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씨앗' 악성 루머와 공매도[광화문]

머니투데이 김명룡 바이오부장 2021.04.30 05:50
글자크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은 꿈과 무의식을 다룬 영화다. 누군가의 꿈에 들어가 자신들이 원하는 생각을 심어 놓으려는 시도를 흥미롭게 다뤘다.

이 영화의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극중에서 "아주 작은 생각의 씨앗이라도 자라나 한사람을 규정하거나 망가뜨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씨앗이 사실이 아니거나 왜곡된 것이라도 그 씨앗이 자리잡는 순간 우리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 말로도 읽힌다.



며칠 전 바이오기업 레고켐바이오의 주가 폭락사례는 '의심의 씨앗'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23일 장중 6만4000원 정도에 거래되던 이 회사의 주가는 장 막판 5만400원으로 고꾸라졌다. 순식간에 주가는 20% 하락했고, 시가총액은 3200억원이 넘게 허공에 사라졌다.

갑작스런 주가급락의 배경엔 '대표이사 구속설', '개발중인 약물의 중국 임상 실패설' 등의 루머가 자리잡고 있다는 이야기가 증권가에 나돌았다. 회사 측은 비상이 걸렸다. 공식 입장문을 통해 "대표이사가 어떤 기관에서도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 "중국 임상실패설도 사실이 아니다"고 발표했다. 또 "조작된 악의적 낭설을 유포해 주주에 피해를 입힌 발원지를 찾아 법적 책임을 묻는 등 강력하게 대처할 것"이라고도 했다.



회사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며칠째 주가는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하는 '의심의 씨앗'이 투자자들의 마음에 자리를 잡은 듯하다. 레고켐바이오 (63,900원 ▲1,800 +2.90%)가 언제쯤 의심의 씨앗을 모두 제거할 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바이오 회사의 주가가 루머로 급락하는 사례는 그 역사가 짧지 않다. 지금은 대표 바이오기업으로 성장한 셀트리온은 2011년부터 악성 루머와 싸웠다. 대표이사 도주설, 임상실패설은 셀트리온이 공격을 받는 단골 메뉴였다. 시간이 상당히 흘렀지만 악성 루머의 레퍼토리는 여러번 우려진 사골 국물 마냥 반복되고 있다.

다른 업종에 비해 바이오기업들은 유독 루머에 취약하다. 신약개발이나 기술수출 등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가치가 회사의 주가에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회사의 모든 에너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기술'에 압축돼 있다. 그런 상황에서 창업자의 인신 구속이나 임상실패는 회사의 핵심가치를 훼손하는 이벤트다. 그게 사실이라면 회사의 가치는 하락하는 게 냉정한 시장의 원리다.


문제는 그것이 사실이 아닐 때 생긴다. 게다가 주가하락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생긴다면 불합리하고 반시장적인 루머가 발생하는 일도 잦아질 것이다. 주가하락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공매도(空賣渡)가 다음달 3일부터 재개된다. 공매도는 주식보유 없이 주식을 빌려팔고, 나중에 주가가 하락하면 싼 값에 되사 빌린 주식을 갚아 차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엔 개인 투자자가 주식을 차입해 공매도 거래를 할 수 있는 새로운 개인대주제도도 시행된다.

공매도의 순기능에 대한 기대도 있다. 전문가들은 과도하게 주가가 상승한 기업들의 가치가 균형점을 찾아가는데 공매도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중에 주식을 사야하니 주가하락을 방어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시장의 원리가 작동한다는데 공매도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당국도 불공정거래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다고 한다. 하지만 당국은 과거에도 불법행위를 모니터링한다고 했지만 실제 불법 공매도가 적발된 것은 극히 드물었다. 앞으로도 악성 루머의 경우 그 진원지가 어디인지 당국이 찾아내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일부 개인투자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매도는 재개된다. 회사의 가치를 재무적인 측면에서 입증하기 어려운 상당수의 바이오기업들은 주가하락을 노린 악성루머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2010년대 초반 공매도와 전쟁을 벌이기도 했던 셀트리온 (172,900원 ▼4,200 -2.37%)의 서정진 명예회장은 "꿈과 가능성을 믿고 나가야 하는 기업에게 악성 루머는 기업 존립을 흔드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 회사가 악성루머를 동반한 공매도와의 전쟁을 하는데 적잖은 에너지를 낭비해야 했지만 지금도 공매도에 시달리고 있다. 공매도와 싸울 시간에 회사 경영에 더 힘을 썼더라면 이 회사의 성장이 더 빨랐을지도 모른다.

'성장기업은 제외해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공매도는 재개된다. 그리고 바이오기업들이 악성루머에 노출될 위험이 커질 것이다. '의심의 씨앗'을 악의적으로 슬쩍 흘려 이익을 얻으려는 이들도 많이 생길 것이다. 신약개발에도 골치가 아플 바이오기업들이 해결하기 쉽지 않은 난제 하나를 더 떠안고야 말았다. 당국이 불법행위를 잘 막아줄 것이란 한 가닥 희망만 가진 채 말이다.
'의심의 씨앗' 악성 루머와 공매도[광화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