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없는 대기업 된 쿠팡…'김범석 총수 지정' 뒤집힌 진짜 이유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2021.04.2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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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총수 없는 쿠팡, 현대차 총수된 정의선①

편집자주 2021년 기준 대기업집단이 발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막판에 결론을 뒤집고 쿠팡을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총수는 정의선 회장으로 바꿨다. 올해 대기업집단 지정의 의미를 짚어본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대표 인터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대표 인터뷰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을 '총수(동일인)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공정위는 애초에 이런 입장이었지만 중도에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사안을 전면 재검토했다가, 막판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 총수는 그룹의 '실질적 지배자'인데, 공정위는 김범석 의장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하면서도 미국 국적의 '외국인'인 그에게 국내의 총수 제도를 적용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제도상 한계를 인정하고 개선 방안을 찾기로 했다.

한편 공정위는 현대자동차그룹과 효성그룹의 총수를 각각 정의선 회장, 조현준 회장으로 공식 인정했다.



"쿠팡은 총수 없다" 최종 결론
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대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공정거래위원회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대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71개 기업집단(소속회사 2612개)을 5월 1일자로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고 29일 밝혔다. 대기업집단은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과, 10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공정위는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은 쿠팡, 한국항공우주산업, 현대해상화재보험, 중앙, 반도홀딩스, 대방건설, 엠디엠, 아이에스지주 등 8개 그룹을 새롭게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기존 대기업집단 가운데 현대차그룹의 총수는 정몽구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효성그룹의 총수는 조석래 명예회장에서 조현준 회장으로 각각 변경됐다. 현대차는 정몽구 명예회장이 2001년 총수에 오른 이후 21년 만에, 효성은 총수 지정제가 처음 시행된 1987년 이후 처음 총수 변경이 이뤄졌다.


그동안 공정위는 이번에 처음 대기업집단이 되는 쿠팡의 총수를 누구로 지정할지를 두고 고민을 거듭해왔는데, 결과적으로 법인인 쿠팡(주)를 총수로 지정하기로 했다. 쿠팡은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이라는 의미다.

공정위는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이 미국법인 쿠팡Inc를 통해 한국 쿠팡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음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상 총수의 정의인 '그룹의 실질적 지배자' 요건을 갖췄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과거 사례, 현행 제도의 미비점, 계열사 범위 등을 종합 고려해 법인을 총수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기존 외국계 기업집단의 사례에서 국내 최상단회사를 총수로 판단해온 점 △현행 경제력 집중 억제시책이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외국인 총수를 규제하기에 미비한 부분(총수 관련자의 범위, 형사제재 문제 등)이 있는 점 △김범석 의장을 총수로 판단하든, 법인을 총수로 판단하든 현재로선 계열사 범위에 변화가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쿠팡Inc를 김범석 의장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면서도 "다만 (외국인인 김범석 의장을) 국내법에 의해 새로운 의무, 형벌의 제재 대상이 되는 총수로 지정할 것인가에 대한 것은 조금 다른 문제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면 재검토' 했지만 원안대로...진짜 이유는
/사진=공정거래위원회/사진=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는 쿠팡 총수 지정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애초에는 쿠팡을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할 계획이었다.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한 전례가 없고, 외국인이 총수인 경우 사익편취 규제 등 제재 실효성이 낮다는 판단에서다. 대표적으로 외국계 기업인 에쓰오일, 한국GM은 매년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경쟁업체와 유통업체 등이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특히 이해진 창업자를 총수로 지정한 네이버 사례를 거론하며 쿠팡에 '외국인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쿠팡 총수 지정과 관련해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고 '법리에 충실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김범석 의장이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인 만큼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는 방안에 무게를 실었다는 의미다.

공정위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 "공정거래법상 총수는 '특정 기업집단의 사업 내용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라고 밝히면서, 김범석 의장에 대해 "실질적으로 쿠팡Inc의 76.7%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그의 '실질적 지배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종 결론이 원점으로 돌아오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공정위가 밝힌 3가지 이유 외에도 미국과의 통상 문제가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 국적인 김범석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는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상 최혜국대우 규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지적을 접하고 실무 검토를 진행해왔다. 최혜국대우는 두 국가 사이에 대해 제3국에 부여하고 있는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해주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김재신 부위원장은 "산업부와는 실무적으로 협의를 했지만, 산업부 의견이 무엇이었는지는 밝히기 곤란하다"며 "최혜국대우 규정 위반 문제는 지금 시점에서 판단할 문제도 아니고, 공정위가 판단할 이슈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쿠팡은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했기 때문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규정에 따라 이미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 공정위가 김범석 의장을 총수로 지정할 경우 양국에서 '이중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공정위는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각종 공시 의무가 있으며, 이를 통해 공정위도 간접적으로 해당 사실을 점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외국인 총수 지정'과 관련해 이 같은 제도상 미비점을 인정하고 개선 방안을 찾기로 했다. 아울러 대기업집단에 대한 효과적 규제 집행 방안, 총수 관련자 범위의 현실 적합성을 함께 검토한다.

공정위는 "정책환경이 변화해 외국인도 총수로 판단될 수 있는 사례가 발생했다"며 "현행 규제가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당장에 외국인을 총수로 판단해 규제하기에는 집행 가능성, 실효성 등에서 일부 문제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총수 지정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 및 개선을 추진해 규제 사각지대를 방지하고, 규제의 현실적합성·투명성·예측가능성을 높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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