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하이픈, 온실 속 화초를 거부하는 괴물신인

머니투데이 이여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5.0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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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미니 앨범 선주문량 45만장 돌파

사진출처=뮤직비디오 캡처사진출처=뮤직비디오 캡처



데뷔 5개월 차 신인, 엔하이픈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할 때다.

Mnet의 보이그룹 결성 프로그램 ‘아이랜드(I-LAND)’는 여러 방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CJ ENM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가 손을 잡고 200억 원이라는 규모의 제작비를 들여 탄생시킨 보이그룹이라니.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 탓일까. 최종회 0.8%라는 저조한 시청률은 물론 지금의 K팝을 이끄는 전문가들이 주도한 것에 비해 화제성은 미미하기만 했다. 물론 그간 Mnet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빚어낸 여러 잡음과 문제들로 아이돌 육성 프로그램이라는 포맷 자체가 이미 대중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관객과 소통할 수 없는 코로나19 등 사회적 제약이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힘을 받지 못했다. 꿈을 향해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펼친 일곱 멤버들에게 안타까움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노하우가 축적된 기획력은 역시나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일까. 엔하이픈은 우려와 달리 글로벌 시장에서 연일 피어오르는 중이다. 이미 데뷔 전부터 틱톡,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V LIVE 등 아이돌 그룹의 글로벌 인기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소셜 플랫폼에서 단기간에 구독자 1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저력을 입증했고, 지난해 11월 발매된 데뷔 앨범 ‘보더 : 데이 원(BORDER : DAY ONE)’은 초동 28만장 판매를 기록하며 그해 데뷔한 아이돌 그룹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

사진출처=뮤직비디오 캡처 사진출처=뮤직비디오 캡처

기세는 그대로 이어진다. 지난달 26일 발매된 두 번째 미니앨범 ‘보더 : 카니발(BORDER : CARNIVAL)’의 선주문량은 45만 장을 돌파했다. 앨범 구매력이 확실한 인기의 척도인 아이돌 시장에서, 신인 보이 그룹에게 결코 쉽게 나올 수 없는 숫자. ‘아이랜드’의 미미했던 화제성이나, 공연이나 팬사인회 등으로 팬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무대가 전무한 상황에서 이들의 행보는 참으로 유의미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전 세계 음악 신이 K팝에 주목하고 있는 지금, 글로벌 무대에서 이만큼의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건 ‘빅 보이그룹’의 대열에 오를 수 있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엔하이픈의 무서운 성장세에는 역시나 음악적 완성도가 큰 몫을 한다. 데뷔곡 ‘Given-Taken’과는 달리 이번 미니앨범의 타이틀곡 ‘Drunk-Dazed’는 ‘카니발’이라는 앨범의 주제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럽고 다소 강렬한 듯 어두운 무드를 풍긴다. 빠르고 강하게 몰아치는 비트와 포효하는 듯한 보컬의 사운드는 짜릿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가사 또한 특별하다. “사실 두려워 난 거울 속의 내가 낯설기만 해 이 가면 뒤 초라한 진실”과 같은 표현처럼, 지금 그들이 느끼는 혼란한 감정을 꾸밈없이 과감하게 드러낸다.

사실 엔하이픈에게 초대형 시스템 아래 곱고 예쁘게 만들어진 ‘온실 속 화초’ 같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이들도 꽤 많겠으나 앨범을 통해 그들이 보여주는 색깔은 더없이 과감하고 파괴적이다. 청춘의 아름다움보다는 혼란스럽고 날선 면면들을 지난 데뷔 앨범에 이어 꾸준히 얘기한다는 점은 지금의 MZ세대 팬덤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매력으로 작용한다.

사진출처=뮤직비디오 캡처 사진출처=뮤직비디오 캡처

신인 아이돌 그룹은 초반 싱글 곡이나 싱글 앨범 위주로 활동하며 인기를 끌어 모으는 경우가 흔한데, 엔하이픈은 5개월 이내에 발표한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미니앨범 모두 수록곡 6곡을 꽉꽉 채워 넣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일시적으로 시선을 끌 만한 컨셉트보다는, ‘앨범’과 ‘음악성’ 그 자체의 힘으로 승부보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타이틀곡 이외에도 ‘FEVER’ ‘Not For Sale’ ‘별안간 (Mixed Up)’ 등 앨범 수록곡 간의 음악적 흐름이나 메시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점 또한 돋보인다.

정원, 희승, 제이, 제이크, 성훈, 선우, 니키라는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균형감 좋은 멤버 구성 또한 빛을 발한다. “점프 동작의 체공시간까지 맞출 정도로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는 그들의 말은 무대에서 여실히 증명될 정도. 빠르고 강력한 비트를 따라잡는 동선과 퍼포먼스 소화력은 물론, 안정적인 라이브 실력은 데뷔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신인답지 않게 노련하다. 물론 멤버 개개인의 매력도나 역량이 팬덤을 제외한 대중에게는 아직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팀워크’와 ‘음악성’이라는 정공법으로 승부한다는 강렬한 인상을 선사한 것은 꽤 성공적이다.

무서운 기세로 돌진중인 엔하이픈은 글로벌 대세인 방탄소년단을 그들의 롤모델로 꼽았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데뷔 스코어만 본다면, 방탄소년단의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다. “우리만의 팀 색깔을 확실히 가졌으면 한다. 많은 대중 분들이 노래를 듣고 ‘엔하이픈 노래 같은데’라고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양한 걸 시도하고 우리만의 색을 찾아가는 단계라 생각한다”고 포부를 밝힌 이들. 지금과 같은 속도의 성장세라면, 그들의 꿈은 빠른 시일 내 이뤄지지 않을까. K팝 시장이 낳은 4세대 아이돌의 인기 선두주자에 관한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가장 보편적이고도 강력한 무기는 여전히 ‘음악’과 ‘퍼포먼스’다. 그런 의미에서 초반 추진력을 제대로 장착한 엔하이픈, 이들의 글로벌 인기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두고 지켜볼 만하다.

이여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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