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국장
투자와 고용, 상생, 수출 등 거창한 화두를 앞세우고 기업들은 족집게 과외를 통해 맞춤형 '숙제'를 풀기 바빴지만 실질적으론 '권력의 심기를 살피는(엿보는) 기회'의 의미가 컸다는 얘기다. 5년에 한 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의 정책에 맞는 예상문제와 답안지를 들고 가서 '어색한' 문답을 주고받는 회동장면이 이젠 별로 낯설지 않다. 투자하라면 투자를 늘리는 대책을 내놓고 고용을 주문하면 갑자기 채용인원을 늘리는 식의 '이벤트'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여러 차례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창조경영' 설파에 나섰다. 그런데 집단회동이 끝난 뒤 몇몇 대기업 회장과 쪽지메모를 주고받는 '밀실회동'을 따로 가진 것이 '최순실 게이트'로 밝혀져 곤욕을 치렀다.
임기가 1년 남은 문 대통령이 지난 2일 모처럼 마련한 4대그룹 총수 초청간담회 역시 '한미 정상회담 뒤풀이' 이상의 의미로 재계 안팎의 관심을 끌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입에서 "생큐" 소리가 나오게 만든 한미 안보·기술동맹의 '공신'들을 격려하는 자리였지만 정작 세간의 관심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론과 관련한 언급이었다. 4대그룹 총수와 첫 식사자리인 만큼 누가 총대를 메고 얘기할지, 대통령은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해했다.
재계는 일단 "고충을 이해한다. 국민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는 대통령의 달라진 언급과 이를 굳이 공개한 청와대의 의중에 주목한다. 청와대가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광복절 특사'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여기서 '고충'의 주체는 이중적이다. "지지층과 달리 여론도 긍정적이고(=국민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 마음은 굴뚝같지만(=고충을 이해한다)"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달라진 분위기 속에 이번 회동이 훗날 역사에 '이벤트' 이상의 의미로 기록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