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살린 유상증자도 배임'이라는 검찰의 특이한 논리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05.26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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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배임죄]검찰 SK수펙스추구협의회 조대식 의장 등 특경가법상 배임으로 기소

=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의장이 20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018 이천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8.8.20/뉴스1  =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의장이 20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2018 이천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8.8.20/뉴스1


검찰이 지난 25일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4명을 특경가법상 배임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성공적인 기업의 유상증자를 배임으로 처벌할 경우 기업경영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배임죄란 형법 제355조(횡령 배임) 2항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재산상 이득이 5억 이상일 경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으로 처벌된다.



이 법리대로라면 조 의장 등이 SKC의 경영진으로 있으면서 SK텔레시스나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에게 이득을 제공할 목적으로 텔레시스의 유상증자에 참여토록 해 SKC에 손해를 입혔다면 처벌대상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SKC의 계열사인 SK텔레시스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어려움이 있을 때 주주 회사가 유상증자에 참여해 기업을 회생시키고, SKC도 계열사의 부도를 막아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 손해가 없는 상황인데도 배임의 죄를 묻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최신원 회장의 경우 보유한 SK텔레시스 주식을 회사에 증여하는 등의 조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재계는 어려움에 처한 계열사를 회생시킨 '성공한 유상증자'를 처벌하다는 것은 '배임죄'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해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사외이사에 경영진단 결과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검찰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 1부(부장검사 전준철)는 지난 25일 2012~2015년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등과 조 의장 등이 공모해 불법으로 자회사 SK텔레시스에 대한 SKC의 유상증자를 주도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 등)로 SK수펙스추구협의회 조대식 의장, 조경목 SK에너지 대표, 최태은 SKC 전 경영지원본부장, 안승윤 SK텔레시스 대표 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공소사실 요지는 조 의장 등이 SK텔레시스에 대한 SKC의 유상증자 추진 과정에서 SKC 사외이사들에게 경영진단 결과를 제공하지 않고, 허위 보고자료를 제공해 이사회 의결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SKC 측은 이사진들에게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재판에서 다툼이 예상된다.


검찰은 유상증자에 투입한 899억원에 대해 회수하지 못해 SKC가 손해를 입어 조 의장과 조 대표 등이 배임죄를 저질렀다는 입장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3월 2000억원대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특경가법상 횡령·배임)로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을 구속기소했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지난 4월부터 매주 최 회장 등에 대한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최신원 SKC회장(오른쪽)이 2012년 11월 28일 경기도 파주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김장김치를 담그고 있다./사진제공=SKC최신원 SKC회장(오른쪽)이 2012년 11월 28일 경기도 파주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김장김치를 담그고 있다./사진제공=SKC
핵심 쟁점은 피해 없는 배임죄…성공적인 유증 처벌?
이번 사건의 핵심쟁점은 SKC가 SK텔레시스 유상증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조 의장과 조 대표 등이 불법적인 역할을 했는지 여부다.

SKC는 SK텔레시스에 2011년(37억), 2012년(199억), 2015년(700억) 등 총 936억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번에 기소된 조 의장은 2011년 SK㈜ 사업지원부문장, 2012년 재무부문장, 2015년 SKC 이사회 의장을 지냈고, 조 대표는 2015년 SK㈜ 재무팀장을 역임했다.

검찰은 SKC가 정상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SK텔레시스에 유상증자를 함으로써 SKC에 손해를 끼쳤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당시 유증은 내부 경영진단과 외부 전문기관의 실사를 거쳐 정당하게 이뤄졌고, 결과적으로 SKC와 SK텔레시스 모두의 경영 정상화에 기여한 성공적 유증이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검찰 주장과 달리 SKC의 합리적 경영판단에 따라 유증이 실시됐고, 그 결과 SK텔레시스의 턴 어라운드가 이뤄져 주주·근로자·협력업체 등 모두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은 배임 사건' 이라고 변호인 측은 주장한다.

검찰이 문제 삼은 2012년 유증은 SKC 이사회의 독자적 결정으로 SK㈜는 전혀 관여한 바 없어 SK㈜에 근무했던 조 의장이나 조 대표와는 무관한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당시 SKC 임원도 아니어서 배임죄의 요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해당 회사 경영진)'에 속하지도 않았다.

2015년 유증 당시 두 사람은 SKC 등기이사로서 다른 사외이사들과 동일한 지위에서 선관주의(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 의무를 다해 유증 결의에 참여했다는 게 변호인 측 주장이다.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최신원 SK 네트웍스 회장이 지난 2월 17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나서고 있다. 최 회장은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됐다./사진=김휘선 기자 hwijpg@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최신원 SK 네트웍스 회장이 지난 2월 17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나서고 있다. 최 회장은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됐다./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유증 전후 최신원 회장 퇴진 및 보유지분 증여조치

통신망 사업과 전자재료 사업을 통해 안정적 수익을 내던 SK텔레시스는 2009년 휴대폰 단말기 사업 진출 이후 급속히 경영난에 빠졌다. 이로 인해 2011년 2차례, 2012년 1차례 등 3차례에 걸쳐 총 484억 5000만원의 유증을 실시했으나 부실이 심화됐다.

이에 따라 2015년 2월 SKC는 삼일회계법인에 SK텔레시스에 대한 실사를 의뢰하고 이와는 별개로 내부 경영진단을 실시, 2개월 후인 4월 이를 토대로 700억원대의 유증을 실시했다. SKC가 SK텔레시스에 700억원대 유증을 실시할 경우 미래가치가 2019년 750억원이 될 것이라는 외부전문기관의 예측결과에 따라 유증을 실시하게 된 것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SKC 이사회는 2015년 4월 22일 SK텔레시스에 대한 700억원 유증을 의결하면서 전문기관 등의 평가 결과 외에 부도처리 시 발생할 대량 실직, 협력업체 피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유증 전후 △최신원 회장 퇴진 및 최 회장의 SK텔레시스 보유지분을 SK텔레시스에 증여 △ 강도높은 구조조정 시행 △ 신규사업 진출 등 3가지 사항을 결의했다.

이후 SK텔레시스는 유증으로 수혈 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SKC로부터 반도체/LCD용 케미칼 사업을 이관받아 반도체 소재사업에 진출하는 등 사업 재편을 실시해 경영 정상화에 성공했다.

유증 다음해인 2016년 당기순익이 흑자 전환한 것을 시작으로 4년 연속 흑자를 기록해 턴어라운드에 성공했고, SKC도 SK텔레시스 재편과 연계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 자산 효율화 실시 등을 통해 매년 기업가치가 상승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일례로 SKC의 주가는 2015년말 3만 3000원이었던 것이 2021년 5월 현재 13만 8000원대로 318% 상승했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법학박사)은 "배임죄의 구성 요건이 너무 폭넓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다"며 "경영진이 최선을 다해서 경영현안에 대한 결정을 하면 그 결과에 상관없이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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