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이재용 재판에 증거 200개 제출…"검토하기 벅차"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박수현 기자 2021.05.0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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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 6일 2회 공판…변호인단 "검찰 증거 검토 쉽지 않아 어려움 많다" 재판부 "최대한 검토" 독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범 기자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범 기자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재용 측 "증거 개수 굉장히 많아…의견 내려면 시간 필요"
경영권 승계 의혹으로 재판 중인 이재용 부회장 측이 검찰에서 당장 제시한 증거만 200여개 이른다며 난색을 표했다. 혐의와 무관한 증거들까지 섞여있어 방어권 행사에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박사랑·권성수)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어려운 점을 말씀드리고자 한다"며 "검찰이 200여개 증거를 제시해 빠른 시일 내 검토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증거 개수가 굉장히 많은데 처음부터 (재판과의) 관련성 등을 고려해 의견을 밝히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형사재판 초반은 검찰이 수사기록을 증거로 제출하면 피고인 측에서 증거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식으로 진행된다.

증거기록 두께는 사건 규모와 비례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번 이 부회장 사건은 수사기록만 19만쪽에 이른다고 한다. 변호인 여럿이 붙어도 벅찬 숫자다. 변호인 입장에서는 재판부의 심증에 영향을 끼칠 만한 증거나 진술은 없는지 시간을 들여 꼼꼼히 살펴야 한다.



반면 재판부 입장에서 마냥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증거의견을 빨리 밝혀달라고 독촉할 수밖에 없다. 피고인 측에서 증거의견을 밝혀야 어떤 증인을 언제 소환할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재판부는 "진정 성립 여부가 중요하지 않느냐"며 "먼 간접사실이지만 탄핵할 필요가 있다면 부동의하고 증인신문을 해야겠다면 밝혀달라. 당장은 아니지만 최대한 검토해서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 수사기록 중 진술조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를 중점적으로 검토해서 되도록 빨리 의견을 밝혀달라는 취지다.

'프로젝트G' 문건 작성자 "지배구조 개선 아이디어 정리한 것"
한편 이날 검찰은 '프로젝트G' 문건을 작성한 삼성증권 출신 한모씨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했다. 검찰은 삼성이 오래 전부터 경영권 승계작업을 목적으로 프로젝트G를 추진해왔으며, 회계사기와 주가조작 등 각종 불법을 동원해 프로젝트를 실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씨는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에서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업무를 맡은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검찰이 프로젝트G의 의미에 대해 묻자 한씨는 "어떻게 명칭된 건지 모르지만 '거버넌스'(Governance)"라고 대답했다. 기업경영에서 거버넌스는 지배구조라는 의미로 쓰인다.

한씨는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전체적인 아이디어를 모아 정리한 것"이라며 "당시 규제 등 여러 이슈들이 있어 어떻게 대응하는 게 삼성그룹 입장에서 안정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지 종합한 보고서"라고 말했다.

문건에서 검찰이 주목한 것은 '대주주의 삼성전자 지분과 삼성물산 지분이 취약하다'는 부분이다. 여기서 대주주가 누구냐고 검찰이 묻자 한씨는 "이건희 회장 일가"라고 답했다.

이 회장 일가의 전자와 물산 지분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서는 "삼성전자는 당연히 그룹의 핵심 사업이라 중요하다"며 "삼성물산도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이고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이 주축이 돼 다른 금융사 주식도 갖고 있고 사업도 중요했다"고 대답했다.

이후 검찰에서 "내용을 보면 결국 승계 과정에서 이 부회장 등 대주주 일가의 그룹 지배력이 약화된다는 것이 맞나"라고 묻자 한씨는 "승계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룹 전체 지분율이 떨어질 수 있다고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프로젝트G'에 천착하는 이유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이 부회장의 3세 경영을 위한 경영권 승계작업을 오랜 기간 준비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부터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의혹 등은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일련의 '작업'이었다는 것이다.

삼성 측은 승계작업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승계작업은 에버랜드 사건에서 끝났다는 입장이다. 특히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서는 "이럴 줄 알았으면 합병 안 했다"며 이 부회장 본인도 상당한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각 계열사들이 경영환경과 자기이익을 최대한 고려해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합병비율이 이 부회장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산정됐다는 의혹도 부인하고 있다. 합병 당시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3%를 갖고 있었지만 옛 삼성물산 지분은 0%였다. 제일모직이 높게 평가될수록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높아지는 구조였다.

당시 합병비율은 1:0.35로 결정됐다. 제일모직 1주의 가치를 옛 삼성물산 주식 0.35개로 평가해 합병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다수의 자문사들은 제일모직 가치를 그보다 낮게, 옛 삼성물산 가치를 그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삼성 측은 건설 분야 장기 불황과 옛 삼성물산의 실적부진, 제일모직의 미래 가치 등을 반영한 결과라고 항변하고 있다.

특히 삼성은 1:0.35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 법령에 따라 산출된 숫자일 뿐, 조작이나 개입이 있었다는 검찰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상장사 간 합병 방법을 규정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5조의5 제1항,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이 합병을 결의한 2015년 5월26일 당시시장가격에 따라 계산하면 약 1:0.35의 합병비율이 산출된다. 기업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은 주가라는 것, 이렇게 숫자와 공식이 정해진 계산식에서 뭘 부풀리고 뺄 수 있느냐는 것이 삼성의 항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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