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M엔터테인먼트
전문가들은 Z세대가 메타버스에 몰입하는 요인으로 멀티 페르소나를 꼽는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하며 디지털 세상 속 새로운 자아를 만드는 데 익숙한 Z세대에게 메타버스는 부캐를 더 많이 만들 기회라는 설명이다. 더욱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신기술은 현실의 제약을 넘어 다양한 나를 보여줄 수 있게 도와준다.
예컨대 링크드인에선 나의 전문성을, 인스타그램에선 호화로운 일상을, 틴더에선 데이트 상대로서의 매력을 강조하듯, Z세대는 네이버제트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 엔씨소프트의 팬 커뮤니티 '위버스'에서 각각 다른 페르소나를 보여준다. 앞으로는 개인이 여러 개의 인격을 이용하는 문화가 조성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가상현실에서라도 구찌 입자…'부캐'에 지갑 여는 Z세대
이건준 BGF리테일 대표의 아바타와 김대욱 네이버제트 대표의 아바타(왼쪽부터)가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BGF리테일
이에 제페토 문을 두드리는 유통기업도 늘고 있다. 크리스티앙 루부탱은 지난해 9월 제페토에 2021년 봄·여름(S/S) 컬렉션을 최초 공개했고 구찌는 본사가 위치한 이탈리아 피렌체 배경의 '구찌 빌라(Gucci Villa)'가 문을 열었다. BGF리테일도 제페토에 'CU 제페토한강공원점'을 열었으며 MLB·DKNY·나이키·디즈니 등도 입점했다.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최근 시작한 20대 이용자 박모씨는 "현실에서 구찌는 수백만원대이지만, 제페토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착장'해도 1만원"이라며 "현실에선 소심한 성격인데, 제페토에선 처음 본 아바타와 사진도 찍고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대화 중에 자리를 뜰 수 있어 보다 과감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현실 묘사에 그친 가상현실…실재감 더 높여야"
다만 현재 메타버스는 현실을 묘사한 수준에 그치다 보니 진정한 메타버스를 구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게임사 '밸브'가 지난해 선보인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이용자가 게임 속 사물의 무게감까지 느끼도록 해 현존 최고의 VR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사물의 촉감이 느껴지지 않고 달리기 등이 인식되지 않아 실재감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VR기기뿐 아니라 실감형 콘텐츠, VFX(시각특수효과) 기술력 등에 대한 시장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동형 알서포트 전략기획팀장은 "메타버스 시대에는 실제 오프라인 세상 속 사람들의 생활과 일하는 방식을 온라인에 그대로 구현해 차이가 없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메타버스 기업은 오프라인 고객 경험과 온라인 구현 기술을 모두 확보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현실을 그대로 가상현실로 옮겨놓는 건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김상균 강원대 교수는 저서 '메타버스'에서 "현실 세계의 실재감을 완벽하게 구현해주는 기술이 등장한다면 자칫 본인이 있는 공간이 가상세계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며 "현실과 가상세계 사이의 경계를 무너트려도 될지는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달탐사 '아르테미스' 우주선도 MR로 조립하고 수술연습도
의료계에서 사용되는 VR 시뮬레이션 /사진=유니티
최근 MR을 비롯한 AR(증강현실),VR(가상현실) 등을 아우르는 XR(가상융합기술) 경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제조업 뿐만 아니라 교육, 국방, 문화, 유통, 의료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 적용 중이다. XR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메타버스'(Metaverse) 산업화가 속도를 내는 것이다.
◆XR 경제, 어떤 세상 만들까
컨설팅 전문 기업인 PwC는 XR의 글로벌 경제적 파급효과가 오는 2025년 4764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 IDC 역시 전 세계 AR·VR 지출 규모가 연평균 54% 성장률을 보이며 2024년에는 728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XR는 그간의 우리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불러올 전망이다. 인터넷이 크게 확산하며 '온라인' 세상이 열린 것처럼, XR 발전은 가상과 실제가 공존하는 '융합 현실' 세계를 앞당기기 때문이다.
여러 학생이 가상의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는 모습 /사진=서틴스플로어
의료 분야에서 XR은 환자 수술 등 치료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척추 수술에서 가상으로 만든 척추와 환자를 겹쳐 놓고 수술하는 방식이다. 교육은 XR가 가장 많이 적용된 분야다. 단순히 화상 수업을 넘어 가상의 교실에 학생이 모여 수업을 받는 것이다. 기업의 직무 교육이나 의료 실무에서도 가상을 활용한 시뮬레이션 훈련이 크게 늘고 있다.
이 외에 공연, 행사 등도 가상 공간을 활용하기도 한다. 사용자는 해당 공간을 방문해 전시나 공연을 자유롭게 즐긴다. 온라인에서만 이용하던 소셜 미디어는 가상 공간으로 자리를 이동해 사용자 아바타를 앞세워 현실처럼 지인과 교류하는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IDC는 "지난해는 AR·VR 업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며 "코로나 19 확산으로 분야를 불문하고 XR 도입 기업이나 기관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XR 활용 어디까지 왔나
현대기아차가 도입한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 모습 /사진=현대기아차
서틴스플로어가 개발한 VR 가상 강의실은 40명까지 동시 접속과 실시간 원격 강의를 지원한다. 동서울대에서 실제 강의에 적용하기도 했다. 한양대는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실물 크기 교수가 여러 강의실 학생에게 동시 수업하고 질문을 받는 쌍방향 원격 강의를 제공 중이다.
롯데홈쇼핑은 AR 가구 배치, VR 매장 체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패션 소품을 AR로 착용해보는 제품 비교 솔루션도 준비 중이다. 한샘은 새 모델하우스를 VR을 통해 미리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SK텔레콤은 SM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슈퍼주니어 온라인 콘서트를 '점프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3차원(3D) MR로 선보이기도 했다. 무대 뒤편에서 슈퍼주니어 멤버 최시원의 3D MR 이미지가 튀어나와 12m 높이의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이 영상은 전 세계 12만3000여 명 온라인 관객에게 생중계됐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사회 전반에 XR 활용을 지원하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작년에 시작한 과제는 현재 일부 산업 현장에서 원격협업과 교육·훈련 등에 적용되고 있으며, 올해 말에는 코엑스 방문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AR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XR의 사회 전 분야 확산과 함께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기기 등 관련 기업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