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방역 모범국' 대만…반도체 기근 더 길어지나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2021.05.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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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방역 모범국'으로 꼽혔던 대만에서 최근 일 신규 코로나19(COVID-19) 확진자가 세 자릿수까지 급증했다. 신규 확진자가 급격히 늘면서 정부가 방역 조치를 강화하자 불안한 시민들은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확산세가 이어질 경우 대만 경제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지역사회 감염 확산하는 대만, 라면·화장지 사재기
최근 대만에서 코로나19 지역감염이 확산하면서 불안한 시민들이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15일 대만 타이베이의 한 상점 매대가 사재기로 인해 텅 비어있는 모습./사진=로이터 최근 대만에서 코로나19 지역감염이 확산하면서 불안한 시민들이 생필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15일 대만 타이베이의 한 상점 매대가 사재기로 인해 텅 비어있는 모습./사진=로이터


16일 대만 중앙유행병지휘센터(CECC)는 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207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역 감염이 206명, 해외 유입이 1명이다. 타이베이와 신베이시에서 각각 97명과 89명이 감염됐다. 전날 일 확진자 수가 180명으로 사상 첫 세자릿수를 기록한데 이어 하루 만에 역대 최다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코로나19 조기 방역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대만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1년여간 누적 확진자 10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한 주간 지역사회 감염이 급증세다.

이번 주 초만 해도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일일 확진자 수는 지난 13일 34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이후 이틀 만에 5배 넘게 폭증했다. 주요 감염지로는 대만 북동부 이란현 성인 오락장과 라이온스클럽, 타이베이 완화구 찻집 등이 지목됐다.



감염자가 급격히 늘어난 수도 타이베이와 인근에 있는 신베이 두 곳에는 15일부터 3단계의 경계 단계가 적용됐다. 3단계가 되면 야외에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며 모임 인원은 실내 5명, 실내 10명으로 제한된다. 영화관, 박물관, 실내 수영장, 놀이공원 등은 폐쇄되고 종교 활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조치는 오는 28일까지 2주간 유지된다.

지난 11일 대만 방역당국이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 조치를 강화하는 비상 체제를 가동하고 코로나 경계 단계를 4단계 중 가장 낮은 1단계에서 2단계로 격상했음에도 감염경로가 불명확한 감염 사례가 급증한 것이다.

대만은 그간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세가 심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신 접종률도 낮은 편이다. 14일까지 1차 접종을 마친 사람은 18만6000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0.8% 수준이다.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하자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봉쇄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불안 심리가 커지면서 슈퍼마켓과 대형 마트 등에서는 사재기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대만 현지 매체 타이완뉴스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코로나 경계 단계가 상향될 것이라는 전망에 두려움을 느낀 대만 소비자들은 슈퍼마켓 등 오프라인 상점과 전자 상거래 사이트에서 생필품을 사들이고 있다. 이들이 화장지, 항균 세탁 세제, 소독제, 수술용 마스크, 육류, 농산물, 라면 등을 사재기하면서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는 매장 내 선반이 비거나 사람들이 계산을 위해 줄 서 있는 사진들이 올라왔다.

대만 당국은 사재기 심리 확산 차단에 나서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1년여 기간 동안 충분한 준비를 걸쳐 마스크, 소독제 등 방역 물자는 충분히 준비돼 있다. 화장지, 라면 등 민생물자도 충분하다. 사재기로 인해 군집도가 높아질 수 있는데, 이런 위험을 키울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대만 경제부 역시 물품이 충분히 구비돼 있다며 시민들에게 침착함을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경제부는 "마스크의 경우 재고량은 8억5000개를 넘어섰으며, 현재 전국에서 하루 4000만개의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다. 또 대만은 매일 8만 상자의 화장지를 생산한다"고 설명했다.

대만 경제, 코로나에 흔들리나…"반도체 부족 사태 심화" 우려도
15일 대만 타이베이의 한 야시장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라'는 안내문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로이터15일 대만 타이베이의 한 야시장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라'는 안내문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로이터
전문가들은 대만이 빠르게 늘고 있는 확산세를 조기에 차단하지 못할 경우 경제 내수 위축과 공장 폐쇄에 따른 생산 타격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만은 성공적인 방역과 반도체 등의 수출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2.9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이런 우려가 현실화할 때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인 4.46% 달성에는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토니 푸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최악의 경우 확진자 증가세가 지속해 감염경로가 불명확한 감염이 늘고, 대만 북부 지역 외로 확산해 공장이 폐쇄되거나 생산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면 이는 올해 대만 경제에 이중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까지는 확진자 증가세가 소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며 "하지만 증가세가 한 달 이상 이어지고 남부 제조업 중심지로 코로나19가 확산할 경우 소비에 타격을 주고 반도체 기업을 비롯한 기술기업의 생산 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하면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사태가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만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를 보유한 반도체 생산 중심국가다.

싱가포르 DBS은행의 마 톄잉 이코노미스트도 대만의 강화된 방역 조치와 증시 하락이 대만의 2분기 국내 소비 전망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SCMP는 대만 증시 자취엔지수가 지난 10일 이후 8.17% 하락한 게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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