 달래고 뒤에선 정책으로 옥죄는 '엇박자'로 감정적으로 불편한 상황이 여러 차례 생기기도 했다.

임기가 1년 남은 문 대통령이 지난 2일 모처럼 마련한 4대그룹 총수 초청간담회 역시 '한미 정상회담 뒤풀이' 이상의 의미로 재계 안팎의 관심을 끌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입에서 "생큐" 소리가 나오게 만든 한미 안보·기술동맹의 '공신'들을 격려하는 자리였지만 정작 세간의 관심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론과 관련한 언급이었다. 4대그룹 총수와 첫 식사자리인 만큼 누가 총대를 메고 얘기할지, 대통령은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해했다.

재계는 일단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는 대통령의 달라진 언급과 이를 굳이 공개한 청와대의 의중에 주목한다. 청와대가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광복절 특사'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여기서 '고충'의 주체는 이중적이다. "지지층과 달리 여론도 긍정적이고(=국민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 마음은 굴뚝같지만(=고충을 이해한다)"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달라진 분위기 속에 이번 회동이 훗날 역사에 '이벤트' 이상의 의미로 기록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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