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억울한 옥살이' 정원섭…치매에도 고문 기억은 '또렷'

머니투데이 마아라 기자 2021.04.30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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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7번방의 선물' 실제 인물 사연…안소희·김진수·백지영 눈물

2018년 방송 故 정원섭씨 인터뷰 /사진=MBC '판결의 온도' 방송화면2018년 방송 故 정원섭씨 인터뷰 /사진=MBC '판결의 온도' 방송화면


경찰 고문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년 2개월 간 옥살이를 한 정원섭씨의 별세 소식이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지난 29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이하 '꼬꼬무2') 8회에서는 '조작된 살인의 밤, 연필과 빗 그리고 야간비행'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제 주인공인 정원섭씨의 억울한 사연을 다뤘다.

경찰의 협박과 증거 조작 속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정원섭씨는 15년 2개월 만에 성탄절 특사로 석방됐다. 그는 과거 유일하게 자신을 도왔던 이범렬 변호사에게 수사기록을 넘겨 받아 재심에 도전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30년 만에 진술을 번복한 증인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원섭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정씨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게 최후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정씨 관련 조사가 시작되고 2년만에 재심 권고가 결정, 재판부는 그제야 국가기관의 공신력을 받아들여 재심을 열어줬다.



이윽고 2008년, 드디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정씨의 아버지는 아들 감옥간 후 3년만에 홧병으로, 어머니는 남은 일생 옥바라지 하다 무죄 소식으 못 듣고 하늘나라로 갔다. 사연을 들은 안소희, 김진수, 백지영은 눈시울을 붉혔다.

고문 후 증거를 조작한 경찰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이들은 끝까지 부인했고 7년의 공소시효를 넘겼다. 실제 처벌을 받은 사람은 0명이었다.

안소희는 "피해자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일인데"라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충격적인 건 경찰, 판사도 정원섭씨의 고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씨는 재판 내내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을 호소했으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정원섭씨가 무죄가 되면서 당시 강간살인 피해자였던 윤소미(가명)의 유가족들도 피해자가 됐다. 이 사건은 결국 영구 미제 사건이 됐다.



정씨는 억울한 옥살이의 대가로 형사 보상금 9억5000만원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국가가 돈이 없다며 4번 분할 지급했다.

정씨 가족은 이 돈을 전부 빚을 갚는데 사용했다.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피해보상청구 소송을 내 1심에서 26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판결이 났다.

이유는 6개월 내 소송을 걸어야 했으나 열흘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1심 진행 때까지만해도 3년이었던 소멸 시효가 2심을 준비하는 중 6개월로 축소된 것. 이는 과거사 사건들에 국가가 다 배상해주면 나랏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결국 정씨는 단 한 푼의 배상도 받지 못한 채 뇌출혈로 쓰러졌고 치매 탓에 점점 기억을 잃어갔다. 정원섭씨는 향년 87세로 지난 3월28일 별세했다.

방송에서는 생전 정원섭씨와 제작진과의 인터뷰가 공개됐다. 정씨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질문에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

정원섭씨는 "두들겨 팼다. 무지무지 팼다"며 치매 속에서도 그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백지영은 "다른 기억은 다 잊어도 그건 못 잊으시나 보다"며 안타까워 했다. 안소희는 "긴 시간 동안 외롭게 싸우셨을 텐데 하늘에서는 외롭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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