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이는 석유 공룡들…"무슨 소리냐"던 최태원 일갈 옳았다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21.05.3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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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이는 석유 공룡들…"무슨 소리냐"던 최태원 일갈 옳았다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글로벌 석유 공룡들이 잇따라 고전하면서 최태원 SK 회장의 선구안이 주목받는다. SK는 수 년 전 '딥체인지'를 내걸고 탄소배출이 많은 사업들을 위주로 포트폴리오의 대대적 재편에 나선 것은 물론 선제적인 탈탄소 전략들을 내놨는데 이같은 결단이 현 시점에서 그룹 도약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평가다.



'여유 더 달라' 일언지하 거절한 崔 "탄소중립은 시대적 변화"
"시대적 변화에 맞춰서 빨리 변신할 생각을 해야 한다. 탄소 중립이 시대적 변화고 탄소순배출 '제로'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니 잘해보자."

30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SK 그룹 주력 및 에너지 계열사가 모여 '탄소 순배출 제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데에는 최태원 SK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뒷받침됐다.



당시 그룹 고위 관계자들이 최종 보고에서 탄소 배출량을 현 수준에서 더 늘리지 않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보고 탄소 배출 저감 목표에 여유를 좀 달라고 했다. 그러나 최 회장이 단번에 '무슨 소리냐, 0(탄소 순배출 제로)으로 줄여야 한다'고 강력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SK가 정유, 석유화학 등 탄소 다(多)배출 기업들을 거느리고 있단 점도 위기 의식을 배가 시켰던 것으로 풀이됐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기후 변화에 더딘 대처를 보여준 석유 기업들이 겪은 잇단 패배는 최 회장의 빠른 결단을 더 돋보이게 한다.

엑손모빌은 기후 행동주의를 표방한 소규모 헤지펀드와의 표대결에서 밀려 최소 2개의 이사석을 내줬다. 엑손모빌 지분 단 0.02%를 가졌으며 '엔진넘버원'이라 불리는 이 펀드는 '엑손이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방식에서 경쟁사보다 뒤처져 결국 회사 재정에 손실을 입힐 것이란 점, 이사회가 탈탄소를 위한 공격적인 계획을 추진하기에 전문성이 부족하단 점 등을 꼬집어 반란에 성공했다.


세계 최대 기관투자자들이 엔진넘버원 편을 든 영향도 컸다.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의 엑손모빌에 대한 지분율은 약 20%다.

비슷한 시기 네덜란드 법원은 로열더치셸에 대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회사의 당초 목표치(20%) 대비 두 배 넘는 수준이다. 이 소송은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가 지난 2019년, 로열더치셸의 기후전략이 인권과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고 주장하며 제기됐다.

로이터 등 외신은 "이것은 기후 행동주의에 있어 중요 이정표"라거나 "운동가들이 주요 에너지 회사들의 기후 전략을 강제적으로 정비토록 한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또 행동주의 펀드 반발을 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탈탄소 고민은 앞으로 더 활발히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재계 관계자는 "수 년 전 이미 딥체인지 화두를 던지고 구체적 방법론을 고민해왔던 SK가 내부는 물론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도 ESG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상어론·전쟁·혁명…쎈 말 쏟아내는 SK 경영진, 실천력도 앞선다

SK이노베이션의 분리막 등 소재 자회사 SKIET가 올해 3분기 양산 시작하는 폴란드 분리막 공장에 대해 친환경 전력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4월 밝혔다. 국내 공장에 이어 해외 개별 사업장에서도 100% 친환경 전력을 도입한 것이다./사진=머니투데이DBSK이노베이션의 분리막 등 소재 자회사 SKIET가 올해 3분기 양산 시작하는 폴란드 분리막 공장에 대해 친환경 전력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고 지난 4월 밝혔다. 국내 공장에 이어 해외 개별 사업장에서도 100% 친환경 전력을 도입한 것이다./사진=머니투데이DB
최 회장의 위기 의식은 그동안 각사 최고 경영진의 선언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지난해 "그린밸런스 2030 전략은 미래 생존 여부를 결정짓는 전쟁"이라 했고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은 올 초 "공룡이 큰 덩치와 육중함만 믿다가 멸망한 것에 반해 상어는 변화를 빨리 감지하고 진화를 거듭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유정준 SK E&S 부회장은 지난 4월 에너지얼라이언스 출범식에서 초대 의장을 맡아 "적극적으로 이볼루션(진화)하지 않으면 레볼루션(혁명) 당한다"고 말했다.

SK 각 계열사가 최근 내놓는 탈탄소 계획, 성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재계서도 단연 앞서 나간다.

대표적 예가 SK그룹 8개사(SK(주)·SK텔레콤·SK하이닉스·SKC·SK실트론·SK머티리얼즈·SK브로드밴드·SK아이이테크놀로지)가 지난해 말 RE100에 국내 최초로 가입한 것이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기업이 2050년까지 사용전력량의 100%를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조달하겠단 자발적 약속이다. 구글, 애플, GM 등 글로벌 기업들이 가입해 있다.

SK그룹은 SK E&S, SK에너지, SK가스, SK이노베이션 등 가입 대상이 아닌 계열사에서도 자체적으로 'RE100'에 준하는 목표를 세우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각사 노력도 활발하다.

SK텔레콤은 통신 분야 최초로 온실가스 감축으로 1117톤의 탄소 배출권을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올해부터는 1만톤 가량의 탄소배출권을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SK하이닉스는 올 초 '사회적가치 2030' 로드맵을 발표, 2050년까지 RE100 완수, 탄소 순배출 제로, 대기오염물질 추가 배출 제로, 폐기물 매립 제로, 수자원 절감량 300% 확대 등 목표를 내걸었다.

SK이노베이션은 2019년 이미 '그린밸런스 2030' 비전을 내걸고 2030년까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 제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친환경 전기차 사업 강화, 저탄소 바이오 연료 등 그린 관점 새 비즈니스 모델 발굴 등을 진행중이다.

SK E&S는 그룹 내에서 수소사업 주축을 담당중이다. 기존 액화천연가스(LNG) 최대 수입 민간 사업자라는 지위를 활용, 2025년부터 25만톤 규모 블루수소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최 회장은 지난 27일 '2021 P4G(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 서울정상회의 비즈니스포럼'에서 '그린 성장 가속화를 위한 매커니즘' 주제로 기조 강연에 나서 "환경 문제에 대한 대응은 선언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 행동변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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