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SK 그룹 주력 및 에너지 계열사가 모여 '탄소 순배출 제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데에는 최태원 SK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됐다.
이는 최근 엑손모빌이 단 0.02%의 지분을 쥐고 있던 기후 행동주의 표방 소규모 헤지펀드와의 표대결 결과 이사석 2개를 내준 것, 또 로열더치셸이 법원으로부터 탄소 배출 감축량을 훨씬 더 많이 줄여야 한다는 판결을 받은 것에 견줘보면 탁월한 혜안이었다.
최 회장의 위기감은 최고 경영진의 최근 선언들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그린밸런스 2030 전략은 미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전쟁"이라 했고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은 "공룡이 큰 덩치를 믿다 멸망한 것에 반해 상어는 변화를 빨리 감지하고 진화를 거듭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유정준 SK E&S 부회장도 "적극적으로 이볼루션(진화)하지 않으면 레볼루션(혁명) 당한다"고 말했다.
말 뿐이 아니라 실천력도 앞선다. SK그룹 8개사는 지난해 말 국내 최초로 'RE100'에 가입을 선언했다. 이는 기업이 2050년까지 사용전력량의 100%를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조달하겠단 자발적 약속으로 애플, 구글도 가입돼 있다.
SK텔레콤은 통신분야 최초로 온실가스 감축으로 1117톤의 탄소 배출권을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SK하이닉스는 RE100 완수 외에도 탄소 순배출 제로, 대기오염 물질 추가 배출 제로 등을 내걸었고 SK이노베이션도 2030년까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제로로 만든단 포부다. 현재 친환경 전기차, 저탄소 바이오 연료 등 그린 관점 새 사업도 발굴중이다.
한편 최 회장은 지난 27일 '2021 P4G 서울정상회의 비즈니스 포럼'에 기조 연설자로 나와 "환경문제에 대한 대응은 선언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 행동변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SK 필두로 정유4사 '수소행렬' 동참...포스코도 합류
지난 4월 에너지 업계 고위 관계자들이 에너지얼라이언스 출범식에 참석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사진=머니투데이DB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은 "녹색 투자가 증가하겠지만 쉐브론이나 엑손같은 기업들이 당장 태양광 개발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미국 주요 석유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분야는 석유 메이저들이 이미 특화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라고 제언했다. 바이오 연료, 천연가스, 수소생산, 탄소포집기술 등을 그 사례들로 봤다.
GS칼텍스는 현재 한국가스공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액화수소 플랜트 및 액화수소 충전소 구축, 수소 추출설비 구축, CCU(탄소포집활용) 기술 실증 및 상용화 등에 대해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S-OIL은 올해 3월 연료전지 기업 FCI와 투자계약을 맺으며 수소사업에 진출했다. 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와 협력해 그린수소, 그린암모니아를 활용한 사업 및 액화수소 생산, 유통사업도 검토중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정유사업 매출 비중을 현재 85%에서 2030년까지 45%로 낮춘다는 계획을 내놨다. 대신 2025년까지 블루수소 10만톤을 생산-판매하거나 2030년까지 전국 180여 개 수소충전소를 구축해 신성장동력을 발굴할 계획이다.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철강업계도 잰걸음이다. 한국철강협회는 지난 2월 '그린철강위원회'를 출범해 △철강·석유화학·자동차 등 업종별, 기술혁신·표준화 등 분야별 민·관 협의체를 구성·운영했다.
민간 에너지 업계도 팔을 걷었다. 지난 4월 현대경제연구원 등 10개 민간기업이 탄소중립혁신 이니셔티브 확보를 위해 '에너지얼라이언스'를 출범하고 상호협력 업무협약서를 체결했다. 세계적 탈탄소 흐름에 발맞춰 관련 정책에 공동 대응하고 민간 차원에서 먼저 사업 전략을 함께 고민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