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닉5 혁신 이끈 캠핑 덕후…"드라이기·온열기까지 꽂아봤죠"(上)

머니투데이 이강준 기자 2021.05.24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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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만3760대. 아이오닉5가 사전예약 첫 날에만 계약한 건수다. V2L(Vehicle to Load)·800V 초급속 충전 등 혁신 기술이 소비자들 마음을 사로잡은 덕이다. 이를 개발한 연구원들을 직접 만나 기술 개발 뒷얘기와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점, 현대차 전기차의 미래를 물어봤다.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7일 서울 용산구 아이오닉 5 스퀘어에서 아이오닉 5가 공개되고 있다. 2021.03.19.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7일 서울 용산구 아이오닉 5 스퀘어에서 아이오닉 5가 공개되고 있다. 2021.03.19. [email protected]


"아이오닉 5 V2L(Vehicle to Load)의 시장성이 입증되면 테슬라, 벤츠도 분명히 따라올 겁니다"

지난 14일 오후 2시쯤 만난 곽무신 현대자동차 전력변환제어설계팀장은 "V2L은 어디까지 확장될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혁신적인 기술"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V2L은 전기차에 탑재된 고전압 대형 배터리의 전력을 외부로 끌어다 쓸 수 있는 기능이다. 집·카페·회사에서 쓰듯 차량 내외부에 마련된 220V 단자에 전자기기를 연결하기만하면 바로 쓸 수 있다.

'캠핑 덕후'들이 만든 V2L..전력량 확대·간편 사용으로 단점 극복
현대차 첫 전용전기차 아이오닉5의 V2L(Vehicle to Load) 기술개발을 담당한 성현욱 현대차 전력변환제어설계팀 파트장(왼쪽)과 곽무신 현대차 전력변환제어설계팀장(오른쪽)/사진제공=현대차현대차 첫 전용전기차 아이오닉5의 V2L(Vehicle to Load) 기술개발을 담당한 성현욱 현대차 전력변환제어설계팀 파트장(왼쪽)과 곽무신 현대차 전력변환제어설계팀장(오른쪽)/사진제공=현대차
곽 팀장과 같은 팀이었던 성현욱 파트장은 회사에서도 알아주는 '캠핑 덕후'다. 곽 팀장은 매달 2~3번 캠핑을 다녔고, 실제 초기 아이오닉 전기차를 구매해 아들과 차박을 다니는 게 취미일 정도다. 성 파트장의 캠핑 경력은 10년인데, 캠핑용 차가 따로 있고 항상 관련 용품을 쌓아두고 다녀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준비된 캠핑 덕후'로 통한다.



V2L 아이디어도 이들 취미에서 비롯됐다. 차박·캠핑 인구는 늘어나는데 국내에서 전력 공급이 가능한 캠핑지는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곽 팀장과 성 파트장의 제안에 현대차 기획·마케팅 부서에서는 처음에는 당황해했지만 'V2L의 확장성'에 주목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오히려 나중엔 출시 시기를 앞당겨 달라고 아우성일 정도였다. 그 결과 V2L 기능을 탑재한 아이오닉5는 내년에 출시될 예정이었지만 올해 상반기로 앞당겨졌다.

사실 V2L은 아이오닉5가 최초는 아니다. 그 이전에 대형 내연기관차에서도 노트북 하나 정도 충전할 수 있는 기초 단계의 V2L이 있었고, 2018년에 출시된 닛산 전기차 '리프'에서도 컨버터를 연결하면 전자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전력이 너무 약해 쓸 수 있는 전자기기가 제한적이거나, 컨버터가 너무 커서 실생활에 쓰기 어려웠다. 실제 리프의 홍보 문구도 "지진 등 재해로 전기가 끊겼을 때 유용하다"였다.

아이오닉5의 V2L은 이같은 기존 기술의 단점을 모두 극복했다. 3.6kW의 고전력으로 일반 가정집에서 쓸 수 있는 전자·가전제품은 모두 쓸 수 있고, 사용 방식도 220V 단자에 전자기기를 바로 연결하면돼 간단해졌다.

"꽂을 수 있는 전자기기는 다 꽂아봤다"..4단계 안전장치도 마련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7일 서울 용산구 아이오닉 5 스퀘어에서 아이오닉 5가 공개되고 있다. 2021.03.19.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7일 서울 용산구 아이오닉 5 스퀘어에서 아이오닉 5가 공개되고 있다. 2021.03.19. [email protected]
'전기차의 대용량 배터리를 외부로 빼서 쓴다'는 개념은 간단했지만 이를 개발하는 과정은 지난했다. 현대차 전기차 전용플랫폼 E-GMP 기반으로 출시된 첫 차인만큼 안전한 기술 개발에 신중을 기울였다.

V2L 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각 나라마다 다른 전력 체계였다. 한국은 220V를 사용하고, 미국은 110V, 유럽은 230V를 사용하는데 주파수 마저 천차만별이라 이를 모두 호환할 수 있는 차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게 불가능했다.

이들은 아이오닉5가 받아들이는 전기를 각 국가의 규격에 맞게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덕분에 내수·해외용 차를 다르게 설계할 필요가 없어져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소비자들의 V2L 사용 방식을 예상해 테스트하는 것도 어려웠다. 현대차에서 V2L 사후 관리(A/S)를 '보증'하기 때문에 규격내 어떤 전자제품을 꽂아도 정상적으로 작동돼야했다. 배터리 한계치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가혹조건을 조성해 대형 온열기·에어컨부터 스마트폰 충전기까지 꽂을 수 있는 전자기기는 전부 테스트해봤다.

성 파트장은 "소비전력 총합이 3.6kW 이하라면 멀티탭을 연결해 어떤 제품을 써도 무방하다"고 말했고 곽 팀장도 "과전압·과전류 등을 방지하는 총 4단계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V2L 애플 아이폰처럼 전기차 패러다임 바꿀 것, 테슬라·벤츠도 벤치마킹"

지난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아이오닉 5 스퀘어에서 현대자동차의 첫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가 적용된 '아이오닉 5'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지난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아이오닉 5 스퀘어에서 현대자동차의 첫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가 적용된 '아이오닉 5'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이들은 애플의 아이폰 출시 이후 '핸드폰'의 패러다임이 바뀌며 스마트폰·앱 관련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처럼 V2L도 '전기차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 것으로 봤다.

전기차가 움직이는 가정집, 사무실 등 전기가 필요한 어떤 장소로도 변할 수 있어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설명이다.

아이오닉5 전용 냉장고 등 V2L을 활용한 액세서리와 더불어 전기차끼리 전기를 나눠주는 V2V(Vehicle to Vehicle), 전기료가 저렴한 시간대에 충전해뒀다가 비싼 때 집에 전기를 공급해주는 V2G(Vehicle to Grid) 등 관련 비즈니스도 무궁무진하다. 이미 기술적으로는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곽 팀장은 "지금 당장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V2L의 가능성은 무한하다"며 "이 기술이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걸 증명해내면 테슬라·벤츠 등 많은 전기차 제조사들도 벤치마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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