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치 반도체 역주행…"2024년까지 17% 성장"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1.05.26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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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웨이퍼.실리콘 웨이퍼.


차량용 반도체를 시작으로 전력반도체, 디스플레이 구동칩 등 8인치(200㎜) 웨이퍼 기반의 반도체 품귀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확대되면서 12인치(300㎜) 웨이퍼 등장 이후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8인치 웨이퍼 투자가 10년여만에 되살아나고 있다. 8인치 공정의 역주행이다.

26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8인치 팹(생산공장)의 장비 투자액이 40억달러(약 4조5000억원)로 지난해보다 10억달러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전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 반도체업계가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도체장비재료협회는 이런 투자 확대에 따라 전세계 8인치 팹의 월간 생산량도 지난해부터 2024년까지 17% 성장하면서 총 660만장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월간 생산량과 견주면 95만장 늘어나는 규모다.

8인치 웨이퍼는 둥근 원판 모양의 웨이퍼에서 직경(지름)이 8인치인 제품을 말한다. 12인치 웨이퍼보다 직경은 4인치 짧지만 면적은 12인치 웨이퍼가 2.5배 넓기 때문에 웨이퍼 1장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반도체의 양도 2.5배 차이가 난다. 2007년 12인치 웨이퍼 등장 이후 2010년 전후로 주요 반도체업체들이 8인치 공정에서 12인치 공정으로 대거 옮겨간 이유다.



2000년대 초반 반도체업계를 주도했던 8인치 공정은 최근 비중이 20% 후반대까지 쪼그라들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8인치 설비를 일부 운영하지만 주력 생산라인은 대부분 12인치 설비로 채운다. D램과 낸드플래시는 물론, 스마트폰용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CPU(중앙처리장치) 등이 대부분 소품종 다량생산에 적합한 12인치 웨이퍼에서 만들어진다.

8인치 웨이퍼는 이런 고부가 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전력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구동칩,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에서 주로 쓰인다.

경쟁력을 잃어가던 8인치 웨이퍼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시스템반도체 시장 성장세와 맞물린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쏟아지는 다양한 반도체 설계·제조 수요가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한 8인치 생산라인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부터 품귀현상을 빚은 차량용 반도체 등 아날로그 반도체 수요도 8인치 투자 수요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반도체업계 한 인사는 "급증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며 "업체별로 수개월 이상의 수주 잔고가 쌓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짓 마노차 반도체장비재료협회 CEO(최고경영자)는 "지난해부터 2024년까지 5G·사물인터넷(IoT)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아날로그·전력반도체·모스펫(MOSFET)·마이크로컨트롤러(MCU)·센서 등을 생산하는 신규 200㎜ 팹이 22개 추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SK하이닉스가 최근 8인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생산능력 2배 확대를 공식화한 상황이다. 8인치 웨이퍼 기반의 DB하이텍도 올 들어 월 9000장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대했다.

8인치 공정 수요가 늘면서 8인치 장비 시장도 덩달아 바빠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주요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8인치 웨이퍼용 설비 생산을 중단하지 않았다면 8인치 공정 투자 규모가 더 늘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ASML,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등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3~4년 전부터 8인치 장비를 만들지 않고 있기 때문에 8인치 장비는 주로 중고물품을 중심으로 거래되는 상황이다.

반도체 장비업체 관계자는 "2017~2018년까지만 해도 8인치 장비는 끝물이었고 중고거래조차 이뤄지지 않아 고철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없어서 못 사는 귀한 몸이 됐다"며 "8인치 장비가 중고로 나오면 웃돈을 얹어서라도 사겠다고 줄은 서면서 최근 6개월 새 중고 장비 가격이 30% 이상 뛰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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