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암살한 안두희, 무기징역 1년 뒤 거리 활보한 배경은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2021.05.21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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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 방송 화면/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 방송 화면


'꼬꼬무2'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 안두희의 배후를 조명했다.

지난 2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 11번째 이야기 '암살자와 추적자' 편에서는 김구 선생을 시해한 암살자 안두희와 그를 쫓았던 추적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날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72년 전인 1949년 6월26일에 시작된다. 평화로운 일요일 정오 서울의 한 저택 2층에서 네 발의 총성이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권총을 손에 든 남자가 계단을 내려오며 "내가 선생님을 죽였소"라고 소리쳤다. 그가 살해한 이는 바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주석이자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이었다.



암살자는 당시 육군 포병부대 소위였던 안두희였다. 사건 직후 김구의 비서들은 안두희를 붙잡고 폭행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헌병들이 들이닥쳐 그를 데리고 갔다. 당시 김구 선생의 비서는 "총소리가 나고 2분여 만에 헌병이 들이닥쳤다"고 밝혔다.

이후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서울지검장이 헌병에 의해 출입을 저지당했다. 군은 "범인이 군인이니 군에서 수사하겠다"며 검사장을 막았다. 다음날 아침 국방부는 "안두희가 김구를 따르던 측근이었는데 언쟁 끝에 격분해 우발적으로 김구를 살해했다"며 배후는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사건 발생 2년 후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암살범 안두희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안두희는 소위 계급 그대로 군에 복귀했고 1년도 안돼 대위로 초고속 진급했다. 1951년 2월15일에는 국방부 장관 지시에 따라 그의 잔형까지 면제되는 일이 벌어졌다. 범행 1년7개월 만에 석방된 안두희의 실제 복역 기간은 1년이었다.

그날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추적자들이 나섰다. 수십 년 동안 무려 10 명 이상의 추적자가 바통을 넘겨받듯 안두희의 뒤를 쫓았다. 숨으면 찾아내고 도망가면 추적하며 그들이 안두희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 '암살의 배후를 밝혀라'라는 것이다.

추적 끝에 안두희를 마주한 추적자들은 그에게 시해 사건의 배후를 물었다. 안두희는 경무대(청와대)에서 이승만을 만났다고 밝혔다.


이에 추적자들은 곧바로 기자들을 불러 모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1992년 9월 24일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안두희는 모든 것은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또 1948년 초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미군 정보기관의 한국 책임자와 수시로 만났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리고 당시 미군에서는 백범 김구를 블랙타이거, 암적 존재, 제거해야 할 존재라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탁 통치를 계획했던 미국에게 단독정부 수립을 결정한 김구는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기자회견 이후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안두희는 하루 만에 진술을 뒤엎었고 그는 추적자들의 감금, 폭행에 의한 거짓 진술이라 주장했다.

2년이 더 흘러 국회에서 진상 규명 위원회가 열렸고 안두희가 증인으로 출석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실어증으로 증인 선언을 못하겠다고 했고 어떤 질문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결국 백범 암살 사건은 정권 차원의 범죄였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입증했으나 배후는 끝내 밝히지 못했다. 안두희는 1996년 경기도 부천 부스 기사 박기서에게 피살됐다.

이후 2001년 미국 국립 문서 보관소에서 3급 기밀문서가 발견됐다. 백범 김구 암살 배경 정보가 쓰인 문서에는 "안두희는 암살을 일삼던 우익 테러 단체의 조직원이며 CIA의 전신 CIC의 한국 주재 요원이었다"라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이날 이야기에 대해 장항준은 "다시 한번 떠올리고 진짜 한국 근현대사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는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라며 "우리는 첫 단추를 잘못 채우고 옷이 삐딱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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