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삼성은 미국과 일본 등의 반도체 경쟁사들을 모두 제쳤다. 삼성이 D램 시장 40% 이상을 점유한 독보적 1등 자리를 가능하게 한 변곡점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과감한 투자는 비단 제조업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지구적 위기를 세계 금융 강자들은 오히려 확장의 기회로 보고 베팅했다.
코로나19를 도약의 기회로 만든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내 기업금융 강자 PNC다. PNC는 중서부 등에 한정된 고객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BBVA USA를 인수했다. BBVA USA는 우량 기업이 밀집한 선벨트(Sunbelt)에 확고한 기반을 갖고 있었다. 마침 자본확충이 절실했던 스페인 BBVA 본점은 PNC와 뜻이 맞아 M&A가 순풍을 탈 수 있었다.
관광 시장이 고꾸라지면서 타격이 컸던 스페인 은행들은 점포 축소와 비용감축의 수단으로 합병을 선택했다. 자산 기준 스페인 2위, 5위 은행이던 CaixaBank(4743억달러)와 Bankia(2177억달러)는 합병 결과 1등(6920억달러)으로 단숨에 올라섰다. 합병과 동시에 중복점포 25%를 통폐합하고 인력 15%를 줄였다.
글로벌 은행 시장 재편은 진행형이다. 스위스 UBS는 Credit Suisse와 합병을 검토 중이고 지난해 중단된 스페인 BBVA와 Sabadell 합병 논의 역시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블룸버그는 프랑스 BNP파리바와 이탈리아 UniCredit 합병을 가능성을 예상하기도 했다. 신동림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금의 상황을 위기로만 보지 않고 변화의 기회로 삼는 글로벌 은행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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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네트워크 강화하고 통폐합 구조조정도 병행
국내 은행들도 세계를 상대로 바쁘게 움직였다. 인구 감소와 저성장, 역사적 초저금리까지 겹쳤다. 사모펀드 판매로 인한 후폭풍과 빅테크의 도전 속에 코로나19로 지난해 시중은행들 순이익이 1년 전보다 11.5% 감소한 12조3000억원에 그쳤다. 국내 시장에서 땅 따먹기 수준의 경쟁만 하기보다 전염병으로 인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미래의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나섰다.
은행들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들 위주로 진출했다. 지난해 국민은행이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에서 각각 부코핀은행과 프라삭MFI을 인수한 게 대표적 사례다. 그 결과 2020년 한 해동안 국내 은행들의 해외 자산이 23.4%, 그중에서도 신방남(445억3000만달러) 에서만 자산 규모가 46.1% 급증했다.
해외 시장 개척은 올해도 계속된다.
KB국민은행은 연내 KB마이크로파이낸스미얀마법인에서 에야와디, 바고에 지점 2개, 싱가포르에서 지점 1개를 신설할 계획이다. 신한은행의 경우 베트남에서 영향력 확대를 위해 신한베트남은행이 하노이, 호치민 내 5개 점포를 추가한다. 이렇게 되면 해외 현지법인 소속 지점 수가 150여개로 확대된다.
4월말 현재 24개국 194개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하나은행의 경우 올해 대만 타이페이 지점을 새로 설립한다. 우리은행은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미국 등 다양한 지역에 10여개 점포를 문 여는 동시에 저수익 점포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농협은행은 중국 베이징 지점 본인가를 앞두고 있다. 호주 시드니에서는 은행 명칭 사용 허가를 받았다. 홍콩, 인도 노이다, 베트남 호치민 지점도 설립한다.
지난 1월 미얀마 법인을 설립한 기업은행은 세계 경제 상황을 봐가며 추가 출점을 진행할 계획이다. 부산은행은 베트남 하노이와 인도 푸네 지점 인허가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각각 내년과 내후년 지점 문을 열 예정이다.
신병오 딜로이트안진 금융산업부문 리더는 "세계 각지의 은행들을 상대로 설문조사 한 결과 많은 은행들은 지금과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 M&A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며 "순이자마진 성장률을 만회하려면 새로운 서비스를 통한 수수료 수익 증대와 함께 규모의 경제 실현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