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지 부부가 작년에 출간한 '힘든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이 주목받고 있다. 책의 제목처럼 힘든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새롭고도 올바른 통찰의 기회를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기본소득제에 관한 논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화제의 담론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프랑스와 스위스, 인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의와 더불어 여러가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셋째, 기본소득을 지급하되 선별 지급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배너지 부부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선별하기 위한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특히 선별된 사람들에게 가난하다거나 무능하다는 낙인효과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넷째, 이 때문에 저자는 모든 국민에게 조건없이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제도가 좋은 정책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알래스카 주에서는 1982년부터 매달 약 100달러를 주민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또한 핀란드는 2017년부터 2년간 기본소득제를 실헙 실시한 바가 있다. 두 경우 모두 수급자의 삶의 질과 만족도에서 놀라울 정도의 긍정적 효과가 입증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말할 나위없이 예산 문제일 것이다. 따라서 이 제도는 예산에 여유가 있는 부유한 선진국에 적합한 정책이며, 그밖에 대규모 증세를 할 수 있는 국가에서나 가능한 정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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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이에 저자는 모든 국민들에게 연간 백만원 정도의 소액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먼저 제시하고 있다. '보편적 울트라(超) 기본소득제' 라고 불리는 이 정책은 특히 예산상 압박이 큰 국가에서 적합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실재로 현재 베니지 부부는 케냐에서 이러한 정책을 대규모로 실험 중에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보편적 긴급재난 지원금처럼 단기적 효과는 높지만, 장기적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케냐에서 직접 실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 정책은 모든 국민에게 울트라 기본소득을 보편적을 지급하는 것과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선별지급을 함께 지급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높은 정책조합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보건대, 한창 기본소득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우선 힘든 시대에 보편적 기본소득제는 충분히 실시해 볼 만한 좋은 정책인 것이다. 그 다음에 기본 소득제를 실시 하더라도 우선 소액을 먼저 지급하는 정책이 이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산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기존에 시행하고 있는 다양한 복지제도와 조합하여 함께 실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다음 단계로 상당액의 금액을 지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본격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기본소득제 자체에 대한 정책 효과는 이미 검증되어 있기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예산이다. 이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지만 역대 정권에서 매번 경험한 것처럼 증세에는 커다란 국민적 저항이 따른다. 하지만 소액 기본소득제를 통해 세금의 효용을 다수의 국민들이 납득하고 수용한다면 큰 어려움 없이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단계적 접근법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실시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배너지 부부는 지금처럼 힘든 시대에야 말로 새로운 경제학이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경제가 성장하던 시절과 다른 정책적 시도가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낡은 이론을 고장난 레코드 판처럼 틀거나, 죽은 경제학자의 진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대는 아닌 것이다. 성장이 정체되고 많은 이들이 힘들어 하는 이 시대에는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가시고 새로운 정책을 시도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에는 신중한 정책 설계와 치밀한 접근 방식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이들의 삶과 존엄성, 공동체의 유지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에서 동의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보편적 기본소득제라는 새로운 정책을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경제학은 옳은 이야기를 하지만 쓸모가 없다는 편견을 깨게해준 베너지 부부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이인석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