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규모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이 앞으로 10년 동안 쏟아붓기로 한 '510조원+α'는 역대 최대다. 연간 투자액이 50조원을 훌쩍 넘는다. 삼성전자 (75,500원 ▼600 -0.79%)가 '반도체 비전 2030'을 달성하기 위해 당초 예정했던 목표(133조원)에서 38조원을 늘려 17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 (171,000원 ▼600 -0.35%)는 이천·청주 공장에 2030년까지 110조원을, 2025년 완공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별도로 12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정부는 파격적인 세제·금융 지원, 규제 완화 등으로 민간을 뒷받침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 준비된 미래, 반도체 강국' 행사에서 "반도체 산업은 기업간 경쟁을 넘어 국가간 경쟁의 시대로 옮겨갔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인식이 드러난 대목이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패권경쟁을 지켜보면서 더 늦으면 큰일 나겠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세계대전 수준의 기술경쟁 국면을 맞아 우리도 출사표를 던진 셈"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때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일본 반도체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낸드플래시 원천기술을 보유한 도시바메모리가 지난해 매각됐고 엘피다는 2012년 파산했다. 대만의 프로모스, 파워칩도 급격한 시장 전환기에 버티지 못하고 역사 속에 사라졌다.
특히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점유율은 2009년 2.9%에서 2019년 3.2%로 10여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다. 1위인 미국(70%)과 감히 비교할 정도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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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기술력을 발판으로 그나마 추격에 나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조차 1위인 대만 TSMC와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추세다. TSMC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19년 1분기 48.1%에서 올해 1분기 56%로 늘었다.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19.1%에서 18%로 오히려 줄었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지만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나 시장 선두일 뿐 갈 길이 멀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이제라도 반도체 산업 지원에 힘을 보태기로 한 만큼 업계에만 맡길 게 아니라 중장기적인 산업전략 수립과 함께 추가적인 지원도 검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형준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은 십수년 전부터 전문가들이 강조하던 것"이라며 "뒤늦게 추진하는 측면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균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과거에 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할 때도 정부의 과감한 지원으로 우리가 세계 통신시장을 선도했던 선례가 있다"며 "이번 시스템반도체 육성 대책도 좋은 선례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