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항쟁을 마주하는 오늘의 대중문화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1.05.1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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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청춘' 스틸컷, 사진제공=KBS2'오월의 청춘' 스틸컷, 사진제공=KBS2


1980년 5월의 광주는 한동안 금기의 영역이었다. 말할 수 없었고, 말해서는 안 될 감춰진 역사였다. 32년 전 오늘(18일), 광주 일원에서 군부에 의한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학살이라고도 불렸던 이날의 참상은 오늘날에 이르러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 불린다.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김태영 감독은 장편과 단편 영화를 엮어 1989년 '황무지 : 5월의 고해'를 만들었다. 원치 않는 진압작전에 투입된 계엄군의 고뇌를 다룬 '황무지 : 5월의 고해'는 5.18을 다룬 첫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당시 군사정부로부터 상영불가 통보를 받았고, 그렇게 대중의 기억 속에서 흐려져 갔다.

그날로부터 16년이 지난 1996년 또 한 영화가 개봉했다. 당시 광주의 공포의 순간을 한 소녀의 눈으로 담아낸 영화 '꽃잎'이다. '꽃잎'은 5.18을 본격적으로 다룬 대중영화의 시작이었다. 이후 진압군의 눈으로 광주를 바라본 '박하사탕'과 시민군 최후의 순간을 담아낸 '화려한 휴가'를 비롯해 '26년', '택시운전사', '김군' 등 그날을 기억하고자 하는 미디어 속 움직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들의 이름으로' 스틸컷, 사진제공=엣나인필름'아들의 이름으로' 스틸컷,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이는 영화를 넘어 TV 드라마, 예능, 무대 등 수많은 대중문화로 이어졌다. 대중문화는 단순히 그날의 참상을 담아내는 것을 넘어 다양한 배경과 설정 속에 5.18을 녹이고 있다. '화려한 휴가'와 같이 당시 투쟁하던 광주 시민의 눈에서 외지인의 시선을 담아낸 '택시운전사' 등 시선의 사유를 넓히며 소재의 쓰임을 다양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2012년 오늘의 대중문화 속 5.18은 어떨까. 각 부문을 대표할 수 있는 따끈따끈한 작품은 3개다. 바로 드라마 KBS2 월화 드라마 '오월의 청춘',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 뮤지컬 '광주'다.

'오월의 청춘'은 휴먼 멜로드라마다. 5.18 민주항쟁 속 매 순간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했던 당시 청춘들의 사랑이야기를 담는다. 중심은 멜로이나, 갈등의 축으로 5.18 민주항쟁의 전면을 그릴 예정이다. 드라마는 아직 극 초반이기에 5.18 민주항쟁의 참상이 그려지지는 않았다. 그저 등장인물의 배경이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예상하게 하는 몇몇 장면들을 비출 뿐이다. 보안부대 대공수사과 과장이 아버지인 황희태(이도현)나, 광주 유지의 딸이지만 학생운동을 벌이다 급히 도망가기 일쑤인 이수련(금새록) 등의 설정 등이 그렇다. 드라마는 황희태의 아버지인 황기남(오만석)을 악역으로 설정하며 보안부대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을 꿰뚫는다. 드라마는 너무 시끄럽지 않게 5.18을 녹여내며 당시에 스며들게 한다. 멜로드라마라는 특성 상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부담감없이 드라마 속 배경에 몰입하게 한다. 노골적이지 않은 은은함이 깃든 작품이다. 하지만 전개 상 민주항쟁이 극의 절정에 등장할 대목임은 분명하기에 시선 속 관철이 필요한 작품이다.

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아들의 이름으로'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잊지 못하고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던 오채근(안성기)이 소중한 아들 대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성 없이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는다는 이야기를 담는다. 채근은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그려진다. 영화는 그가 가해자로서 느끼는 죄책감, 피해자로서의 절망감, 그리고 5월 광주 시민들에 대한 미안함과 경의를 담아냈다. 당시의 참상을 단순히 재연하는 것이 아닌, 이후의 삶을 그려내며 보다 생각할 거리를 남긴 것이다. 채근이라는 인물의 지독한 자기 성찰을 통해 피해자들의 마음 속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모습이다. 그리고 영화는 말한다. 그날의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그 어떤 것보다 잘못에 대한 인정과 반성이라고. 특히 메가폰을 든 이정국 감독은 과거에도 5.18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이력이 있다. 이 감독이 1991년 '부활의 노래'를 통해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면, '아들의 이름으로'를 통해선 흐른 세월만큼 남겨진 이들로 시선을 옮겨 또 다른 시사점을 남긴다.

뮤지컬 '광주' 한 장면, 사진제공=라이브, 극공작소 마방진뮤지컬 '광주' 한 장면, 사진제공=라이브, 극공작소 마방진
지난 16일 재연을 마친 뮤지컬 ‘광주’는 5·18 민주화운동 강경 진압의 빌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시민군에 침투시킨 ‘편의대’ 대원 박한수의 시선으로 그려졌다. 편의대는 당시 시민군 내부에 잠입해 이중 작전을 벌였던 특수부대다. ‘광주’는 제3자인 편의대원의 또 다른 시선을 통해 당시의 참상을 그려냈다. 광주 시민들이 폭도라는 확신을 갖고 있던 박한수가 점차 드러나는 진실 앞에 신념이 흔들리고, 자신의 과오를 통렬하게 반성하며 고뇌하는 과정을 그린다. 박한수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관객들은 1980년 5월 18일 역사적인 현장 한가운데 서있게 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날의 참상을 여러 시선을 통해 보여주는 '광주'는 다른 대중문화보다 역동적으로 당시를 재현하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감상을 선사한다. 무대가 주는 생동감을 극대화한 스토리로 5.18을 기린다. '광주'의 여정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2022년 4월 15일 서울에서 개막해 다시 한번 전국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렇듯 여러 대중문화 속에서 5.18민주항쟁은 끊임없이 재현되며 잊지 말아야 할 하나의 역사로 자리잡았다. 한때 5.18민주항쟁은 영화 '해리포터' 속 볼드모트처럼 입밖으로 내서는 안 될 사건이었다. 하지만 대중문화는 여러 시도와 도전적 발로를 통해 5.18민주항쟁을 반복해서 그리며 '마땅히 이야기할 사건'으로 탈바꿈시켰다. 이게 바로 대중문화의 순기능이다. 세월 속에 작품의 모습은 다양성을 띠고 있지만, 주제의 무거움은 한결같이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한수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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