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탁의 성공 변론] IQ 68 지적장애 피고인을 위한 국선 변론

머니투데이 중기&창업팀 허남이 기자 2021.05.1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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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탁의 성공 변론 '형사' 편을 시작한다. 필자는 사선 변호도 하지만 벌써 횟수로 7년째 국선변호인을 봉사로 하고 있다. 사선변호인이라면 만날 수 없는 의뢰인, 정확히는 나라에서 변호해달라고 지정해준 피고인을 처음 만난 곳은 구치소였다.

초점을 잃은 눈, 어눌한 말투의 피고인은 횡설수설 알아 듣기 힘든 말들을 하더니 급기야 변호인 접견 중 괴성을 지르며 뛰쳐 나갔다. 피고인의 죄명은 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방해, 공용물 파손. 남의 차 밑에 들어가 나오지 않아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이 피고인을 차 밑에서 끌어내자 저항하며 경찰을 물었고, 유치장에 감금되자 유치장 변기를 뜯고 변기의 물로 몸을 씻었다. 이미 몇 차례 징역형을 살고 교도소를 나오고 다시 들어가고를 반복한 누범이었다.



괴성을 지르며 뛰쳐나간 피고인과 마인드 헌터
보통의 변호사라면 사임했을 것이다. 필자 역시 변호인에게 괴성을 지르며 뛰쳐나간 피고인을 변론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때 형사변호인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형법 제10조 제1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2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는 '심신장애의 무죄'와 '심신미약의 감형'이 떠올랐다.

교도관에게 통사정해 피고인을 다시 접견실로 데려왔다. 다행히 당시 즐겨보던 미국 드라마 '마인드 헌터'가 큰 도움이 됐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들어라. 피고인의 말을 어린이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마음을 열고 들어보니 피고인은 '누군가 자기를 해치려 한다'는 피해망상이 있었고 정신질환이 의심되었다. 피고인과 생활해야 하는 교도관들은 당연히 알고, 만나서 얘기해 본 사람들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피고인은 '처벌'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누가 보아도 정신질환이 있는 피고인에게 수사기관과 그동안의 국선 변호인, 그 누구도 정신감정 신청을 한 적이 없었다. 피고인은 이 사건 직전에도 실형으로 감옥에 갔고, 출소하면 같은 범죄를 저질러 또 징역을 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다. 피고인의 형편에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었을 것이고 변호사 선배, 동료들에게 문의하니 나라에서 변호당 최소금액을 받는 국선변호인은 거의 당연하고, 나라에서 월급을 받는 국선 '전담' 변호사조차도 이런 피고인에 대해 정신감정을 신청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고 했다.

필자는 변론에서 재판장에게 피고인의 행위가 녹화된 CCTV 기록 등 증거를 통해 범행의 기괴성 및 피고인과 여러 차례 접견을 한 결과에 근거하여 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을 신청하였다. 다행히 재판장님은 필자의 정신감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번에는 피고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신감정을 안 받겠다며 난동을 피웠다. 다행히 피고인과 라포(rapport)가 형성된 필자가 법원과 구치소에서 급히 연락을 받고 출석해 피고인을 어르고 달래서 피고인은 겨우 정신감정을 받을 수 있었다.

피고인의 정신감정 결과와 최후 변론, 새로운 판결
문종탁 대표 변호사/사진제공=법률사무소 JT문종탁 대표 변호사/사진제공=법률사무소 JT


정신감정 결과 피고인은 IQ68로 지적장애가 있으며, 정신질환도 의심되었다. 필자는 변론을 통해 '피고인은 심신상실로 무죄지만 치료감호가 필요하므로 검사가 치료감호신청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치료감호신청을 거부하고 끝내 피고인에게 2년 실형을 구형했다.


검사의 판단은 누범으로 구속된 피고인에 대한 일반적인 구형이었으나, IQ 68로 지적장애가 있으며, 정신질환도 의심된다는 정신감정 결과가 나온 피고인에게 나온 구형으로는 씁쓸했다. 재판장인 판사는 피고인을 구치소가 아닌 사회에서 치료를 받게 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금까지 수차례 동일 범죄로 감옥을 다녀온 이 지적장애 피고인에게 검사는 경찰 기소의견에 따라 피고인을 기소하고 실형을 구형했을 것이고 변호인은 죄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며 반성 변론을 하고, 법원은 1회 공판으로 변론을 종결하고 판결하였을 것이다. 피고인은 그런 식 재판으로 이미 수년간 감방에서 치료가 아닌 반복된 처벌을 받아왔다. 대화를 해보고 지켜보면 누가 보아도 '처벌'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사람을 경찰도 검찰도 변호인도 재판장도 거르지 않았던 것이다.

검사는 특이한 변호인의 치료감호 요청을 무시했다. 다행히 재판장이 특이한 변호인의 정신감정 신청을 받아주었다. 수많은 기록과 재판 중에 형사법 최고원칙을 지킨 재판장에게 존경을 보낸다. 그 결과 피고인은 합당한 처벌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국선변호인을 하는 이유와 제대로 된 국선 변호를 위해 필요한 일
최소 비용의 선임료에 소위 진상 피고인들을 만나면 '그만할까' 하다가도 '사선변호인만 했다면 이런 지적장애의 피고인을 만날 수 있을까, 이런 판결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올해도 사선을 주로 하지만 봉사로 국선변호인을 하고 있다.

피고인은 자기 책임에 따라 자신의 비용으로 사선변호인을 선임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법원은 이번 피고인처럼 정말로 국선변호인이 필요한 힘들고 억울한 피고인에게 국선변호인의 제대로 된 조력을 받을 기회를 주고,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는 피고인에게는 국선변호인 신청을 불허하여야, 국선변호인의 보수도 현실화하고 국선변호인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글 문종탁 법률사무소 JT(Justice & Truth)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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