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 놀이터'된 메타버스, Z세대가 열광하는 이유

머니투데이 윤지혜 기자 2021.05.29 14:00
글자크기

[기획 - 메타버스 대전환시대 온다]-④

/사진=SM엔터테인먼트/사진=SM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는 최근 걸그룹 에스파의 신곡 '넥스트 레벨'을 공개하며 실제 멤버 4명과 이들의 아바타 4명이 함께 공연하는 영상을 선보였다. 실제 멤버 카리나와 가상현실 속 아이카리나가 하나의 무대를 꾸민 셈이다. 주목할 점은 카리나의 아바타라고 해서 그와 같은 성격을 가진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이른바 '멀티 페르소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스어로 '가면'이란 뜻의 페르소나는 타인에게 보이는 외적 인격을 말한다. 멀티 페르소나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가면을 바꿔쓰듯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다는 의미다. 현실에서 '본캐'(본래 캐릭터)로 살아간다면 가상현실에선 자신의 본업과 성격을 변주한 '부캐'(부가 캐릭터)로 변신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Z세대가 메타버스에 몰입하는 요인으로 멀티 페르소나를 꼽는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하며 디지털 세상 속 새로운 자아를 만드는 데 익숙한 Z세대에게 메타버스는 부캐를 더 많이 만들 기회라는 설명이다. 더욱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신기술은 현실의 제약을 넘어 다양한 나를 보여줄 수 있게 도와준다.

주용완 강릉원주대 교수는 한국인터넷진흥원 보고서에서 "디지털·다매체 시대의 가속화로 페르소나가 중요한 개념으로 떠올랐다"라며 "메타버스의 가장 큰 인기 요인은 자신의 원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100% 자유도"라고 분석했다.



예컨대 링크드인에선 나의 전문성을, 인스타그램에선 호화로운 일상을, 틴더에선 데이트 상대로서의 매력을 강조하듯, Z세대는 네이버제트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와 엔씨소프트의 팬 커뮤니티 '위버스'에서 각각 다른 페르소나를 보여준다. 앞으로는 개인이 여러 개의 인격을 이용하는 문화가 조성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가상현실에서라도 구찌 입자…'부캐'에 지갑 여는 Z세대
이건준 BGF리테일 대표의 아바타와 김대욱 네이버제트 대표의 아바타(왼쪽부터)가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BGF리테일이건준 BGF리테일 대표의 아바타와 김대욱 네이버제트 대표의 아바타(왼쪽부터)가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BGF리테일
제페토는 이런 부캐들의 놀이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페토에서 Z세대는 인공지능(AI)과 AR 기술로 나와 닮은 아바타를 만들어 현실과 닮은 제페토 월드를 누빈다. 아이돌 화장에 명품을 걸친 아바타에 대리만족하며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이에 제페토 문을 두드리는 유통기업도 늘고 있다. 크리스티앙 루부탱은 지난해 9월 제페토에 2021년 봄·여름(S/S) 컬렉션을 최초 공개했고 구찌는 본사가 위치한 이탈리아 피렌체 배경의 '구찌 빌라(Gucci Villa)'가 문을 열었다. BGF리테일도 제페토에 'CU 제페토한강공원점'을 열었으며 MLB·DKNY·나이키·디즈니 등도 입점했다.


네이버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최근 시작한 20대 이용자 박모씨는 "현실에서 구찌는 수백만원대이지만, 제페토에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착장'해도 1만원"이라며 "현실에선 소심한 성격인데, 제페토에선 처음 본 아바타와 사진도 찍고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대화 중에 자리를 뜰 수 있어 보다 과감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현실 묘사에 그친 가상현실…실재감 더 높여야"
다만 현재 메타버스는 현실을 묘사한 수준에 그치다 보니 진정한 메타버스를 구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게임사 '밸브'가 지난해 선보인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이용자가 게임 속 사물의 무게감까지 느끼도록 해 현존 최고의 VR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사물의 촉감이 느껴지지 않고 달리기 등이 인식되지 않아 실재감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VR기기뿐 아니라 실감형 콘텐츠, VFX(시각특수효과) 기술력 등에 대한 시장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신동형 알서포트 전략기획팀장은 "메타버스 시대에는 실제 오프라인 세상 속 사람들의 생활과 일하는 방식을 온라인에 그대로 구현해 차이가 없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메타버스 기업은 오프라인 고객 경험과 온라인 구현 기술을 모두 확보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현실을 그대로 가상현실로 옮겨놓는 건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김상균 강원대 교수는 저서 '메타버스'에서 "현실 세계의 실재감을 완벽하게 구현해주는 기술이 등장한다면 자칫 본인이 있는 공간이 가상세계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며 "현실과 가상세계 사이의 경계를 무너트려도 될지는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