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상폐 '먹튀' 에스앤씨엔진그룹…주주들만 속탄다

머니투데이 김태현 기자 2021.05.2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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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상폐 논란]①

/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상장폐지 한다는데 속만 타는 건 우리 주주뿐이네요."

에스앤씨엔진그룹 (21원 ▼5 -19.23%)(이하 에스앤씨)의 상장폐지 흐름을 두고 고의 폐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 주주들의 가처분 신청으로 상장폐지 절차가 간신히 정지된 상태인데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주주들이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상장폐지를 막기 위해 애쓰는 정작 에스앤씨 본사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주주들은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고의 상장폐지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충분한 자금력과 영업환경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장폐지를 통해 2대 주주의 지분을 무력화하는 그림이란 설명이다. 결국 최대주주의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에 개인 투자자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폐에도 '묵묵부답' 에스앤씨 본사…주주만 애가 탄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인기자/그래픽=이승현 디자인기자
에스앤씨는 2009년 코스닥에 상장한 중국 지주회사다. △복건성강시산리엔진유한공사 △진강시청다기어유한공사 △진강신리부동산개발유한공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디젤엔진과 자동차 부품 등을 생산하며 부동산 관리사업도 영위한다. 모두 중국에 법인을 두고 있다.



에스앤씨는 상장 이후 꾸준한 성장을 보였다. 11년 연속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2019년 9월말에는 자기자본 4598억원, 현금성 자산만 2000억원이 넘었다. 상장 당시보다 3배 이상 성장했다. 준수한 실적을 이어온 에스앤씨에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된 건 지난해 3월부터다.

에스앤씨는 2020년 3월 24일 자회사인 △복건성진강시산리엔진유한공사 △진강시청다기어유한공사가 중국 환경보호국의 폐수처리시스템 시정 행정명령으로 생산을 중단했다고 공시했다. 각각 전체 매출의 38.72%, 53.61%를 차지하는 주요 자회사의 생산 중단은 거래정지로 이어졌다.

문제는 그 이후 에스앤씨의 태도다. 에스앤씨는 영업 재개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주주와 소통도 없었다. 반면 지난 2월 중국 현지 방송에 전기차 업체 BYD 부품 납품을 밝히는 등 활발한 홍보을 벌이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6월에는 외부감사인의 의견거절로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 주요 생산시설 중단으로 지속적인 사업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한국거래소는 개선기간을 부여했다. 그러나 에스앤씨는 개선계획서는 물론 코로나19로 실사 어렵다는 이유로 사업보고서도 미제출했다.

결국 에스앤씨는 법정제출기한인 5월 10일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13일부터 7거래일 간 정리매매 후 25일 상장폐지될 예정이었다. 12일 에스앤씨 주주들이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상장폐지결정 등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하면서 상장폐지 절차가 보류된 상태다.

에스앤씨 투자자는 "지난 3월 구체적인 진행 상황을 알기 위해 임시주주총회를 요구했을 때만 해도 에스앤씨 측은 '4월 28일 정기 주주총회를 진행할 예정이어서 임시주총은 필요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그러나 주총은 열리지 않았고 주주를 철저히 무시했다"고 말했다.

경영권 방어 위한 유증 실패…마지막 방법은 고의상폐
/그래픽=이승현 디자인기자/그래픽=이승현 디자인기자
에스앤씨가 고의 상장폐지를 선택한 이유로는 경영권 유지가 꼽힌다. 우선 에스앤씨 지분 구조부터 살펴보자. 애스앤씨 최대주주는 천진산 대표로 지분 20.12%를 갖고 있다.

여기에 천궈웨이(3.38%), 천진청(0.39%), 천리군(0.39%) 등 우호지분을 더하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24.28%가 된다. 2대주주는 싱가포르 투자회사 ICM리서치가 소유한 퍼머넌트뮤츄얼로 지분율 17.74%다. 이외 59.39%는 지분율 5% 이하 소액주주들로 구성돼 있다.

최대주주와 2대주주 간 지분율 차이에도 불구하고 천 대표가 경영권 분쟁을 우려하는 이유는 2019년 12월 9일 퍼머넌트뮤츄얼과 맺은 주식 담보제공 계약 때문이다.

천 대표는 퍼머넌트뮤츄얼로부터 에스앤씨 주식 1만8322만44주(지분율 14.8%)를 담보로 500만달러(약 60억원)를 차입하는 계약을 맺는다. 담보권을 실행할 경우 퍼머넌트뮤츄얼은 천 대표의 지분을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 권리를 얻는다. 최재주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다.

실제 퍼머넌트뮤츄얼는 2020년 초 주가 하락을 이유로 담보권 실행을 검토했다. 2019년 12월 430원대였던 에스앤씨 주가는 2020년 3월 200원대로 급락한다. 투자자들은 퍼머넌트뮤츄얼의 담보권 실행 시점에 맞춰 중국 자회사들의 생산이 중단된 데 의문을 제기한다.

의도적으로 주요 자회사의 생산을 중단해 주식 거래를 정지시키고 담보권 실행을 막았다는 지적이다. 천 대표의 행보는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거래정지 기간 천 대표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110억원으로 전체 주식 33% 지분을 확보하려고 시도했다. 담보권 실행 방어를 위해서다.

이에 퍼머넌트뮤츄얼은 홍콩특별행정구 고등법원에 유상증자 금지 가처분 신청했다. 퍼머넌트뮤츄얼은 가처분 신청 사유에 대해 "에스앤씨는 당사가 주식 담보제공 계약에 따라 천 대표의 지분을 취득할 예정이라고 통보한 직후 유상증자를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 소액주주…가처분 신청만 기다린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사진=임종철
에스앤지 주주들은 가처분 신청을 통해 상폐 절차를 일단 중단시켜놓고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주주들이 기대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긴 어려워 보인다.

서울남부지법에 상장폐지결정 등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한 채권자는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박환수씨, 채무자는 거래소다. 에스앤씨 본사는 이번 상폐와 관련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거래소 관계자는 "최근 상폐 위기에 놓인 기업과 주주들이 가처분 신청을 하는 경우는 많다"며 "그러나 본사가 아닌 주주만 가처분 신청을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설명했다. 상장계약의 주체인 본사가 적극적이지 않은 만큼 법원에서도 주주 권리를 보호받긴 쉽지 않다.

지난해 8월 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을 무효로 판단한 확정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은 전자부품 제조업체 감마누(현 THQ (466원 ▲4 +0.87%))가 한국거래소를 상대로 낸 상장폐지결정 무효 확인 소송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은 당시 거래소 시행 세칙에서 규정한 '상장폐지 사유 발생 후 6개월 내 결정' 조항이 재량권을 일탈, 남용해 무효라고 판단했다. 감마누에 충분한 개선 기간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는 에스앤지에 이같은 논리를 적용하긴 어렵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사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통상 2주 정도면 가처분 결과가 나오곤 했다"며 "이번 가처분 신청의 경우 사실상 상장계약 주체인 에스앤지 본사가 빠져있어 채권자인 주주들의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해줄 수 있는지가 관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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