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1월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19 기업인과의 대화'를 마친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맨왼쪽) 등 참석 기업인들과 본관 앞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페이스북
최근 이 부회장 사면론이 재계와 종교계, 정치권에서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는 현황을 짚는 수준을 넘어 반도체 경쟁력 확보 등 사면론에서 거론하는 근거까지 직접 언급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문제에 대해서도 "국민 통합에 미치는 영향이나 사법 정의, 형평성, 국민 공감대 등을 생각하면서 판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제기했을 당시 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던 것을 돌이키면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입장에도 미묘한 변화의 기류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1년의 국정운영을 두고 사면에 대한 원칙론을 고수하기보다는 현실적 여건을 감안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고개를 든다. 취임 4주년 회견을 통해 국민 여론을 타진했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문 대통령이 사면론에 대해 입장 변화를 시사하면서도 "여러가지 형평성과 과거의 선례, 국민 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이 결코 마음대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등 신중론을 함께 제시한 것도 지지층의 반응 등을 고려한 다중 포석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요구는 재계와 종교계 곳곳에서 확산되는 추세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총협회(경총),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5단체에 이어 국내 7대 종교 지도자들의 모임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가 이 부회장의 특별사면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회견을 보면 문 대통령이 반도체 위기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 부회장 사면론에 대해서도 '검토 불가'에서 '검토 가능'으로 입장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대선이 1년도 채 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외 여건이 이 부회장 사면론의 분기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내년 초 대선을 앞두고 중도층 표심을 잡아야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행보가 주목받는 가운데 이달 말 열릴 한미정상회담과 맞물려 미국 내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증설 등 반도체 동맹론이 불거질 경우 이 부회장 사면 카드가 국면 전환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재계에서도 이 부회장 사면 요구가 다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오는 13일 국회를 방문해 박병석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를 만날 예정이다. 최 회장은 지난달 26일 경제5단체장 명의로 청와대에 제출한 이 부회장 사면 건의서에 이름을 올렸다.
이 부회장 사면을 적극적으로 촉구했던 경총의 한 인사는 "점점 치열해지는 반도체 경쟁 속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할 총수의 부재로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늦어진다면 그동안 쌓아올린 세계 1위의 지위를 하루 아침에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