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막는 낡은 재벌규제" 폐지론까지 부른 쿠팡 효과

머니투데이 김은령 기자 2021.04.2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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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김범석 의장쿠팡 김범석 의장


쿠팡이 35년된 '독점거래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규제 폐지론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해 자산 5조원을 넘기며 공시기업집단에 지정되는 과정에서 김범석 의장의 총수 지정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면서다. 스타트업 등으로 시작한 신생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해 대기업집단에 진입하는 사례가 늘면서 시대변화에 뒤처진 일괄적인 대기업 규제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71개 기업집단을 5월 1일자로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고 29일 밝혔다. 지난해 자산총액 5조8000억원을 기록한 쿠팡은 올해 처음으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지난해 매출액이 90% 이상 성장하고 물류센터 확장 등으로 유형자산이 증가한 영향이다.



쿠팡의 신규 지정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지만 공정위 발표를 앞두고 총수 지정을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미국 국적의 김범석 쿠팡 의장을 총수 지정 여부를 두고서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를 동일인(총수)로 지정하고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등을 규제하고 있는데, 외국인이 총수로 지정된 사례가 없었다.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없고 네이버 등의 IT기업과의 형평성을 들어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과 S-oil, 한국 GM 등 외국계 기업집단과의 사례를 들어 쿠팡주식회사를 동일인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 가운데 대기업집단 규제가 신생 혁신기업이 늘어나는 현실에 맞느냐는 논의까지 확장됐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성장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해외 대기업들과 활발하게 경쟁하고 있는 과정에서 국내에만 있는 이같은 규제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의장의 총수 지정 논란 역시 과거와 달리 사업 영역이나 지배구조 상 국경이라는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발생했다. 김 의장의 미국 국적 뿐 아니라 쿠팡의 최상단 기업인 쿠팡INC가 미국 증시에 상장된 미국 법인이고 최대주주는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이 들어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비전펀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과거 우리 경제가 폐쇄경제일 때 만들어진 제도로 개방경제로 변모한 오늘날의 현실과 맞지 않다"며 전면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전경련은 "과도한 규제가 신산업 발굴을 위한 벤처기업, 유망 중소기업의 인수합병(M&A) 등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규모가 작아도 대기업집단에 편입되면 대기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각종 지원제도에서 배제되며 계열사의 지원도 일감몰아주기, 부당지원행위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에 따라 공정위도 동일인 등 지정제도 전반에 걸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정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 및 개선을 추진해 규제 사각지대를 방지하고 규제의 현실적합성, 투명성, 예측 가능성을 높여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의 대기업집단 규제가 총수 일가 중심의 대기업들의 경제력집중을 막기 위해 도입된 규제지만 규모만을 기준으로 일괄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성장 과정이나 구조가 다른 혁신기업까지 규제를 씌우게 됐다"며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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