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안 갈래요"…글로벌 기업 임원 놀라게 한 그 '法'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김성은 기자 2021.05.18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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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중대재해법 포비아 (上)

편집자주 내년 1월 시행되는 중대재해법 시행령 입법예고가 임박하면서 일선 기업들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인신 구속 가능성 등 과도한 처벌에 대한 부담으로 대표직 제안을 거절하는 사례가 나오는 등 산업 생태계 전반에 후유증이 예상된다. 시행령 제정을 앞두고 기업의 우려가 확산되는 배경과 바람직한 시행령 제정 방향, 보완 입법 필요성 등을 점검해본다.

"중대재해법 시행 한국은 안가요" 외국인 임원들도 손사래
"한국엔 안 갈래요"…글로벌 기업 임원 놀라게 한 그 '法'


#.한국에 여러곳의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글로벌 소재 A그룹. 그룹 내에서도 유망 근무처이던 A그룹 한국법인은 내년부터 법인장이 공석이 될 판이다. 현 대표의 임기가 연말까지인데 본사에서 연임을 부탁하는데도 임기 종료를 결정했다. 만 50대 후반 한창 나이인데다 실적도 좋았던 대표다. 본인이 강력히 고사하자 본사가 사내에서 후임을 물색중인데 모두 손사래를 쳤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이다. 회사 한 관계자는 "여차하면 감옥에 갈 수 있는 자리라고 본사 임원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하더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화학기업 B사 한국법인 관계자는 얼마 전 아시아헤드쿼터에서 열린 '지역 내 리스크 공유 회의'에 참석했다가 깜짝 놀랐다. 한국의 중대재해처벌법이 리스크와 임팩트 랭크에서 최고 등급인 '하이-하이(high-high)'로 분류돼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이-하이 등급 이슈는 '미-중 무역갈등'과 '탄소중립 기후변화' 등 범 세계적 이슈들이었다. 이 관계자는 "제대로 소명할 절차 없이 CEO를 곧바로 구속시키는 법이 제정됐다는 것 만으로도 한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보는 시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안정적 실적을 자랑하는 국내 중견기업 C사 관계자는 최근 설비를 공급받고 있는 미국 거래처 D사의 연락을 받고 진땀을 뺐다. D사 미국인 임원이 전화를 걸어 "C사에 설비를 공급한 후에 유지보수 인력을 파견해야 하는데, 이들 중에서 만약 인명사고가 나면 우리도 중대재해법으로 처벌 받게 되는 것 아니냐"고 문의한 것이다. C사 관계자는 "당연히 미국에 있는 D사 CEO를 처벌하진 않을 듯 했지만 법 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공개된 내용들도 모호해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 했다"며 "전화를 끊으면서 '앞으로 비슷한 조건으로 일본이나 중국 경쟁사들도 설비를 발주하면 우리보단 그쪽을 먼저 검토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산업현장 인명피해를 막고 기업의 안전제도 도입을 장려하자는 취지로 제정된 중대재해법. 국내외 기업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법 제정과 과도한 처벌 규정으로 시행 이전부터 국내외 경영 현장의 심각한 우려를 사고 있다. 정부의 시행령 제정 등의 과정을 통해 법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고, 내년 1월 시행에 앞서 과도한 처벌 규정 등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들쳐업고 뛰어야 하는데, 사진부터 찍어야 하나요" 말문 막힌 현장

17일 관련 업계와 정부주처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의 핵심은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CEO(최고경영자)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지운다는 것이다. 법에 따라 1년 이상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중대사고=CEO처벌'의 등식이다.


현장 사고를 막자는 취지에 공감하지 않을 기업은 없다. 다만 처벌규정이 과도하다는 지적은 법 예고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한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얼마 전 안전부문 팀장회의에서 '이제는 추락사고가 발생하면 다친 동료를 들쳐업고 뛰는 대신 안전로프는 제대로 착용했는지, 현장에 난간은 있었는지를 먼저 촬영해야 하는거냐'는 질문을 듣고 한동안 말을 잊어야 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 경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A사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은 단순히 한국에서만 활동하는게 아니라 세계 전 지역에서 수주와 공급을 전담하고 있다"며 "글로벌 스탠다드를 전혀 감안하지 않은 법 제정은 해외 시장에 한국의 기업문화가 경직돼 있다는 시그널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사 관계자는 "물론 미중 무역분쟁의 경우 중국 등 해당국가에서 가장 큰 이슈여서 '하이-하이 등급'을 받은 것일 뿐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긴 어렵다"면서도 "한국의 법 하나가 그런 글로벌 초대형 이슈들과 함께 언급된다는 것 만으로도 이번 법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시선이 어떤지를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대안 마련에 분주.."안전의 외주화 장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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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을 찾아야 하는 기업들은 속속 고육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법적 갈등의 원인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 3월 최고안전환경책임자(CSEO) 신설을 발표했다. 선제적인 중대재해법 대응 방안이다. 안전 관련 권한은 최고경영자(CEO) 수준으로 행사하며 전사 안전 영역을 콘트롤한다. 작업이나 생산시설 가동을 중지시키는 원한도 갖고 있다.

하지만 대표이사급 CSEO가 어디까지 처벌을 받을 수 있느냐에 대해 다시 의문을 표한다. 대표이사 수준으로 처벌을 받는다면 '대리처벌'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역시 법·시행령에서 명확하게 영역이 구분돼야 할 문제다.

지나치게 처벌에 집중하다보니 중대재해법이 안전관리의 전문성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CEO를 압박할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기업 안전관리를 할 수 있는 별도 기관을 만들고, 이들을 통해 투명하게 기업 현장의 안전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문성있는 기관에 맡기고 기업은 비용을 지불하는 '안전의 외주화'다.

CEO는 기본적으로 수익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해가 상충하는 수익성과 안전투자를 한 사람에게 맡기는게 오히려 효율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곽수근 서울대 명예교수는 "CEO를 감옥에 보내면, 재해를 줄이자는 목적이 달성이 되느냐"며 "위험에 대한 감시는 위험요소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가로 구성된 기관에 맡기고, 이에 대한 합리적 비용을 지불하며, 이 비용은 납품단가에 반영해 원청과 하청, 소비자들이 돈을 더 지불하는 방향으로 가는게 글로벌 트렌드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우경희 기자

기준·정의 애매해…산재예방 공감해도 두려운 중대재해법

"한국엔 안 갈래요"…글로벌 기업 임원 놀라게 한 그 '法'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기업계도 물론 공감한다. 다만 당장 내년부터 시행될 법안에 판단이 모호한 부분들이 있다보니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가 없다. 특히 안전보건 체계가 미비한 중소기업일수록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 크다."

한 재계 관계자가 올 해 1월 제정돼 시행령 입법예고를 앞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당장 50인 이상 사업장은 내년 1월27일부터 법이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에 불명확한 규정들에 대해서는 보완입법이 어렵다면, 시행령으로라도 명확한 적시가 필요하단 것이 업계 목소리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형사책임을 강화한 것이 골자다. 예를 들어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사망자가 발생했을 시 책임자에 대해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이 매겨지는데 비해 중대재해처벌법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이 매겨진다.

재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벌 수위가 더 높은 만큼 그 기준이나 규정이 보다 명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두고 지난 4월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다섯 개 단체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 건의서를 관계부처에 제출했다. 입법예고 전에 의견을 반영해달란 취지다.

재계 단체가 모호함을 지적한 것 중 대표적인 것은 경영책임자 등에 대한 정의다. 중대재해처벌법 제 2조에 따르면 경영책임자는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이에 대해 한 재계 단체 관계자는 "어떤 경우에 전자가 처벌대상이 되는 건지, 후자가 처벌대상이 되는 건지 알 수 없다"며 "한 법인 내에서도 명백하게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사업부가 여럿 있다면 과연 누구를 책임있는 사람으로 봐야할지도 현실적 문제"라고 꼬집었다.

중대재해에 대한 정의도 불확실하다는 지적이다. 법률에서는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이 중 중대산업재해란 산업안전보건법상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 중 한 가지를 야기한 재해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 결함을 원인으로 발행한 재해다.

재계 측은 "중대산업재해에서 급성중독 직업성 질병의 중증도의 기준이 없다면 중대산업재해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중대시민재해의 '특정 원료'도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중증도 기준 관련, 6개월 이상 치료 필요를 한정하면서 개인적 요인이 질병 발생에 관여할 수 있는 만성질환(뇌심혈관계질환 등)은 제외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울러 재해 발생시 책임을 가리기 위한 원하청간 구분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단 제언이다. 현재 법률에 따르면 사업주 등이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한 경우라 할지라도 만일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해당 사업주가 안전 및 보건확보 의무를 져야 한다.

이 중 무엇이 '실질적 책임'이냐를 두고 추후 해석의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시행령에서 이를 보다 세심하게 부연해야 한다는 제언들이 잇따랐다.

전승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산업안전팀장은 "노사간 충분한 의견 청취와 수렴이 필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법률이 너무 성급하게 제정되다 보니 법 시행을 반 년 여 남겨두고서야 여기 저기서 불명확한 문제들이 나오고 있다"며 "기업들로서는 이를 숙지하고 준비하기에 현실적으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 50인 미만의 사업장 뿐만 아니라, 그 이외 업계도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다른 재계 관계자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적용이 2년 유예 됐다고 하지만 60인, 또는 70인 사업장이라고 해서 안전대책이 더 잘 마련된 것은 아니다"라며 "당장 중소기업들이 느끼는 불안과 불만이 크기 때문에 현실을 감안해 속도 조절,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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