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질주 9' 20년차 맛집의 팬서비스란 이런 것

머니투데이 권구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5.2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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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첫날 40만명 동원!하며 극장가 구세주 등극

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 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



단골 맛집의 배신은 없었다. 개업한 지 어느덧 20년,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을 세월 속에 메뉴는 많아지고, 주인도 바뀌고, 인테리어도 변했지만 가장 중요한 본연의 맛을 꾸준히 지켜오고 있다. 여기에 프랜차이즈로 사업을 확장하며 공격적인 자본 투입하면서도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킨다’는 초심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4년 만의 새로운 메뉴 출시, 시대의 트렌드를 읽는 센스와 감성을 더해 팬들이 원하고 있는 서비스를 완벽히 준비했다.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신작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19일 국내 개봉했다. 북미보다 무려 37일이나 빠른 조기 개봉. 코로나19로 인해 1년이나 늦춰진 개봉이지만 그나마 국내 팬들의 갈증이 조금이나마 빨리 해소될 수 있다는 건 좋을 일이다. 이번 작품의 원제는 ‘Fast & Furious 9 THE FAST SAGA’. ‘사가’라는 부제를 붙인 만큼 1편에서 대사로만 전해졌던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와 아버지의 전사를 시작으로 동생 제이콥 토레토(존 시나)를 더해 ‘토레토 패밀리 사가’를 열고 닫는다.

오래 기다린 팬들을 위한 첫 번째 서비스는 오리지널 캐릭터의 귀환이다. 우선 한(성강)이 부활했다.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을 끝으로 볼 수 없었던 한의 복귀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가 내세운 최고의 카드. 한국계 미국인 배우인 만큼 국내 팬에게 나아가 아시아 관객들에게 더욱 반가울 지점이다.(‘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중국에서의 인기가 엄청나다)

애프터 서비스도 훌륭하다. 비록 “알고 보니 손오공은 죽지 않고 살아있었습니다”라는 ‘드래곤볼’ 식 설정이지만 시리즈의 팬들은 이미 레티 토레토(미셀 로드리게즈)를 통해 예방주사를 맞은 바 있다. 주목할 부분은 시리즈 세 번째 작품 ‘도쿄 드리프트’ 속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함께 부활시켰다는 것. 시리즈 최저 흥행이라는 흑역사를 자연스럽게 오리지널 스토리에 합류시켰다. 앞으로 또 다른 스핀오프나 확장된 세계관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

메인 여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미아 토레토(조다나 브류스터)도 복귀했다. ‘분노의 질주: 더 세븐’ 이후 약 6년 만의 귀환이다. 남편 브라이언 오코너를 연기한 배우 폴 워커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자연스럽게 하차 수순을 밟을 줄 알았기에 더욱 반갑다. 오빠와 남편에 가려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던 와일드한 모습도 본편을 통해 부활했다.

비주얼과 액션 서비스는 한결같다. 역시 카체이싱에 관해서라면 최고의 맛집이다. 오프닝부터 태국의 정글을 헤집으며 스피드를 자랑한다. 펑펑 터지는 지뢰와 함께 절벽을 넘나들 땐 딱 우리가 알고 있는 ‘분노의 질주’ 특유의 심쿵 어택을 선사한다. 또한 이번 시리즈의 핵심 액션 포인트는 ‘자석’이다. 강력한 자기장을 통해 서로를 밀고 당기며 에든버러 도심을 질주하는데 압도적인 물량 파괴와 함께 돈맛을 자랑한다.

더불어 미국 머슬카와 일본 자동차라는 기본 구도 속에 슈퍼카에 인색했던 기존 공식을 파괴했다. 영국의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초청장을 뿌려 차량 협조를 얻어냈단다. 덕분에 람보르기니부터 맥라렌, 페라리 등 초호화 슈퍼카들의 향연을 담아냈다. 또한 그간 육(탱크), 해(잠수함), 공(비행기)을 집어삼킨 ‘분노의 질주’는 이제 지구를 넘어 우주로 진출한다. 선 넘은 연출인 만큼 우주선(?)의 핸들은 만담 콤비 로만 피어스(타이레스 깁슨)와 테즈 파커(루다크리스)가 잡았다.

다만 서사의 개연성은 조금 떨어진다. 이는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때도 지적 받았던 지점.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그간 호쾌한 액션을 앞세우면서도 인물들의 드라마를 잘 조합하며 나름 탄탄한 구조를 만들어 왔다. 동네에서 비디오 플레이어나 털던 주인공들이 세계를 구하는 액션 영웅으로 성장했다는 과장된 플롯에도 팬들의 지지를 유지했던 핵심 요소였다. 액션 영화라며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분노의 질주’가 가진 특별함을 놓칠 필요도 없다.

물론 시리즈의 구심점이었던 브라이언과 돔의 더블 히어로 체제를 더 이상 구축할 수 없다는 건 심각한 악재다. 제이콥을 소환한 것 역시 같은 고민에서 시작된 결론이었을 터. 새로운 가족을 등장시킨 이상 도미닉 패밀리에 자연스럽게 ‘돔며들게’ 하는 것은 앞으로 제작진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
영화의 팬서비스는 엔딩에서 정점을 찍는다. 가족애를 중시하는 시리즈인만큼 늘 한 번씩 등장했던 식사신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가족이 함께 모여 담소를 나누는 식탁, 팬들이라면 모두가 기다리는 비어 있는 한 자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하는 파란색 닛산 스카이라인. 영화와 관객, 그리고 세상을 떠난 고인이 하나의 가족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폴 워커와 이별한 지 어느덧 8년이 지났지만, 그가 연기했던 브라이언 오코너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영원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끝으로 가장 고마운 서비스는 그들의 선두 본능이다. 이젠 더 이상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식상할 정도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극장가다.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즐거움을 완벽하게 경험하게 해 줄 작품입니다. 우리는 거대한 스크린이 선사하는 힘을 믿습니다. 극장의 힘을 믿습니다. 우리가 모두 함께 즐기고, 함께 웃고, 함께 환호하는 극장의 힘을 믿습니다” - 베로니카 콴 반덴버그 유니버설 픽처스 인터네셔널 회장

많은 블록버스터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이때, 그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Ride or Die(달리거나, 죽거나)"라며 니트로 부스터와 함께 액샐레이터를 거칠게 밟을 영웅들이 등장했다. 관객들 역시 팬데믹 이후 최고 사전예매량(20만 장, 개봉 전날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시동을 걸었고, 개봉 첫날 40만 명이 관람 레이스를 마쳤다. 영화를 향한 오랜 기다림에 따른 갈증은 이미 ‘얼티메이트(극치)’를 넘어섰다. 이제 ‘분노의 질주’가 시작될 때다.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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