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하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기생충>이 각본상, 국제영화상뿐 아니라 감독상과 최고권위의 작품상을 휩쓸면서 제작과 연출 전반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면, 이번에는 한국 배우들까지 글로벌한 경쟁력을 뽐낸 셈이다.
영화 <미나리>는 아카데미 6개 부문에 감독상, 작품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음악상에 노미네이트됐다. 한국계 정이삭 감독과 스티븐 연이 한국의 언어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만도 쾌거라 할 수 있다. 작품상도 노미네이트에 그쳤지만, 아카데미 권위에 버금가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은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미나리>가 차지했다.
오스카가 택한 <기생충>과 <미나리>, 공통점과 차이점은
오스카가 2년 연속 선택한 <기생충>과 <미나리>는 모두 한국인 또는 한국계 사람들의 손으로, 한국의 언어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기생충>의 주연배우 최우식은 캐나다 국적을 갖고 있고, <미나리>의 감독 정이삭과 주연배우 스티븐 연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두 영화 모두 차별과 양극화와 같은 매우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미국 배우 브래드 피트가 소유한 제작사 PLAN B를 통해 만든 영화다. 미국의 투자배급사 A24가 메인투자자이자 북미지역 배급사로 참여했고, 한국 배급은 판씨네마를 통해 이뤄졌다. <미나리>의 순제작비는 200만 달러(22억원) 규모로 <기생충>의 1/6도 되지 않는 저예산 영화다.
▲ <윤여정 수상 : 출처 oscar.com>
최근 10년간 아카데미 작품상의 선택은 예술적 ‘판타지’보다는 ‘현실’에 가까웠다. 2012년 <아르고(Argo)>는 인종갈등을 겪어온 중동과의 분쟁을, 2013년 <노예 12년(12 Years a Slave)>과 2016년 <문라이트(Moonlight)>, 2018년 <그린 북(Green Book)>은 흑백과 같은 인종갈등을 그렸다. 그나마 판타지적 요소가 있었던 영화는 2014년 <버드맨(Birdman)>, 2017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정도였다.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올해 아카데미상 최고 권위의 작품상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역시 차별과 양극화라는 매우 현실적인 소재를 다룬다. 네바다주 광산의 석고보드 공장이 어느 날 문을 닫아 직장을 잃고, 남편마저 잃은 한 중년 여성이 자동차 하나로 유목민처럼 떠도는 이야기다. 한 저널리스트가 실제 유랑민들과 직접 생활하며 쓴 원작을 토대로 했고, 영화에도 2명의 조연급을 포함한 실제 유랑민들이 출연해 현실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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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해온 감독 클로이 자오는 사건 자체보다는 유랑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의 연속성에 주목한다. 여담이지만 자오 감독은 미국 국적의 한국 배우 마동석이 출연하는 마블 영화 <이터널스>의 감독이기도 하다.
<미나리>의 쾌거가 전해지기 이틀 전. 가장 박스오피스가 큰 토요일의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1위는 개봉 10일 차인 <서복>도, 4일 차인 <내일의 기억>도 아니었다. 1월 말에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은 팬덤의 막강한 지지를 받으며 3개월 가까이 1위를 오르내렸다.
제작비 240억원의 <승리호>가 넷플릭스로 넘어간 데 이어, 순제작비 160억원이 넘는 <서복> 역시 계열 OTT 티빙 동시개봉과 저조한 극장 스코어에 만족해야 했다. 순제작비 45억원의 사극 <자산어보> 역시 관람객의 극찬 속에서도 30만여 명 수준의 관객에 머물렀다.
문제는 우주나 인조인간을 다룬 블록버스터 영화의 흥행 여부가 아니라, 그나마 유명 배우로 무장한 블록버스터 대작 또는 자극적인 영화들만이 겨우겨우 OTT의 선택을 받으며 살아남는다는 데 있다. 2019년 2조5000억원을 넘었던 영화산업 매출은 2020년 1조원에도 못 미쳤고, 2021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극장, 투자, 배급을 막론하고 한국 영화계의 현실은 암담하고, 그들만 바라보고 있는 중소 제작사들의 현실은 더욱 참담하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의 선택을 요약하면 현지에서 ‘colorful’이라 불리는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수상작과 수상자의 면면은 한국계, 중국계, 흑인 음악, 소외, 양극화 등 주류 상업 대작의 키워드와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미나리>의 제작을 주류 제작사인 PLAN B가, 노매드랜드의 미국 배급을 세계최대 투자배급사 디즈니의 자회사 서치라이트 픽처스가 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디즈니의 <소울> 역시 흑인 음악가의 삶과 음악을 다뤘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영화 생태계에서 양극화, 차별 등을 다룬 중소 영화들은 투자배급사들도, 극장도, OTT도, 감독이나 배우도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발 빠른 유명배우들은 드라마로 둥지를 옮기고 있는 현실 속, 앞으로도 현실의 문제를 마주 보는 용감한 중소 영화들이 얼마나 탄생할 수 있을까.
해외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는 한국 영화의 위력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관객들이 내는 돈으로 운영되는 영화진흥위원회나 상위 공공기관들의 생각은 뭔지, 대책은 뭔지도 참 궁금하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