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나라들, '백신 싹쓸이'하더니…이제와 돕겠다는 '씁쓸한 현실'

뉴스1 제공 2021.05.07 18:14
글자크기

美, 지재권 보호 유예안 지지로 생지옥 벗어날 희망? 답은 'NO'
넘치도록 백신 확보하고 수출금지령까지…EU는 눈치싸움 돌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드디어 빈국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악한 생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까. 답은 '어렵다'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지재권) 보호 유예안 지지에 따라 백신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빈국이나 개발도상국이 소송 위험없이 복제약과 백신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에 한발 가까워졌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미국의 결정에 힘입어 회원국들과 지재권 유예안을 논의하는 일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하지만 지재권 유예가 된다고 해서 당장의 '급한 불'을 꺼뜨릴 방법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최종적으로 유예 결정이 나려면 무려 WTO 164개 가입국의 만장일치 찬성이 있어야 하고 이후에는 백신 기술을 이전받아야 하는데다 해당 기술에 따른 생산 설비도 갖춰야 한다.

여기에 백신이 기존 백신과 같은 효능 및 안전성을 갖췄는지 검증까지 하려면 6개월이 훌쩍 넘는다.



결국 부자나라들의 '백신 싹쓸이' 속 빈국들은 그들의 선심을 바라는 '씁쓸한 현실'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재권 유예안 결정이 나더라도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 등 이른바 부자국가들은 최근 백신을 통한 코로나19 극복에 점차 가까워지는 분위기다. 미국은 지금까지 1억500만 가량이 접종을 마쳤고 한 번이라도 백신을 맞은 성인은 미국 성인의 56% 이상인 1억4700만명이다.

앞서 '취임 100일 내 2억회 접종 목표'를 달성한 바이든 대통령은 4일(이하 현지시간)에는 "독립기념일인 7월4일까지 성인의 70%가 적어도 한 번은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하고 전 국민의 절반 수준인 1억6000만명의 미국인들이 백신 접종을 마치도록 하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EU는 곧 있을 여름휴가 시즌에 관광객들을 유치할 준비를 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유럽의약품청(EMA) 승인을 받은 4개의 백신(화이자·모더나·아스트라제네카(AZ)·존슨앤드존슨(얀센)) 접종을 완료한 모든 사람들의 입국을 수용하는 안을 27개국 EU 회원국들에 제안했다.

EU는 백신 접종을 받았거나 코로나19 음성 결과를 받았다는 점 등을 인증하는 '디지털 녹색 증명서'를 이르면 내달 출시함으로써 6월부터 EU의 국경을 개방할 방침이다.

미국과 EU의 이같이 자신감 있는 행보의 배경에는 '다량의 백신 확보'가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앞서 코로나19 백신을 그야말로 '싹쓸이'했고 이는 충분한 백신을 확보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12억1000만회의 백신 구매에 이어 지난 4월 말 추가로 13억회분 백신 확보에 성공했다. EU 또한 비슷한 시기, 이미 확보한 물량과 맞먹는 화이자 백신 18억회분을 '추가 싹쓸이'했다. 이는 EU 전체 시민 4억5000만명이 2회씩 두 번 접종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 로이터=뉴스1 © News1 조소영 기자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 로이터=뉴스1 © News1 조소영 기자
양측은 자국 내에서 생산되는 백신의 수출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올해 2월 미국은 자국 내 백신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백신 생산에 들어가는 원료, 자재 등에 대해 수출을 금지해오다가 4월 말 인도의 코로나19 환자 급증이 심상치 않자 백신 원료의 인도 반출을 허가했다.

EU는 제약사들이 유럽 내에서 생산한 백신의 역외 수출 시 회원국들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허가제를 시행 중이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EU가 수출하는 백신은 '또 다른 선진국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7일 일본 공영 NHK 보도에 따르면 EU가 역외로 수출하는 약 1억7800만회분의 백신 중 40%에 이르는 7200만회분은 일본으로 향한다. 아울러 영국에 약 1850만회분, 캐나다에는 약 1840만회분이 수출된다.

미국이 인도에 백신 원료의 반출을 허가하고 그간 반대해왔던 지재권 유예안에 대해 지지로 입장을 선회한 것은 이에 비추어봤을 때 단순히 '인류애'라고만 보기에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인도의 경우, 미국이 끊임없이 견제하고 있는 중국 견제 비공식 안보협의체 '쿼드(Quad)' 회원국이다. 외교적 이해관계가 상당 부분 고려됐다는 뜻이다. 미국의 최대 위협들로 꼽히는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 백신들을 개발도상국 등에 지속적으로 지원하면서 '백신외교'를 펼쳐왔고 더구나 중국은 인도에 여러 차례 도움의 손길을 뻗어왔다.

바이든 대통령의 국제사회와의 관계 복원 슬로건인 '미국이 돌아왔다'에 맞지 않는 행보라는 안팎의 비판도 미국 정부의 행동 변화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된다.

로이드 도깃 미 하원의원(미 하원 조세무역위원회 보건소위원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백신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것은 비인도주의적이고 반외교적"이라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결단은 '생색내기'로 그칠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100개가 넘는 WTO 회원국들의 입장을 모두 '찬성'으로 만드는 일에 촉각이 곤두세워지는 등 오히려 혼란만 가중됐다는 지적이다.

특히 EU의 경우, EU 회원국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미국의 결단 다음날(6일) "EU는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유예안 논의에 기꺼이 임할 것"이라고 했지만 개별국가들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바이든발(發) EU국들 간 눈치싸움이 시작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 백신이 '국제적 인증'을 받아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현재 EMA는 중국 제약업체 시노백이 개발한 백신과 러시아에서 개발한 스푸트니크V 백신에 대한 심사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시노팜을 비롯해 중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백신인 시노백 백신까지 중국산 백신 2종을 심사 중으로 곧 긴급사용 승인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국제백신협력프로그램 코백스(COVAX)를 통해 일련의 백신들이 각국에 공급될 수 있게 된다.

코백스는 코로나19 백신을 세계 모든 국가에 충분하고 공정하게 배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 백신 공급기구다.

인도 뉴델리에 임시로 마련된 노천 화장장에서 코로나19 사망자들의 화장이 진행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인도 뉴델리에 임시로 마련된 노천 화장장에서 코로나19 사망자들의 화장이 진행되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