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개발 힘겨운 K바이오 "백신주권 지키려면 재정 '마중물' 필요"

머니투데이 박계현 기자 2021.04.2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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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임상 3상 최소 2000억원" VS 정부 "올해 백신 임상지원 예산 680억원"

백신개발 힘겨운 K바이오 "백신주권 지키려면 재정 '마중물' 필요"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국산 백신 개발에 나섰지만 국내 코로나19(COVID-19) 발병률이 낮고 대규모 임상자금을 확보하기 쉽지 않아 백신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의 지원 예산 부족으로 백신을 개발중인 기업 다수가 최대 2000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추정되는 해외 임상 비용 확보를 위해 해외 파트너사 모색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또 백신 기술을 확보한 다국적 제약들이 미국 정부를 등에 업은 자금력을 앞세워 백신 원료를 선점하면서 대량 생산 준비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이 때문에 백신업계에서 사실상 후발주자인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임상 진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선 감독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임상 승인 심사기간을 단축하고, 국가 차원에서 임상비용 및 연구개발비 지원 예산을 확보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6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선 SK바이오사이언스, 제넥신, 진원생명과학, 셀리드, 유바이오로직스 등 5개사가 코로나19(COVID-19) 백신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을 시작한 상태다.

SK바이오사이언스 (61,700원 ▼300 -0.48%)유바이오로직스 (12,130원 ▼170 -1.38%)는 합성항원 백신을 개발 중이며, 제넥신 (9,040원 ▼230 -2.48%)진원생명과학 (2,595원 ▼110 -4.07%)은 DNA 백신, 셀리드 (4,350원 ▲215 +5.20%)는 벡터백신을 개발 중이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과 같은 mRNA 백신을 개발 중인 국내 회사는 아직 없다.

업계에선 자금 조달과 백신 원료 공급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는 전체 하에 현재 백신 개발속도를 감안하면 국내 기업이 개발중인 코로나19 백신이 올해 4분기까지는 임상 3상을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정부가 올해 연간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 지원에 책정한 예산이 680억원에 그치는 등 정부 지원 수준은 기업들이 필요한 자금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상황이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 국내 5개사가 코로나19(COVID-19) 백신 임상시험을 하고 있고 치료제도 개발 중인데, 속도가 나지 않는 이유가 뭘까. 결국 돈'이라며 "백신을 개발하는 것은 민간 제약회사지만, 그들 연구와 개발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면 재정 투입을 못 할 이유가 없다. 과감한 간접지원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이 백신 생산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제공=SK바이오사이언스SK바이오사이언스 연구원이 백신 생산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제공=SK바이오사이언스
인도네시아서 임상 2/3상 돌입했지만 대규모 임상 자금 조달 '막막'
제넥신은 연내 인도네시아 5개 병원에서 1000명 규모 임상 2/3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달 코로나19 백신 'GX-19N'의 글로벌 임상 2/3상을 위해 인도네시아 식약처(BPOM)에 IND(임상시험계획)를 제출한 상태다. 아직 IND 승인을 기다리는 단계다. 국내에선 150명 규모 2a상을 진행중이며 현재 1차 접종을 마치고 2차 접종을 투여하는 단계다.

제넥신은 단독 개발이 아닌 바이벡스, 제넨바이오, 국제백신연구소, KAIST, 포스텍 등과 협업한 컨소시험 형태로 백신을 개발 중이지만 해외 임상 3상을 진행할 경우 비용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을 우려하며 정부 지원을 호소했다. 회사는 현재 자금 조달을 위해 해외 파트너사를 찾고 있다.

우정원 제넥신 대표는 "'GX-19'를 개발하다가 변이바이러스가 나온 후 'GX-19N'으로 교체해서 개발하고 있다"며 "국내는 감염률이 잘 통제되고 있어서 3상을 진행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면역반응으로 3상을 진행하는 게 허가되지 않으면 해외 임상시험을 해야 한다"며 "3만명 규모 임상시험의 경우 2000억원 정도 비용이 소요돼 회사가 직접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 26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국제백신공급기구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확보한 화이자 백신 초도 물량이 대한항공 화물기에서 내려 이송되고 있다./영종도=공항사진기자단 지난 2월 26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국제백신공급기구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확보한 화이자 백신 초도 물량이 대한항공 화물기에서 내려 이송되고 있다./영종도=공항사진기자단
대량생산 자금조달·원료확보 '이중고'…구매 협상력 높은 美 기업이 원료 선점
서울대 바이오벤처로 출발해 2019년 기술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한 셀리드의 경우 자체 보유한 아데노바이러스 벡터 기반 예방백신 기술을 활용해 1세대 코로나19 백신인 'AdCLD-CoV19'를 개발 중이다.

회사는 현재 150명 대상 임상 2a상을 진행중이며, 오는 6월 1000명 규모 임상 2b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르면 올 8월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회사는 이미 개발된 백신과의 비열등성 시험을 통해 백신의 효능을 검증받은 뒤 안전성에 중점을 둔 3상도 동시에 진행할 계획이다.

강창율 셀리드 대표는 "코로나19 백신 대량 생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금 조달과 원료 수급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셀리드 정도 규모의 기업이 백신 대량 생산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자체적으로 조달해 부담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량 생산을 위해선 6개월 이상 준비해서 식약처 허가를 밟는 과정이 남아있는데 그 과정에서 정부의 선지원이 필요하다"며 "백신 허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 생산을 충분히 해서 국가가 요구하는 백신 물량을 적절한 시기에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또 코로나19의 핵심 원료인 '배지'(세포 먹이)와 '레진'(불순물 정제액)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중소 바이오기업의 경우 백신 원료 수급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강 대표는 "셀리드의 백신 개발 기술은 아스트라제네카·얀센과 플랫폼이 같다 보니 소요되는 원료 물자가 거의 같다"며 "미국 같은 다국적 기업에서 원료를 거의 선점해 주문한지 몇달이 지나서도 원료를 못 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미국 백신 개발 기업의 경우 정부 지원금이라는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원료 조달에서도 협상력이 높고 수급 리스크가 없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중구보건소에서 의료진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주사기에 담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leekb@서울 중구보건소에서 의료진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주사기에 담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대로는 K백신 자립 어려워…성공·실패 불분명한 상황에서 선투자해야
코로나19 백신 생산의 전 단계인 원료 단계에서부터 조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부가 계속 손을 놓고 있다가는 국내 백신이 개발·허가된 뒤에도 여전히 글로벌 제약사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정부는 코로나 백신·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해 민간기업에 100억달러(약 12조원)가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다. 미국 정부는 '오퍼레이션 워프 스피드'(Operation Warp Speed)를 통해 화이자, 모더나, 노바백스, 존슨앤존스, 아스트라제네카 등 제약사들의 백신 개발이 완료되기 전에 먼저 자금을 지원하는 우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과 관련 세계적인 우위에 설 수 있는 이유로 이러한 백신 수급 정책을 꼽는 전문가들도 있다. 백신 개발의 성공과 실패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백신 가격을 지불하고 백신 개발에 성공한 기업 뿐 아니라 실패한 기업에도 자금을 대는 방식으로 백신 도입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의 자금을 받은 독일 머크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경우 아직 백신 개발에 성공하지 못한 상황이다.

제약·바이오업계는 정부가 R&D 투자뿐 아니라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따른 기업의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 기업들이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을 투입하는 상황에서 개발비 때문에 중도 포기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는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다"라며 "현재 3차 접종 얘기가 나오지만 4차, 5차 접종까지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을 6개월에 한 번씩 해야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산 백신 개발은 현재 개발 중인 기업 중에서 몇 개가 개발에 성공하든 자체 대량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선제적인 준비를 해야한다"며 "충분한 백신 자생력과 생산체계를 갖춰야 이러한 팬데믹 상황이 다시 벌어져도 국가 차원에서 준비와 대응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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