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필수품은 '녹색병 어른 음료'?…'술 권하는 예능'에 뿔났다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2021.05.0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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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 하나 없이 들이켜는 낮술 한 잔. 아침 식사는 맥주"

지난 2일 SBS 인기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는 방송인 고은아가 기상 직후 아침식사 대신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방송됐다. 고은아의 냉장고 안에는 술이 가득했으며 집을 방문한 친구들도 그에게 소주 상자를 선물로 건넸다. 고은아는 방송 내내 맥주와 소주를 번갈아 들이켰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음주 장면이 자주 노출되는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음주로 인한 범죄의 엄벌 여론이 높아지면서 관련 규정이 정비된 것과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관련 장면 노출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녹색 병 어른 음료'가 뭐길래…"청소년 음주·폭음 느는데 음주 예능도 더 자주 나온다"
/사진 = 채널E '노는언니'/사진 = 채널E '노는언니'


인기 예능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을 제작하는 iHQ는 7일 "시리즈 개념의 새 예능 프로그램 '마시는 녀석들'(가제) 제작에 돌입했다"며 "국내 안주 맛집을 탐방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며, 애주가들과 함께 술, 미식을 주로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는 7월 방송 예정이다.

일부 누리꾼 사이에서는 '예능에 음주 장면이 너무 많이 노출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는 인기 예능일수록 음주 장면 방영에 신중해야 한다'는 글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한 누리꾼은 "예능이 음주에 지나치게 관대한 사회 풍조를 조장하고 있다"고 적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음주 장면이 방영돼 논란이 된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에도 E채널의 '노는 언니'가 음주장면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주의를 받았다. 출연진은 '제일 중요한 것'이라는 자막을 띄우고 소주를 나눠 마시며 주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17년에는 '미운우리새끼'가 김건모의 음주 장면으로 방심위 경고를 받았다.

당시 방심위는 "일부 방송사가 음주에 대해 관대한 측면이 있다"며 "시청자들에게 음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했다. 또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 음주 장면을 장시간 방송하는 것은 법정제재가 불가피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방송의 영향을 받기 쉬운 청소년들에게 음주를 부추길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청소년 음주는 최근 증가세를 보인다. 지난 3월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0년 청소년 건강행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 30일 동안 1잔 이상의 술을 마신 청소년의 비율은 남학생 12.1%·여학생 9.1%를 기록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더라도 10대 알코올 중독 환자는 2014년 1588명에서 2018년 2106명으로 32.6% 증가했다.


"'음주 범죄' 엄격해지는데 방송은 역행…기준선 마련돼야"
/사진 = 게티이미지/사진 = 게티이미지
전문가들은 최근 음주 범죄 처벌 수위가 강화된 와중에 일부 예능에서 음주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되는 것은 사회 분위기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주취폭행·음주운전 등 가해자가 음주자인 범죄인 경우 형법이 개정돼 심신미약 인정 범위도 까다로워졌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음주 관련 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일어나며 형법상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라며 "사회 풍조와 역행하는 프로그램이 제작·방영되는 것은 시청자의 경각심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영향력이 큰 방송에서는 어느 정도 음주에 대한 기준선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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