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자사주 매입은 주가 조작이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05.2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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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삼성물산 합병 재판 7대 쟁점 분석](4)제일모직 자사주 매입 시세조종 혐의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 심리로 세번째로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재판에서 검찰이 전직 삼성증권 한모팀장에 대한 증인 심문을 통해 얻으려고 했던 것은 합병이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다는 점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6일에 이어 이날까지 두차례에 걸친 A팀장에 대한 증인신문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었으나 합병작업이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다는 구체적인 증언을 듣지 못했다. 검찰이 소위 '프로젝트 G'라고 하는 지배구조 개선 방안에 집중하는 이유는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라는 '의도(목적)'가 입증돼야 검찰이 생각하는 많은 퍼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이런 목적이 사라지면 삼성물산 (138,200원 ▼2,100 -1.50%)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은 통상적인 기업활동의 한 과정에 불과할 뿐, 목적범적 성격인 주가조작 등에 대한 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 없게 된다. 검찰이 자본시장법 제176조의 시세조종 혐의를 제일모직의 자사주 매입 과정에 적용한 것이 무의미해진다는 얘다.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라는 의도가 입증되지 않으면 단순히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매수청구권 행사규모를 줄이기 위해 자사주를 매입한 것은 기업의 주가관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18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18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자사주 매입 과정이 주가조작이라는 검찰
자사주 매입은 특정기간에 특정 물량을 매집하겠다고 공시하고, 집중적으로 자기 회사 주식(자사주)을 사는 것이다. 통상 매입목적은 주주가치 제고로 주가안정을 위한 것이다. 제일모직은 2015년 7월24일~10월 23일까지 자사주 총 250만주(4400억원)를 매입하기로 했다.

이 자사주 매입이 시세조종이 되는 경우는 관련 법을 어겼을 경우다. 자사주 매입과 관련한 법 규정은 상법 제341조(자기주식의 취득)와, 자본시장법 제165조의3(자기주식 취득 및 처분의 특례), 동 시행령 제176조의2(자기주식의 취득ㆍ처분기준), 자본시장법 제176조(시세조종행위 등의 금지) 2항과 3항 등에 있다.

또 검찰이 주가조작이라고 규정한 고가매수 주문 등과 관련해 매매절차와 방법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업무규정 제39조(주권상장법인 자기주식매매방법)에서 구체적으로 예시해놓고 있다. 이를 위반했으면 주가조작의 개연성이 높고, 그렇지 않고 법에 정해진 범위 내에서 매수했으면 높은 가격이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거래다. 제일모직 등은 엄정하게 법을 지켰다는 입장이다.


반면 검찰은 2015년 7월 24일부터 8월10일까지 10거래일간 제일모직의 자사주 매입과정에서 조직적인 주가조작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76조(시세조종행위 등의 금지) 2항과 3항에 적시된 대로 제일모직이 매매를 유인할 목적으로 시세를 변동시키거나 시세를 고정시키는 자사주 매매를 위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제일모직은 자사주를 집중매입(172만주, 2902억원 투입)하면서 다수의 고가매수 주문(7049회, 23만주), 물량소진 주문(1만3185회, 54만주), 단주주문(1만4075회, 12만주) 제출 등을 통해 시세조종을 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삼성 불법승계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조사부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행위,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2)과 전·현직 삼성 임원 등 총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1년9개월 만이다. 2020.9.1/뉴스1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삼성 불법승계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조사부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행위,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2)과 전·현직 삼성 임원 등 총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1년9개월 만이다. 2020.9.1/뉴스1
자사주 매입 행위 자체보다…'나쁜 의도'가 있었냐가 쟁점
문제는 '주가관리냐 주가조작이냐'는 것이 형법적으로 그 행위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서로 미리 가격을 정하고 사고 파는 통정매매나 허수주문과 같은 가장매매 등은 객관적으로도 주가조작의 '나쁜 의도'가 있었다는 게 수사로 확인된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일반적 자사주 매매행위로서 주가관리와 주가조작은 '행위' 자체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2002년 형사정책논문 현상공모에 당선된 '시세조종행위의 형법적 문제에 관한 연구'(임철희, 한국형사정책연구원)를 보면 주가조작행위와 주가관리행위는 똑같이 증권시장의 가격결정 메커니즘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증권의 시장가격을 인위적으로 변동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증권시장에 참여하는 행위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주관적 동기인 주가를 조작해서 시세차익을 획득하려는 '나쁜 의도'(bad intent)에서 범죄의 성립 여부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의도'는 합법적인 증권거래행위와 불법적인 시세조종행위를 구별짓는 표식이라는 해당 논문의 요지다.

자사주 매입 주가조작 혐의 셀트리온 무혐의…애플 자사주 매입은?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2월 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셀트리온 제2공장에서 열린 '코로나19 항체치료제 생산 현장 점검'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2월 8일 오후 인천 연수구 셀트리온 제2공장에서 열린 '코로나19 항체치료제 생산 현장 점검'에서 참석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과거 선례로 볼 때 법이나 규정을 어기지 않고, 시세차익을 노리지 않은 경우 주가조작으로 처벌 받을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2012년 당시 코스닥 대장주였던 셀트리온이 공매도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2000여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자사주를 매입한 것에 대해 금융당국이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시작된 조사에서 총 3건의 혐의 중 2건은 무혐의, 1건은 약식기소로 종결됐다.

셀트리온은 2012년 5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지주회사와 계열사·우리사주조합·주주동호회 등의 계좌를 동원해 142거래일 동안 2000여억원을 투입해 시세조종 주문을 내고 주가를 인위적으로 움직인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당시 통상의 주가조작과 달리 시세차익을 노리지 않았고 공매도 세력에 대한 회사 차원의 대응이 불가피했던 점을 고려했다.

2014년 7월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우인성 판사는 매매 규정을 어긴 1건에 대해 서정진 회장과 김형기 당시 부사장, 이모 주주동호회장에 대해 각각 벌금 3억원의 약식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종결했다.

제일모직이 원활한 합병성사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했고, 시세차익이 없었다는 점을 들 경우 선례로 볼 때 무혐의 처분을 받은 셀트리온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애플 주가 추이/출처: 네이버 증권애플 주가 추이/출처: 네이버 증권
미국 애플의 자사주 매입도 비슷한 경우다. 애플은 전세계에서 자사주를 가장 많이 산 기업으로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상승 효과로 CEO인 팀 쿡이 경영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오고 있다.

애플은 2014년~2018년까지 5년간 2230억 달러(우리 돈으로 약 252조원, 달러원 환율 1129.5원) 상당의 자사주를 매입했고, 2019~2020년 두 해 동안만도 1250억달러(우리 돈으로 143조원, 2019년 750억달러-약 85조원, 2020년 500억달러-약 57조원)의 자사주를 샀다. 올해도 900억 달러(102조원-SK하이닉스 시가총액을 넘어서는 규모)의 자사주 매입계획을 갖고 있다.

애플은 2020년 매출이 2018년보다 3.3%(2656억달러→2745억달러)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6.5%(709억달러→663억달러) 하락해 이익률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 8월 2일 1조달러였던 시가총액은 2년만인 2020년 8월 19일 2조달러로 급등했다. 자사주 매입 효과로 시가총액이 두배가 된 것이다. 경영실적과는 별개로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에 성공해 CEO 직을 유지한 것이 주가조작에 해당될까?

금융위, 매수청구권 행사기간 중 자사주 매입은 문제 없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매수청구권 행사 기간 내 자사주 매입이 가능한지의 여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법이나 자본시장법에 기업이 주가 안정을 위해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도록 해놨다. 또 2018년 발간된 기업공시 실무안내 자료에 따르면 매수청구권 행사 기간 중 주가안정 등을 위한 자사주 매입이 문제가 없느냐는 기업들의 질의에 금융위원회는 "문제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금융위는 자기주식취득신고서 예시에도 취득목적으로 '자사주식 가격의 안정'을 예로 명시해놨다. 제일모직이 매수청구권행사 기간 중 주가안정을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한 것이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또 금융위는 지난해 8월 코로나19로 인한 주식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임시금융위원회를 개최해 자기주식 매수주문 수량한도 완화조치를 연장하기로 의결하기도 했다. 기업들에게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안정을 시키라는 메시지다.

애플 자사주 매입은 주가 조작이다?
고가주문은 주가조작이다?...규정은 다르게 말한다
1993년 이전까지는 정부가 자사주 매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던 것을 1993년말 증권거래법(현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면서 바꿨다. 적대적 기업인수합병에 대응하고, 주식시장 안정을 위한 수단(주가 안정)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자사주 매입 허용 범위를 넓힌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부자거래 및 주가조작 등 부작용을 우려해 증권거래소에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규정을 마련하도록 했다. 그것이 자본시장법 내 자기주식 취득내용과 한국거래소의 업무규정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인 2015년 주권상장법인 자기주식매매방법을 보면 장 개시 전에 호가하는 경우 당해 종목의 전일 종가와 전일 종가를 기준으로 5% 높은 가격 범위 이내의 가격에서 주문을 낼 수 있도록 돼 있다. 전일 종가 기준으로 5% 높게 개장 전에 주문을 내도 부정한 행위가 아니라는 얘기다.

또 당시 제일모직이 자사주를 매입했지만, 주가는 오르지 않았다. 검찰은 덜 떨어지도록 부정행위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재판부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실제 매수청구권 행사 시작 때인 2015년 7월 17일 제일모직 주가는 17만9000원, 삼성물산 주가는 6만2100원이었던 것이 매수청구권 행사 마지막날인 8월 6일 각각 16만 1000원과 5만 52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고가주문에도 두 회사 모두 주가는 오르지 않고 오히려 떨어졌다.

이 부회장 측은 "제일모직으로부터 자사주 매매 위탁을 받은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한국거래소의 자기주식매매 업무규정을 준수해 적법한 거래를 했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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