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의 난'? 코인투자자 패닉…'어른' 자처 금융위원장에 터진 불만

머니투데이 김평화 기자 2021.04.2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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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5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5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던 한국 금융당국이 2021년 4월22일 불현듯 코멘트를 내놨다. 금융당국의 수장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이다. 강도높은 발언 이후 국내외 가상자산 시장이 요동쳤다. 하루가 지나지 않아 역대급 하락률을 기록했다. 공포에 투매하는 '패닉셀' 현상이 일어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여야 의원들은 가상자산 관련 투자자 보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은 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앞서 정부 고위 관계자가 가상자산 관련 언급을 내놓은 건 2018년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때다. 3년이 넘도록 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다.



은 위원장은 정부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며, 가상자산 투자를 '투기'로 규정했다. 특히 은 위원장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어른들이 가르쳐줘야 한다고 하셨죠?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왜 이런 위치에 내몰리게 되었을까요?"라고 말하며 코인 투자자들의 화를 키웠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은 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글까지 올라왔다. 자신을 30대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한 청원인은 전날 청와대 국민게시판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청원인은 "사회생활을 하며 여태까지 어른에게 배운 것을 한번 생각해 봤다"며 "제가 4050의 인생선배들에게 배운 것은 바로 내로남불"이라며 글을 시작했다. 이어 "4050 인생 선배들은 부동산이 상승하는 시대적 흐름을 타서 노동 소득을 투자해 쉽게 자산을 축적해 왔다"며 "그들은 쉽사리 돈을 불렸지만, 이제는 투기라며 2030에겐 기회조차 오지 못하게 각종 규제들을 쏟아낸다. 덕분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하나 가질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원장도 부동산으로 자산을 많이 불리셨던데 어른들은 부동산 투기로 자산을 불려놓고 가상화폐는 투기니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냐"며 "국민의 생존이 달려있는 주택은 투기 대상으로 괜찮고 코인은 투기로 부적절한 것이냐"고 물었다.

정부가 가상자산을 법정화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내년부터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과세한다는 방침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 청원인은 "깡패도 자리를 보존해 준다는 명목 하에 자릿세를 뜯어갔다"며 "그런데 투자자는 보호해 줄 근거가 없다며 보호에는 발을 빼고, 돈은 벌었으니 세금을 내라는 것이냐"고 분노했다.


은 위원장이 미술품과 암호화폐를 비교한 것에 대해서는 "블록체인과 코인 시장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러니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 수준이 아직도 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든다"고 지적했다.

청원인은 "이미 선진국들은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종 노력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제조업 중심의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며 "훌륭한 인재들과 IT기술력을 갖추고도 정부의 이런 뒤쳐진 판단으로 세계적인 흐름에 뒤쳐지고 있다는 것을 빨리 깨닫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현재 이 청원은 올라온 지 하루만에 5만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정책당국의 가상자산에 대한 시각은 '으름장' 수준에 그친다. 앞서 가상자산 광풍이 불었던 2018년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은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해 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바 있다. 열풍이 가라앉자 정부는 그 발언을 지키지 않았다.

블록체인 업계에선 가상자산 거래 관련 법만 생겨도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은 위원장이 전날 "가상자산 거래는 투기적 성격이 강하다"며 "손실까지 정부가 다 보호할 순 없다"고 말한 게 정부의 현주소다. 투자자들이 분노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은 위원장의 발언은 국내외 가상자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 사이트 업비트에서 이날 최저 5496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14일 8199만원을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33% 가까이 하락한 것이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올들어 가상자산 가격 급등세가 이어져온만큼 새로 시장에 뛰어든 투자자도 많다"며 "고점에 물린 투자자들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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