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호가 말하는 공정…그리고 '내로남불'

머니투데이 세종=김훈남 기자 2021.05.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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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호가 말하는 공정…그리고 '내로남불'


전직 고위관료이자 국내 사모펀드 두 곳의 고문으로 재직 중인 변양호씨가 최근 '경제정책 어젠다 2022'(부제: 자유, 평등 그리고 공정)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 출신인 변 고문(행정고시 19회)은 경제관료 출신 4명과 함께 쓴 이 책에서 줄곧 '공정'을 강조했다.



그는 서두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 경쟁이 불공정하면 힘 있는 사람이 이기지만 경쟁이 공정하면 능력 있는 사람이 이긴다"며 "공정하지 않으면 경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책과는 달리 '공정'에 어긋난 행보…'전관 지위' 이용 펀드자금 모아



그러나 정작 변 고문이 이렇게까지 '공정'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의문이다. 과거 고위 금융관료라는 전관의 지위를 활용해 사모펀드 자금을 끌어모으고 적지 않은 돈을 번 인물이라는 그에 대한 세평 때문이다.

변 고문은 2005년 우리나라 최초의 토종 사모펀드 운용사인 보고펀드를 공동 설립했다. 출범 첫해에 14개 금융사에서 5100억원을 투자받는 등 약 2조원의 약정액을 끌어모았다. 특히 보고펀드는 설립한지 얼마 안 돼 동양생명, 비씨카드 등 대형 금융사 매매 딜(거래)을 따내 화제가 됐다.

당시 신생펀드가 대형 금융사 딜을 성사시킨 것은 재경부 금정국장 출신이란 배경 말고는 달리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평이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 공직자는 "금정국장이라는 핵심요직을 발판으로 자본시장에 뛰어든 뒤 곳곳의 인맥을 활용해 펀딩과 투자, 보증 등에서 압도적 우위를 누리며 수익을 올린 게 변 고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할 자본시장에서 각종 불공정한 행태를 보였던 변 고문이 이제와서 공정의 가치를 거론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정의 가치와 어긋나 보이는 변 고문 행보는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현재 변 고문은 보고펀드에서 갈라져 나온 바이아웃(경영참여)형 사모투자펀드(PEF) A운용사와 헤지펀드 B운용사 2곳 모두의 고문으로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 자리까지 맡고 있다.

◇펀드 고문·금융사 사외이사 겸직…논란됐던 연예인 술자리 경력도

사모펀드 2곳에 고문 자격으로 소속된 변 고문이 국내 빅4 금융지주회사 가운데 하나인 신한지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건 이해상충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도 그는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금융권에선 전직 고위 관료인 그의 역할이 단순한 사외이사로 머물 것으로 보지 않는다. 신한금융그룹은 변 고문이 후배 경제 관료들 사이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했을 것이고, 반대로 변 고문은 인수금융이나 출자 등에서 신한이 사모펀드에 줄 수 있는 직간접적인 도움을 생각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공직을 내던지고 뛰어든 사모펀드로 돈을 번 변 고문이지만, 펀드 사업에서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평가다. MP3 플레이어 업체 아이리버 투자에서 저조한 성과를 거둔 변 고문은 반도체 웨이퍼 업체 LG실트론 투자에서도 대규모 손실을 보고 디폴트 사태까지 초래했다. 2014년 변 고문이 사모펀드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이 같은 투자 실패가 주요한 원인이라는 평가다.

변 고문이 여성 연예인과의 부적절한 술자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도 공정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보고펀드 대표 시절인 2008년 한 연예기획사 대표와 소속 여성 연예인이 참석한 술자리를 주선했다. 그즈음 변 고문은 해당 연예기획사와 투자 문제를 논의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술자리에 참석했던 여성 연예인은 이듬해 기획사 대표의 술접대 강요 등에 따른 심리적 피해를 호소하며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한 전직 관료는 "사모펀드 대표가 투자를 논의하던 기업의 소속 연예인들을 술자리에 불러냈다면 전형적인 갑질이자 공정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라며 "본업인 펀드 운영은 물론 국내 첫 토종 사모펀드라는 보고펀드의 브랜드 관리에도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책 출간 시점을 놓고도 말이 많다. 대선을 1년도 안 남긴 시점에서 공정을 전면에 내건 책을 낸 게 순수한 의도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변 고문은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경제특보로 활동하는 등 정치권에 뛰어든 전력이 있다.

이와 관련, 변 고문은 최근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경제 시스템 구축이 급선무"라며 "문재인 정부에서 망가진 경제 시스템을 올바로 복원시키는 일, 자유롭고 공정하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제대로 도와줄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이 시대 대통령의 경제정책 어젠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든 이재명 경기도지사든 이 책을 꼭 읽고 다음 정권 경제정책 어젠다를 선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면서 차기 정부에서 역할을 하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자신과 달리 공공 부문에서 성실하게 길을 걸어온 후배 경제관료들과 책을 공저한 것을 놓고도 뒷말이 나온다. 변 고문은 책의 주제나 공동저자들이 쓸 내용에 깊이 관여하는 등 집필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 고문의 요청에 따라 집필에 참여한 4명의 고위 경제관료 출신들은 모두 퇴직할 때까지 공직에 충실했던 인물들이다. 사모펀드 사업을 위해 스스로 공직을 던진 변 고문과는 대조된다.

재임 시절이나 퇴직 후에도 평판이 좋은 인사들을 끌어들인 것은 '공정'이라는 책 주제와 다른 삶을 살아온 자신을 향한 비판을 차단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출신의 금융권 관계자는 "전관예우를 누리며 살아온 변 고문의 커리어를 업계에서 알 말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그런 사람이 공정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전형적인 내로남불 행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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