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릉특구 바이오·딥테크 성지로 변신···KIST홀딩스 설립도 추진"

머니투데이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2021.05.17 05:30
글자크기

[머투초대석]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 ""국내 첫 연구단지 홍릉, 한국형 기술창업 이끌 것"

"홍릉특구 바이오·딥테크 성지로 변신···KIST홀딩스 설립도 추진"


"홍릉의 새로운 50년은 한국형 기술창업 생태계 조성에 달렸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은 "1966년 KIST 설립과 함께 조성된 국내 최초의 연구단지이자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산실인 홍릉이 이제 딥테크(Deep-tech) 스타트업의 성지로 변모해 갈 것"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이어 "서울시 최초로 강소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된 홍릉을 바이오 창업기업의 메카로 육성하겠다"고 덧붙였다.

KIST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의 맏형'으로 불린다. KIST의 변화는 곧 나머지 24개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의 변화를 이끌 자극제이자 중대한 축이 된다. 이곳 수장인 윤 원장은 '미래를 오늘로 만드는 연구소 그랜드(GRaND) KIST'라는 새 비전을 내걸었다. 그 미래라는 청사진엔 핵심 가치 중 하나가 '기술창업'이다. 윤 원장은 "최근 들어 실로 오랜만에 벤처붐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면서 "혁신 기술창업의 기운을 보다 혁명적인 변화로 이끌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을 이뤄겠다"고 강조했다.



윤 원장은 이런 구상을 현실화할 밑그림을 하나씩 완성해 가고 있다. 연구소 기술 이전과 창업 활성화를 위한 '오디션형 창업학교'(GRaND-K), '키스트(KIST) 홀딩스' 설립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창업학교는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 중에선 처음 시도된 것이라서 관심을 모은다. 기술창업을 희망하는 예비창업자 또는 3년 이내 초기창업자를 대상으로 공통창업교육을 실시하고, 국내 최초의 오디션형 창업경진대회를 개최해 창업팀의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윤 원장은 "홍릉강소특구가 생겨 처음 시작하는 창업아카데미라는 부담과 함께 최종 12개팀을 선별하려 했는데 덜렁 10개 팀만 신청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최종적으로 133개팀이 지원해 '대박'을 터뜨렸다"고 했다.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구 홍릉에 위치한 KIST에서 윤 원장을 만나 기술창업에 대한 소신과 홍릉 특구 육성 전략 등을 들어봤다. 윤 원장은 이 자리에서 홍릉특구를 코로나19(COVID-19) 백신 모더나를 배출한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 스타트업 지원 기관 '랩센트럴'과 같이 키우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홍릉특구 바이오·딥테크 성지로 변신···KIST홀딩스 설립도 추진"
-'제2 벤처붐' 열기가 뜨겁습니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지난해 KIST의 연구실 창업은 7개로 예년보다 대폭 늘었습니다. 올 상반기에만 4개 창업팀이 심의·허가를 받았습니다. 지난 2000년 DJ 정권 때, 그러니까 제1 벤처붐이 일 때 1년에 7~8개 정도 나왔는데 그때와 비슷합니다. 기술이전보다는 자신이 직접 창업하겠다며 뛰어드는 연구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연구원 창업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KIST만의 지원책이 있습니까.


▶제가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근무하다 KIST(당시 부원장)에 들어와 보니 원내 창업을 신청하면 3년간 KIST 직원으로, 연봉의 60%만 받으면서 창업 준비를 하다가 기간이 다되면 나가야 한다는 '퇴직 조건부 3년 허용'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건 잘못됐다고 생각했죠. 그때 만났던 VC(벤처캐피털)들도 창업 성공 여부 가능성을 판단하기에 3년은 너무 짧고, 최소 6년은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무자들과 얘기해 보니 3년이란 법적 근거도 없었습니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제도가 있다면 어떤 연구자가 안정적인 직장을 놔두고 창업하려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제도를 3년 후에 평가를 해서 연구원으로 다시 돌아오거나, 성공 가능성이 있다면 3년 더 연장해 기술 사업화를 더 체계적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준비기간을 최소 6년은 주도록 개선했습니다. 추가 3년 동안에는 인건비를 안 주는 대신 기술을 사업화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브릿지 프로젝트(Bridge Project)' 사업을 연계해 줍니다. 이를 통해 TRL(Technical Readness Level·기술성숙도)이 현재 4~5단계(실험·시제품)라면 7~8 단계(실용화·사업화)까지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지금의 벤처붐 열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업은 벤처붐이 일든 안 일든 관계없이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겁니다. 우리는 홍릉펀드가 있고 제2,3의 펀드도 만들 겁니다. 수출입은행에선 모태펀드를 낼 용의도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KIST 기술 중심 창업은 수출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해 기존 한국기술벤처재단을 'KIST 홀딩스'로 발전시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신기술창업 활성화를 위해 KIST가 20년 전 전액 출자해 세운 창업보육 전문 재단입니다. KIST 홀딩스로 업그레이드 해 홍릉강소특구를 창업에 산실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실행 매뉴얼을 마련 중입니다. 내년쯤 가시화될 겁니다. 홍릉에서 창업이 일어나게 하면서 우리가 스스로 키워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겁니다.

-최근 KIST 오디션형 창업학교(GRaND-K)에 지원팀이 많아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들었습니다.

▶보도는 122개로 나갔는데 정확하게 종합하면 133개 팀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창업학교는 그냥 대학에서 이뤄지는 일반적인 창업교육과는 다릅니다. 총 4라운드로 진행되는 경연식 프로그램으로 실제 투자가 가능한 VC, 엑셀러레이터(AC)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각 라운드별 주제에 맞춰 컨설팅을 수행합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최종 입상하는 창업팀은 멘토로 참여했던 요즈마그룹 등 11개 투자기관과 연계할 예정입니다.

"홍릉특구 바이오·딥테크 성지로 변신···KIST홀딩스 설립도 추진"
-KIST 뿐만 아니라 외부 예비창업자들의 신청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신청한 지원팀의 소속기관은 KIST 23개, 고려대 15개, 경희대 14개, 기타 90개 등입니다. 고무적인 건 창업학교가 연구원, 학생, 교수 등 다양한 연령층에서 관심을 받았다는 겁니다. 홍릉강소특구를 준비하면서 KIST·고려대·경희대가 보유한 367개 기술에 대한 사업화 분석을 완료했습니다. 창업학교와 외부에서 이 기술을 창업하는데 쓰도록 라이선스 비용을 내는 조건으로 모두 개방할 겁니다.

-특허를 엄선해 외부에 개방하는 건 국내 VC들에겐 희소식인 것 같습니다.

▶기술을 개방하면 VC와 같은 창업생태계 핵심 조력자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컴퍼니빌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큰 시너지 효과가 날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홍릉강소특구를 세계적 바이오 클러스터로 키우겠다고 하셨는 데 대안이 있습니까.

▶홍릉은 KIST와 함께 고려대와 경희대, 서울대 등 우수한 연구인재 및 기술을 확보하고, 무엇보다 연구가 가능한 대학 임상병원이란 점이 차별점입니다. 바이오 스타트업 지원 플랫폼인 '서울바이오허브' 등도 인접해 있습니다. KIST 뇌과학연구소 연구원만 약 70명, 바이오·메디컬 분야도 100명이 넘습니다. KIST 전체 연구원이 650명 정도 되니 비중으로 따지면 3분의 1 이상일 정도로 바이오 R&D(연구·개발) 경쟁력이 매우 높습니다.

정부에서 최근 '케이 바이오랩센트럴' 구축 대상지 선정 공모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후문 쪽에 큰 건물을 지어 올릴 수 있는 부지까지 갖추고 있어 당초 예정된 투입 비용의 절반만으로도 K-바이오랩센트럴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와 주관부처인 중기부가 이런 점들을 함께 고려해 주면 좋겠습니다.



개방·융합형 연구문화 초석 놓은 '토종 과학자'

부제 : [머투초대석]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홍릉특구 바이오·딥테크 성지로 변신···KIST홀딩스 설립도 추진"
"깨야 한다.", "바꿔야 한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이 회의 석상에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의 지난 30여 년, 과학자이자 과학계 리더의 삶을 압축하면 '기존 관행을 벗어나 새로움을 탐색해온 과감한 도전의 여정'이라고 할만하다.

윤 원장의 최대 과업 중 하나를 꼽으라면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본부장 시절, 연간 100억 원대 연구비를 지원하는 융합연구단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국내 이종 학문 간 융합연구의 초석을 다진 것이다.

융합연구단은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대학, 기업연구소 간 칸막이를 해소해 국민 삶의 질 향상과 신성장 동력 창출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마련됐다. 각기 다른 소속의 연구자가 한 장소에 결집해 연구하고 종료 후에는 원소속기관으로 복귀하는 일몰형 연구조직이란 특징을 갖췄다.

윤 원장은 "말로만 하는 융합연구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새롭고 실질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치매 조기예측 및 치료제 개발, 스마트팜 상용화 통합솔루션 기술 개발 등 20여 개 융합연구단이 출범했으며, 각종 커다란 성과도 일궜다. 최근 한국화학연구원 CEVI(신종 바이러스) 융합연구단은 코로나19(COVID-19) 백신·치료제·진단 원천기술을 국내 바이오 기업에 이전했다.

앞서 윤 원장은 폐쇄적인 연구조직을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으로 체질 전환하는 데 일조했다. 그는 KIST 대형 연구과제비의 절반을 대학 및 다른 연구소에 배분하고, 연구단장 자리를 외부인에게 개방하는 ORP(개방형 융합연구 프로그램)를 도입했다.

당시 연구비를 한 푼이라도 더 타내려고 연구기관끼리 경쟁하던 때에 연구단장직까지 외부에 넘기는 그의 정책은 파격 그 자체였다. 내부 반발이 거셌지만 최우수 학회지에 연구성과가 잇단 게재되자 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외부와의 연구협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융합연구단도 이 모델에서 비롯됐다.

윤 원장은 국내에서 학사부터 박사학위 과정을 모두 이수한 '토종 과학자'이자 역대 KIST 원장 중 비(非)서울대 출신으로 눈길을 끈다. 그를 잘 아는 과기계 한 지인은 "해외 저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온 연구자들에게 뒤진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억척스럽게 연구에만 몰입했다"고 회상했다.

약력
△1959년생 △연세대 전기공학과(학사)·전기재료(석사)·전기공학(박사) △펜실베니아 주립대 박사후 연구과정 △KIST 박막재료연구센터장·재료·소자본부장·미래융합기술연구본부장·연구기획조정본부장·부원장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융합연구본부장 △한국전기전자재료학회장 △한국센서학회장 △홍릉클러스터링 추진위원회 위원장 △국가기술수준평가 위원회 위원장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