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기 맞은 한국 영화의 전성기

머니투데이 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2021.05.0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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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의 컬처 리포트] 이은 의 쾌거, 다양성 축소되는 안방 ‘대책이 없다’

▲김동하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김동하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21년 봄. 한국 영화계가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는 시기, 한국 영화계에 또 하나의 낭보가 날아들었다. 영화 <미나리>에 출연한 한국의 윤여정 배우가 세계 최고 권위의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 부문의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연이은 쾌거다.
<기생충>이 각본상, 국제영화상뿐 아니라 감독상과 최고권위의 작품상을 휩쓸면서 제작과 연출 전반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면, 이번에는 한국 배우들까지 글로벌한 경쟁력을 뽐낸 셈이다.

영화 <미나리>는 아카데미 6개 부문에 감독상,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음악상에 노미네이트됐다. 한국계 정이삭 감독과 스티븐 연이 한국의 언어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만도 쾌거라 할 수 있다. 작품상도 노미네이트에 그쳤지만, 아카데미 권위에 버금가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은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미나리>가 차지했다.



<미나리>는 제작비 200만 달러(22억원) 규모의 저예산 영화이자, 아주 현실적인 소재를 다룬 가족영화다. 하지만 <미나리>의 성공을 놓고 한국 영화계의 연속된 쾌거라고 하려면 논리적 비약과 불편함이 따른다. 미국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미국 저예산 영화의 성공. 그 저변에는 분명 한국 영화의 위력이 흘러넘치고 있지만, 블록버스터에 의존하는 한국 본토 영화계는 힘겨운 내리막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오스카가 택한 <기생충>과 <미나리>, 공통점과 차이점은
오스카가 2년 연속 선택한 <기생충>과 <미나리>는 모두 한국인 또는 한국계 사람들의 손으로, 한국의 언어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기생충>의 주연배우 최우식은 캐나다 국적을 갖고 있고, <미나리>의 감독 정이삭과 주연배우 스티븐 연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두 영화 모두 차별과 양극화와 같은 매우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기생충>과 <미나리>의 정체성은 분명 다르다. <기생충>은 한국인 봉준호 감독이 한국 제작사 바른손을 통해 만든 영화다. 한국 투자배급사 CJ ENM이 메인투자, 즉 제공사로 참여했고, 모태펀드를 비롯한 한국의 기관 및 기업 투자자들의 돈으로 만들어졌다. 북미지역의 배급은 미국회사인 네온을 통해 이뤄졌다. <기생충>의 순제작비는 135억원, 마케팅비를 포함한 총 제작비는 170억원을 훌쩍 넘는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미국 배우 브래드 피트가 소유한 제작사 PLAN B를 통해 만든 영화다. 미국의 투자배급사 A24가 메인투자자이자 북미지역 배급사로 참여했고, 한국 배급은 판씨네마를 통해 이뤄졌다. <미나리>의 순제작비는 200만 달러(22억원) 규모로 <기생충>의 1/6도 되지 않는 저예산 영화다.
▲ <윤여정 수상 : 출처 oscar.com>▲ <윤여정 수상 : 출처 oscar.com>
오스카의 선택은, 양극화, 차별, 인종 등 ‘현실’
최근 10년간 아카데미 작품상의 선택은 예술적 ‘판타지’보다는 ‘현실’에 가까웠다. 2012년 <아르고(Argo)>는 인종갈등을 겪어온 중동과의 분쟁을, 2013년 <노예 12년(12 Years a Slave)>과 2016년 <문라이트(Moonlight)>, 2018년 <그린 북(Green Book)>은 흑백과 같은 인종갈등을 그렸다. 그나마 판타지적 요소가 있었던 영화는 2014년 <버드맨(Birdman)>, 2017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정도였다.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올해 아카데미상 최고 권위의 작품상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역시 차별과 양극화라는 매우 현실적인 소재를 다룬다. 네바다주 광산의 석고보드 공장이 어느 날 문을 닫아 직장을 잃고, 남편마저 잃은 한 중년 여성이 자동차 하나로 유목민처럼 떠도는 이야기다. 한 저널리스트가 실제 유랑민들과 직접 생활하며 쓴 원작을 토대로 했고, 영화에도 2명의 조연급을 포함한 실제 유랑민들이 출연해 현실성을 높였다.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해온 감독 클로이 자오는 사건 자체보다는 유랑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의 연속성에 주목한다. 여담이지만 자오 감독은 미국 국적의 한국 배우 마동석이 출연하는 마블 영화 <이터널스>의 감독이기도 하다.
암흑기 맞은 한국 영화의 전성기
대기업 블록버스터들도 무너지는 초라한 안방
<미나리>의 쾌거가 전해지기 이틀 전. 가장 박스오피스가 큰 토요일의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1위는 개봉 10일 차인 <서복>도, 4일 차인 <내일의 기억>도 아니었다. 1월 말에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은 팬덤의 막강한 지지를 받으며 3개월 가까이 1위를 오르내렸다.

제작비 240억원의 <승리호>가 넷플릭스로 넘어간 데 이어, 순제작비 160억원이 넘는 <서복> 역시 계열 OTT 티빙 동시개봉과 저조한 극장 스코어에 만족해야 했다. 순제작비 45억원의 사극 <자산어보> 역시 관람객의 극찬 속에서도 30만여 명 수준의 관객에 머물렀다.

문제는 우주나 인조인간을 다룬 블록버스터 영화의 흥행 여부가 아니라, 그나마 유명 배우로 무장한 블록버스터 대작 또는 자극적인 영화들만이 겨우겨우 OTT의 선택을 받으며 살아남는다는 데 있다. 2019년 2조5000억원을 넘었던 영화산업 매출은 2020년 1조원에도 못 미쳤고, 2021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극장, 투자, 배급을 막론하고 한국 영화계의 현실은 암담하고, 그들만 바라보고 있는 중소 제작사들의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암흑기 맞은 한국 영화의 전성기
다양성으로 빛나지만 설 자리 잃는 다양성 영화…‘대책이 없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의 선택을 요약하면 현지에서 ‘colorful’이라 불리는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수상작과 수상자의 면면은 한국계, 중국계, 흑인 음악, 소외, 양극화 등 주류 상업 대작의 키워드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미나리>의 제작을 주류 제작사인 PLAN B가, 노매드랜드의 미국 배급을 세계최대 투자배급사 디즈니의 자회사 서치라이트 픽처스가 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디즈니의 <소울> 역시 흑인 음악가의 삶과 음악을 다뤘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영화 생태계에서 양극화, 차별 등을 다룬 중소 영화들은 투자배급사들도, 극장도, OTT도, 감독이나 배우도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발 빠른 유명배우들은 드라마로 둥지를 옮기고 있는 현실 속, 앞으로도 현실의 문제를 마주 보는 용감한 중소 영화들이 얼마나 탄생할 수 있을까.

해외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는 한국 영화의 위력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관객들이 내는 돈으로 운영되는 영화진흥위원회나 상위 공공기관들의 생각은 뭔지, 대책은 뭔지도 참 궁금하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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